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8
하루 벌고 하루 돈을 받는 일은 자취생에게는 마약(?)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알바천국과 알바몬 어플을 하루종일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중에 드림콘서트 스태프 알바 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왠지 재밌을 것 같고 멋있어 보여서 바로 신청을 했다. 한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그 업체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가 있어서 그곳에 댓글을 달면 신청할 수 있는 양식을 보내주었다. 아침 8시에 모여서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뒷정리까지 하고 헤어진다고 적혀있었다. 그에 비해 일당은 7만원으로 매우 적은 편이었지만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당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꽤 적지 않은 강우량에 하루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이 비 덕분에 아티스트들은 레전드 사진을 남겼지만. (태민 드림콘서트 레전드 사진을 모른다면 꼭 보도록...)
우산을 들고 스태프 일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매니저분이 우비를 나눠주셨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앞머리도 말고 갔는데 말짱도로묵이었다. 여튼 집합 장소에 모여 길게 줄을 서니 내부에 들어갈 인원과 외부에 있을 인원을 나누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내부가 더 좋을 것 같았다. 내부는 그래도 공연도 볼 수 있고, 한정된 공간에 서 있기만 하면 되니까. 반면 외부는 사람들 통솔도 해야 되고 넓은 곳을 뛰어다녀야 해서 힘들 것이 뻔했다. 그런데 매니저 분께서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내부에 왕창 넣는 바람에 나는 자연스레 외부로 가게 됐다. 여기서도 지연이 작용하는구나 느꼈지.
내가 처음으로 맡은 구역은 사람들이 구역별로 나뉘어서 줄을 서는 공간이었다. 구역마다 입장하는 곳이 달라서 줄도 다르게 서야했는데, 표를 확인하고 줄을 세우는 역할을 맡았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날씨가 맑아도 힘들었을 텐데, 비가 와서 사람들이 모두 우산을 쓰고 있어서 줄을 세우는 일이 더 힘들었다.
외국인들도 복병이었다. 영어야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다짜고짜 중국어나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면 난감했다. 대충 화장실을 물어보는구나 이해하고 바디랭귀지로 설명해주면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정말 꿉꿉한 날씨였는데도 콘서트 전 사람들이 설레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콘서트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남아 늦게 오는 입장객을 받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막 뛰어오면 문을 열어주고 표를 확인한 다음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에서는 신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데 막상 나는 무대를 못 보니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괜히 입장하는 곳을 왔다갔다 하다가 우연찮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부 1층에서 경광봉을 들고 있던 스탭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잠시 서있어주기로 했다. 들어가니 휘성 님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신나는 노래에 좋은 무대 매너에 방방 뛰는 관객들... 나도 신이 나서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스태프의 입장이었기에 사람들의 안전을 살피는데 계속 집중했다.
러블리즈, 아스트로 등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봤지만 정작 보고 싶었던 태민의 무대를 보기 전에 다시 자리를 바꿔줘야 했다... 대기실로 돌아가니 외부 일을 맡은 스태프들은 다 쉬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조금 쉬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태민이 마지막 순서였는데, 태민의 무대 소리가 들릴 즈음부터 마무리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관람객들을 안전하게 내보내고 가수들이 탄 차까지 다 내보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깜깜한 밤이었기에 야광 고깔들을 설치하고 우리도 손에 빨간 경광봉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아티스트 차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인간 유도등 (ㅋㅋ) 역할을 맡았다. 조금 기다리니 누가 봐도 연예인 차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신인들은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수고하셨습니다~" "ㅇㅇ 기억해주세요~" 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쉽게도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 그룹 이름이 뭐였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났다면 뮤비라도 한 번 더 봤을 텐데.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가 마무리 사인까지 하면 알바가 끝이 난다. 몸은 덜 힘들었는데 하루 종일 바깥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같이 알바하는 언니랑 친해지기도 하고 무대 소리를 들으면서 일하니 기분은 좋았다.
나도 오늘 처음 이 경기장에 와본 알바일 뿐인데 사람들이 무언가를 물어볼 때 대답 못해주는 경우가 제일 민망했다. 내가 맡은 부분 말고는 모른다구요... 스태프가 이것도 몰라? 하는 식으로 쳐다보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하고 나서 어떤 곳에 가서 직원분이 뭔가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게 되었다.
재미도 있고 돈도 버는 아르바이트다. 돈을 당장 많이 벌어야 한다면 비추하지만 쉬면서 재밌는 경험도 하고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싶다면 하는 것을 추천한다! 한 번 하면 다음 콘서트에도 도와달라고 문자도 오고 카페에 공지도 올라온다. (오랜만에 그 카페에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공지가 올라온다.)
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중에 현장 안내는 정말 작은 부분임에도 이렇게나 많은 인력과 노력이 들어가는구나를 느꼈다. 언젠가 내 공연을 하는 게 꿈인데, 이뤄진다면 이 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