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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Feb 11. 2022

프리랜서로의 여정의 시작 [하]

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2

([상]에서 계속,)


슬로건 도안을 어느 정도 마스터한 다음에는 포토카드 도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포토카드 도안을 만들려니 또 알아야 되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투명 포토카드를 만들려면 백색 파일이라는 것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게 뭔지 또 모르니 구글링을 해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겨 다른 도안들도 하나둘 만들어 보았다.  

    

스티커를 만들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포토샵’이라는 툴 외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툴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됐다니 얼마나 디자인에 문외한이었는지...) 자유자재로 도형을 그리고 칼선을 생성하려면 일러스트레이터를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룰 줄 아는 커미션 계정이 많이 없었다.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뱃지 도안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었다. 그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전공 과제는 시작하려고 한글만 열어도 머리가 아프던데...     


모르는 것이 생기면 일단 구글에 쳐서 알아보고, 그것에 파생해서 생기는 질문들을 검색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배웠다. 영상 편집도, 웹디자인도, 사이트 배포하는 법도 다 구글에서 배웠다. 한글 자료보다 영어 자료가 많다보니 영어 단어를 검색해가며 읽어내었다.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선 몇 시간씩 검색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는 경험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덕분에 일러스트레이터를 활용해서 다른 커미션 계정에서는 해주지 않는 뱃지 도안, 칼선 생성, 컵홀더 도안 등을 해주다 보니 꽤 큰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블루오션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구나를 몸소 느낀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은 늘 두렵기도 했다. 처음 일러스트레이터로 도안을 만들어 주던 날, 의뢰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화를 내면 어쩌지? 도안이 잘못돼서 결과물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별의별 걱정을 다 했지만 내가 단단히 준비한 덕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주문한 대로 디자인을 만들어 줬는데 자기가 한 말은 이게 아니라며 갑자기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한 사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왜 내게 협박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우스웠다.      


여러 도전에서 배운 점이 또 하나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들 친절하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한 번 더 물어본다고 해서 쉽게 화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화를 내고 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수정을 요구하면 수정을 해주면 될 일이다. 그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에 담아두고 자꾸 꺼내보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그저 그 일에서 배울 점만 적어두고 머리에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2017년의 끝자락, 휴학을 고민하던 시기에 큰 사건이 생겼다.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의 대미지를 준 사건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휴학을 질렀다. 좀 쉬면서 마음 정리도 하고, 내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하려는 계획이었다. 간호학과에서 1학년을 끝내고 휴학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주위에선 말리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제일 큰 과제였다. 휴학을 시켜주면 1)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생활하고, 2) 간호학과 졸업 후 웨이팅(졸업 후 발령받을 때까지) 기간을 최대한 짧게 한다는 두 가지의 약속을 했다. 결과적으로 2번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지만, 1번의 약속이 휴학하면서 또 나에게 큰 교훈을 주기도 했다.    

 

여차저차 부모님을 설득해서 노량진에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7시까지 하는 아르바이트여서 자취방도 노량진에 구하기로 했다. 보증금과 첫 달 월세는 부모님이 내주셨다. 300/45. 관리비 포함. 내 첫 자취방이다. 노량진 월세 싸다는 말은 정말 옛말인지 사람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였다. 그래도 설렜다. 새로운 세상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대학 1학년 때의 경험은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그저 즐거운 길을 찾아 걷는 것이었다면, 휴학을 하면서의 경험은 목적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 것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면서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하던 1년의 이야기도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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