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참관인_고생하셨어요, 어르신
"내가 지팡이를 잃어버렸는데. 여기 있나 해서..."
이미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을 떠났던 한 어르신이 다시 돌아와 지팡이를 찾는다. 나는 어르신의 말을 듣고 다섯 개의 기표소 아랫부분을 슬쩍 살펴봤다. 거기엔 지팡이 포함 아무것도 없다. 어르신은 투표소의 입구에서 몇 걸음 더 들어가다 직원에게 접근을 제지당했다. 직원이 어르신 대신해서 기표소가 빌 때 한번 확인하려나 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르신의 지팡이는 기표소 안 테이블 위에 있을까? 글쎄. 기표소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다. 지팡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거 뭐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두 번째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 밖으로 나오는 분들이 꽤 있다. 종이가 긴 것보다는 본인이 찍고자 하는 '당'의 이름이 없어 당황하신 걸까. 투표용지를 반으로 접고 나오는 어르신은 그나마 나은 편. 펼친 투표용지를 대차게 흔들면서 나오는 분들도 제법 있었다. 직원들은 놀라면서도 신속하게 어르신을 제지한다. 그렇게 제지당한 어떤 할머니를 보면서 실소를 터뜨리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도 나이가 지긋하다는 사실. 어째 '노인'이 되면 외로울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신분증 주세요"
직원의 말에 어르신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지팡이를 테이블에 기대놓는 어르신.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려 하나 이놈의 신분증이 잘 빠지지 않나 보다. 그분이 신분증을 빼기 위해 얼마나 힘을 주시는지, 어르신 뒷모습만 봐도 느껴진다. 잠시 후, 다행히 신분증은 빠졌지만 이번엔 기대 놓았던 지팡이가 툭 하고 쓰러졌다. 아무도 달려가지 않는다. 아무도 지팡이를 대신 주워드리지 않았다.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것 같은 투표소의 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은 조심조심 몸의 균형을 잘 맞춰 허리를 숙여 지팡이를 주웠다. 그리고 다시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팡이를 테이블에 기대어 둔다.
"여기요"
신분증은 진작 확인했지만 어르신을 위해 잠시 기다려 준 직원. 직원이 어르신께 신분증을 건넨다. 이번엔 직접 지갑에 넣어서. 어르신은 건네받은 지갑을 겉옷 주머니에 넣고자 한다. 그때 일어난 어떤 파동 때문일까. 설마, 그리고 제발. 난 속으로 빌었다. 얌전한 척 기대고 있던 지팡이가 다시 한번 툭 하고 쓰러졌다. 똑같은 장면의 반복. 역시나 아무도 달려가지 못하는 똑같은 결말.
무선 청소기도 셀프 스탠딩 기능이 있는데 지팡이는 왜 저 모양 밖에 안 되는지.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을 계속 떠올리던 나는 '스스로 서는 지팡이'를 떠올렸다. "이거 괜찮겠는데? 특허다 특허!"하고 찾아보니, 그럼 그렇지. 이미 있다. '효도지팡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중에 꼭 효도지팡이 들고 가야지.
6시간에 10만 원 벌 수 있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신청했는데,
어르신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개표 참관인은 어떨까.
설마 내가 쏟아지는 투표용지를 보면서도
이렇게 오만 생각을 하진 않겠지.
그리고
자정 넘어가면 일당도 두 배라니
그날의 밤도 더욱 짭짤할 테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