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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Mar 21. 2024

인생 2회 차 별거 아니네

모든 것이 소음처럼 느껴진다



 "고위험군 바이러스가 검출되셨어요. 조직검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간호사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뭐 크게 걱정해 주는 말투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받을 충격을 아는지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는 듯 들렸다. 뭔가를 더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틀 연속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는데 날짜는, 요일은 언제로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 문제가 있어서 조직검사받아야 한다는데?" 그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곧 한 명씩 말하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야'부터 '차라리 빨리 발견한 게 잘된 거야.'까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니면 어떡할 건데. 내속에서 짜증에 섞인 두려움이 솟구쳤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데. 아픔은? 아픔은 나누기가 안 된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갔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가 받았고 난 납작 엎드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 선생님. 저 그럼 암인 건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조직검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어느 누가 "당신 암이오." 할까. 그냥 난 '아니요'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예상대로 우리 착한 간호사 선생님은 아니라고 아주 확실하게 말해주셨다. 자세한 설명은 병원 오면 의사 선생님이 해주실 거라면서. 통화가 끝난 후 반자동적으로 내 손이 통화목록에서 '엄마'를 찾았다. 짧은 신호음 끝에 엄마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질질 짰다. "엄마! 나 고위험 바이러스가 있어서 조직검사 해야 한대! 나, 암일지도 몰라!!!!" 간호사 선생님은 현재 내 상태가 암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조미료를 팍팍 쳐버렸다. 기절 초풍할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간단하게 대응했다. 아니, 그녀가 언제 이렇게 쿨해진 거지?



"야! 너 뻥이지?"



 서러웠다. 웬 뻥타령이람. 눈물과 콧물이 만나는 게 느껴졌다. 짭조름하고 물컹한 액체의 탄생. 건물 복도에서 웬 덩치 큰 아줌마가 벽 보고 질질 짜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움찔한다. 엄마한테 계속 진실을 전달하다 급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느 부모가 자식 아프단 얘기 좋아할까. 엄마는 믿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몰라' 나는 좀 더 질질 짜다 전화를 끊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면 주름만 보이고 한숨만 나왔는데 웬걸, 내가 이렇게 젊어 보일 수가. 내 눈이 잘못됐나? 집에 들어오니 365일 어질러져 있는 거실 테이블도 별로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게다가 새벽까지 안 자는 아이 때문에 나까지 잠 못 자고 잔소리하기 일쑤였는데, 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올까 했는데 잠이 왔다. 그것도 아주 잘.

  인생 2회 차가 별거일까. 교통사고나 벼락도 필요 없다. 전화 한 통에 인생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미세먼지가 있건 없건 하늘은 그저 보기 좋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무표정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다들 생기가 넘쳐 보인다.

 조직검사는 다음 주에 하기로 했다. 시간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천천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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