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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백맘 Aug 16. 2023

2.부모 등 뒤에 숨던 나

고백맘 '나 몰라라 딸'

중학교 3학년까지 공부하기 싫고 노는 것이 마냥 좋은 사춘기 소녀였다. 도서관에 책가방 던져 놓고 친구들이랑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는 공부 하라는 '잔소리'가 싫은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첫 시험을 엉망으로 받아 엄마에게 혼이 나며 구겨진 성적표처럼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공부 못한다는 설움과 울분을 겪은 후, 하루아침에 '공부'란 것에 꼽혔다. 수업 듣고, 닥치는 대로 외우고 책상 앞에 엉덩이 붙이고 공부했다. 시작이 늦었기에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무작정 공부했다. 부족한 과목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스스로 문제집 사서 악착같이 풀었다. 조금 해보니 성적이 올랐고, '공부 재미'도 느껴서 더 열심히 노력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바닥이던 성적이 반 3등까지 오르며 지방 4년제 대학을 무난한 성적으로 들어갔다.

      

‘공부 열정’은 대학에서도 이어져 '장학금 사수'를 위해 노력했다. 아침 9시 도서관에 들어가면 밤 10시까지 자리 뜨지 않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공부했다. '대학 입학 역전 드라마'는 어렵거나 힘든 시점에서 끝까지 도전하는 마인드를 새겨 주었고, 밀어붙이는 '끈기'를 배웠다. 무언가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뿌듯함은 10대, 20대 때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대기업에서 근무했고, 무방비 상태로 뛰어든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법을 배운 적 없듯,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일 잘하는 법, 인간관계 잘 맺는 법, 감정컨트롤 하는 법, 보고서 잘 쓰는 법 등을 모른 채 하나씩 부딪혀가며 배웠다. 누군가 지름길을 알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공부도, 일도 스스로 뚫고 나가야 했다. 사회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였다.      


학창 시절, ‘공부 경험’을 통해 단 하나 ‘끈기’를 배웠기에 조금이라도 버티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신생 조직의 과한 업무를 버틸 체력은 바닥이었고 힘든 일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할 만큼, 마음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부모 등 뒤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4년 반 만에 회사를 나오며 그다음 목표를 ‘결혼’, ‘행복한 가정’으로 고 힘든 현실에서 도피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사표를 던질 것인가?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아마 똑같이 회사를 나왔을 것이다. 그 당시 자기 성장과 개발에 대한 계획과 목표 없이 무작정 생활할 때였으므로 나약한 마음으로 힘든 일을 하기엔 무리였다. 그리고, 나를 지켜 주던 든든한 울타리, 좋은 환경이 있었기에 날 변화시킬 이유는 없었다.


안 되고, 힘든 상황에선 ‘엄마, 아빠’만 불러대며, 상황만 ‘탓’하는 20대 어린 나는, 결혼 후 마주할 수많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놓친 시절을 안타까워하고, 반성했다. 자식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모른 채, 당연시 받으며 그 곁에서 평생 머물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엔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의 투병’을 시작으로 닥친 첫 시련은 결국 성장의 첫 관문이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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