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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백맘 Aug 16. 2023

3. 못하는 것투성이

고백맘

그렇게나 반대하던 결혼을 그것도 만난 지 100일 만에 해버렸다. 그전까지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결정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었다. 무탈히 자라온 환경처럼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잘 살 줄 알았다. 결혼식엔 친구들, 회사 사람들, 지인들로 넘쳐났고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성대히 치렀다. 부푼 기대로 신혼의 단꿈을 꾸던 어느 날, 결혼 먼저 한 회사 언니의 전화는 순탄치 않을 시작을 예고했다.   

   

“너도 살아 봐. 결혼 생활 쉽지 않을 거야.

아이 낳으면 더 힘들 거고….”    


그땐 아무것도 모를 때라 해맑게 전화를 끊었지만, 회사 언니의 염려는 에두른 걱정일 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고,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신랑은 매일 늦었고,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아침마다 ‘술국’을 끓여야 했고, 주말에도 일하러 가야 한다며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친정에선 ‘술’을 가까이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말이면 가족끼리 외식이나 여행을 다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매일 아침 입는 와이셔츠는 손빨래를 해야 했고, 카라와 소맷귀 세워 빳빳이 다려야 했다. 저녁마다 다음 날 입을 와이셔츠가 있는지 없는지 검사했고, 새벽에 들어와도 밥상을 차렸다.    


“강서방~ 쟤는 몸이 약해서 잠을 많이 자야지, 안 아파.”


엄마의 걱정 어린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밤마다 늦게 들어오는 신랑 때문에 선잠을 자야 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혼자서 아이를 돌봤고 아이가 아프거나 힘들면 친정집으로 뛰어갔다.     

 

손에 힘이 없어서 다림질이 잘 안 돼~”

“어젯밤에 잠을 너무 못 잤어. 힘들어.”

‘새댁’이라 불리던 그 시절의 나는 못 하는 거 천지투성이었고, 못하는 순간이면 엄마만 불러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팠다.


정밀 검진을 받고 함께 결과를 들으러 간 종합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너무 늦게 왔다고 호통을 쳤다.


엄마는 자신의 몸 상태를 받아들여야 했고 항암 주사를 맞고 머리가 빠지는 암 환자로 살아야 했다. 못하는 것 천지투성이가 엄마의 보호자로, 병원을 따라다니며 간호했고, 엄마가 하던 살림을 이어받아 제사도 지내고 아빠도 챙겨야 했다.     

 

첫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산 엄마가, 가족 걱정만 하고 산 엄마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아팠다. 당연시받던 엄마의 반찬도, 챙김도 받지 못한 채 암 환자의 보호자로 곁을 지켰다.


‘못한다’를 입에 달고 살던 내가,

급하니 ‘닥치는 대로’ 움직였고,

모든 것이 투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못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 곁을 지켜 주는 손이 있고, 기댈 누군가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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