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7
첫 번째 알바를 그만두고 나서, 경제적으로 따져보니 매일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돈을 벌지 않으면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알바몬을 보던 중, 일일 알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 알바면 돈도 벌고, 체험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야? 라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더랬다.
알바몬에는 택배 알바 공고가 많이 올라와있었다. 상하차가 정말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21살의 패기 때문이었을까.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무려 야간 알바로 신청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 정도(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까지 작업이었고, 택배 작업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해서 집합 시간은 오후 7시였다. 집합 장소가 부평역이서 1호선을 탄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지. 그렇게 하고 12만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동 시간까지 계산하면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당시 최저 시급이 7580원이었단 걸 감안하면 적은 돈도 아니다. 그럼에도 딱 한 번하고 그 다음부턴 안 나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케 할 것이다... 실제로 그 다음부턴 택배가 늦어도, 누락돼도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 평온함을 얻었다.
여튼 역에 도착해서 셔틀버스를 타면 출석 체크를 하고 작업장으로 향한다. 의외로 서로 아는 사람이 많아 버스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이렇게 외진 곳이 경기도에 있다고....? 싶을 만큼의 도로를 지나 작업장에 도착하면 이미 해가 져서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본인 인증하는 기계에 신분증과 자신의 얼굴을 등록하고 출근 인증을 하면 어떤 사무실로 향한다.
젊은 여자가 나를 포함해서 2명뿐이었는데, 따로 빠져서 다른 사무실로 갔던 것 같다. 나머지 한 분은 여기서 일한 경험이 꽤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쉬운 작업, 어려운 작업 중에 쉬운 작업으로 그분을 보내셨고 난 어려운 작업으로 배치됐다. 참고로 내가 갔던 곳은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동일한 작업을 시켰다.
내가 하는 일은 큰 컨테이너 벨트 쪽에서 우리 쪽으로 분류한 물건을 보내주면, 바코드를 찍고 상하차할 수 있게 박스를 끝으로 밀어주는 일이었다. 그러면 끝쪽에서 택배를 받아 차에 실었다. 그렇게 우리 레일은 팀장님 1분, 알바생 2명이 맡았다.
팀장님은 키도 작고 힘이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셨다. 레일이 자동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바코드를 찍고 힘으로 밀어주면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될 수 있는데, 힘이 너무 드니 그냥 바코드를 찍기만 하라고 하셨다. 그때는 요령도 없고 윗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바코드를 찍고 그냥 서있었다. 그러자 다른 쪽에 있던 직원분이 나를 불러서 혼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너만 그렇게 서있으면 뭐가 되냐고... 욕을 섞어서 정말 기분나쁘게 말씀하셨지만 내용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밀고 있으면 팀장님이 아유 하지마 하지마~ 하시고, 안 밀고 있으면 그분이 째려보셔서 좀 힘들긴 했다. ㅋㅋ
레일 위로 지나가는 박스 바코드 찍는 일이라서 전혀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문제는 박스 바코드가 위쪽으로 향해있다는 것이었다. 레일이 내 허리 위쪽 정도 높이인데, 택배 박스 위쪽에 바코드가 있으니 그걸 찍으려면 한쪽 팔을 있는 힘껏 위로 올려야 한다. 몇 시간을 내리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어깨가 그대로 굳는 듯했다. 가끔 택배가 쌓여서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작은 택배가 떨어지면 눈치를 못 채기도 해서 분명 바코드를 찍어서 출고 상태인데 택배가 도착하지 않을 때가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허리를 숙여 바닥을 살피는데 굳어있다가 허리를 굽혔다 펴려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팔이 빠지기 직전(?)에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새벽 4시쯤에 식사하는 시간이 있다. 사람들을 따라 작업장 옆으로 가니 식당이 있었다. 그저 어느 집밥 같은 식단이었지만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밥이 꿀처럼 달았다. 하지만 식당에 생기라곤 1도 없었다. 이 세상의 음침함을 모아 형상화한다면 이런 느낌인 것 같은...? 다들 피곤에 쩔어있고 말 한 마디 없이 밥만 먹는다. 이런 직장에서 매일같이 일한다는 건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 나쁜 일도 있었다. 내가 택배를 밀어주면 중간에 알바생이 받아서 팀장님께 밀어주거나 직접 차에 실었는데, 자꾸 내쪽으로 와서 택배를 받아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답답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점점 가까이 오더니 내 몸에 밀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팔 밑으로 손을 넣어서 택배를 가져가는데... 그냥 몸이 닿는 것도 너무 싫었는데...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덩치가 엄청 큰 사람이었어서 말도 못하고 어떡하지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팀장님이 눈치채셨는지 자리를 바꿔주셔서 접촉을 피할 수 있었다.
레일에 옷 끝이 끼여서 바람막이 끝 부분이 찢어지기도 했다. 아찔한 사고였다. 만약 레일에 끼인 게 옷이 아니라 내 손이었다면...? 졸릴 틈도 없이 정신이 확 들었다. 혹시 택배 알바 처음 가는 분이 내 글을 보고 있다면 어딘가에 끼일 수 있는 옷은 피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후드 모자에 딸린 줄도 위험하다.
여차저차 일이 끝나고 나면 레일이 멈추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퇴근하기 시작한다. 그날은 잔업이 남았었는지 2시간 추가 잔업을 할 사람을 모집했다. 나는 정말 더 하면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아 퇴근 인증을 하고 셔틀버스를 탔다. 퇴근 버스는 출근 버스와 다르게 정말 조용했다. 그렇게 부평역에서 내려 1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일당이 바로 입금됐다. 힘들었는데 입금된 액수를 보니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맛있는 것 먹고 푹 잤다. 알은 좀 배겼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사실 몸이 힘들다기 보다는 정신이 힘든 게 맞는 것 같다. 내리 10시간을 핸드폰도 못 보고 단순 작업을 해야 하니 지루했다.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꽤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나의 노력 덕분에 거의 모든 기억의 해볼 만한 경험으로 남기는 하지만. ㅋㅋ 택배의 소중함도 느끼고, 몸으로 하는 노동이 얼마나 힘든 건지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느꼈다.
삶이 슬럼프일 때, 가벼운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한 번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