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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Feb 17. 2024

나는 불편하면서, 왜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 파버 카르텔사에서 만들어진 만년필인데 교보문고에서 30% 할인했을 때 기분 좋게 구매했다. 몸통이 나무로 만들어져서 책상 위에 인테리어로 보기도 좋다. 실제로 손으로 잡았을 때 느낌도 만족스럽다. 난 악필이지만 만년필로 쓰는 악필은 어딘가 괜찮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 만년필을 몇 개월 정도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 샀을 때 꽤 괜찮았던 느낌도 시간이 지나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엔 어디다 뒀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 여기저기 들춰보다 가방 구석에서 찾았다. 다 쓴 잉크 버리고 새 걸로 갈아 끼웠는데 써지지 않았다. 뭐 만년필은 오래 쓰지 않으면 안 나오니까 그러려니 했다.



이후 보였던 내 행동이 참 이상했다. 잉크가 안 나오자 만년필 촉을 종이에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잉크를 새로 끼우면 나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종이 몇 페이지를 버려도 계속 문질렀다. 그래도 안 나오자 잉크를 짜내기 시작했다. 너무 세게 눌러 끼워진 잉크통은 깨지고 손에 다 묻게 되었다. 



그렇게 짜내어진 잉크는 만년필 촉에 묻어났고 나는 그날 만족스럽게 글을 썼다. 하지만 다음날 만년필은 써지지 않았고 어제 했던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다 드디어 유튜브에 ‘잉크 안 나오는 만년필’이라고 검색했다. 그중 가장 젊은 사람이 올렸을 법한 섬네일을 클릭했다.



해결책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따뜻한 물에 만년필 촉을 담근다. 그리고 1분 정도 있으면 촉 안에 굳어있던 잉크가 다 녹아서 잘 써진다는 것이다. 나는 영상을 끄고 바로 컵에 물을 담아 만년필 촉을 담갔다. 영상에서 나왔던 것처럼 숨어 있던 잉크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언제 꺼내도 잘 써진다. 



이렇게 검색해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는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에 만년필 촉을 벅벅 문지르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이 방법이 펜 촉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멈추지 않았다면 내 만년필 촉은 벌어져서 쓰지도 못하고 버렸을 것이다. (지금도 조금 벌어져 있긴 하지만)





내가 다이어트 코칭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비슷했다.



‘운동하고 땀 내면 살 빠지는 거 아니야?’

‘많이 먹지 않게 하고 클린 하게 먹으면 되지’

‘밥 늦게 야식만 끊어도 살 빠져’



나는 당연히 다이어트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건강한 식단을 먹고 건강한 습관을 만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리학이나 영양학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저 단순히 회원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하기 위해 닭 가슴살, 고구마, 단호박 같은 저 칼로리 음식을 제시했고 주 4~5회 운동을 권유했다. 







나중에서야 이렇게 가르치는 방법이 만년필을 종이에 벅벅 문지르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이 코칭에 가장 큰 문제는 몸을 심각하게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칼로리와 먹는 양도 줄이는 다이어트는 대사량을 떨어드리고 호르몬 체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연구는 너무 많다. 식욕을 참지 못하고 폭식하고 요요현상이 오는 이유도 바로 호르몬 체계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회원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코칭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이어트 코칭 공부를 다시 했다. 처음엔 몇 권에 도서를 찾아보다 그 책에 주석으로 달린 논문을 찾아봤다. 용어가 조금 눈에 익을 때쯤 생리학, 영양학 이론 책을 보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2023년부터 다이어트 코칭 상담을 시작했다. 원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트레이너 수요가 99%였다. 특히 나를 찾는 여자 트레이너분들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보디 프로필이나 대회 이후 몸이 망가져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었다. 



식이 장애, 불면증, 몸이 붓고 심해지는 피부 트러블 등등..



서로 일면식도 없는 트레버 분들 모두 내가 앞에서 설명한 다이어트 방법으로 살을 뺐다. 그리고 몸이 망가져서 나를 찾아왔다. 이들에게 내가 했던 말은 특별한 게 아니다. 다시 다이어트 코칭에 대한 공부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꼭 몸을 회복시켜 전과 같은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내가 쓴 책을 건넸다. 






이 밖에도 칼로리를 제한하는 다이어트는 안 좋은 점은 많다. 



잠깐 살이 많이 빠졌는지 몰라도 반드시 다시 살이 찔 것이며 이전처럼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악담이 아니라 신체 대사와 호르몬이 망가지기 때문에 해서도 안되고 이렇게 가르쳐도 안된다. 망가진 몸은 회복이 참 어렵다.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돈도 많이 써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냥 살 조금 빼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만 알아보면 펜 촉을 물에 1분만 담그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왜 알아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 역시 내가 아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몇 년 전부터 내가 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이 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생활한 지 11년 정도 지났으니까 8~9년 만에 만년필 촉을 물에 담근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진짜 만년필이었다면 몇 자루나 버렸을까? 



끝까지 종이에 벅벅 문지르는 행동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를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간단한 걸 왜 안 찾아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땐 정말 보이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해결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만큼 가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렇게 하나씩 배우면서 조금 성장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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