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인가 갤러리인가
<상상/2034년>
담배 한 개비마다 센서가 달려있고 필터에는 작은 모니터가 있다. 유정은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넣은 후 입술로 가져가 물었다. 모니터에 나타난 유정의 남은 수명시간.
"15,768,000분"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잠시 후
"15,767,980분"
오전 편의점 알바 중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아이스크림은 원래 유통기한이 없다. 조금 전 사갔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이상하다고 했던, 2/3 정도 드시고는 환불을 요구하며 초록색 아이스크림 국물을 편의점 바닥에 뚝뚝 흘리던 그 손님이 떠오른다.
유정은 이번엔 좀 길게, 그리고 더 깊이 빨아들였다.
잠시 후
"15,767,935분"
스트레스받을 때 펴서 그런가 갑자기 45분이나 줄다니. 담배맛 떨어지게시리. 그래도 이만 원이나 주고 산 담배인데 함부로 버릴 순 없지. 담배 태운 부분을 잘 정리해서 담뱃값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새 거지 새 거야, 암. 담뱃값 뚜껑을 덮고 보니 새로 바뀌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흡연자 장기기증센터(보상 확실) 1588-5858"
"사전 약정 시 인센티브 지급 및 성기능 장애 일대일 방문 상담(야간)"
인구가 줄어서 쓸만한 장기가 부족하단다. 흡연자 장기라도 쓸 데가 있다는 얘긴데. 담뱃값의 혐오그림도 그래서 사라진 건가. 갈 사람은 가라는 건지. 의도가 의심스럽다.
<현실/4월 7일 일요일 오후 편의점>
"에쎄클래식"
에쎄클래식 정도야. 에쎄류의 위치는 이제 잘 파악하고 있다. 난 서둘러 에쎄클래식 하나를 계산대에 올렸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 손님이 담배를 보고 멈칫한다. 뭐지? 이게 아닌가?
"이거 말고. 다른 거"
"네? 다른 담배요?"
"아니, 이 그림 말고. 다른 그림으로 달라고"
매대에 올라온 담배를 보니 폐암인데 얼핏 봐도 시뻘건 게 피투성이다. 바로 뒤에 있던 담배를 꺼내 드렸다.
"이것도 말고. 좀 괜찮은 그림으로 달라니까?"
이번엔 뇌졸중 그림이네? 역시 폐암 못지않다.
(아니, 순서대로 사가셔야지 언제 이걸 제가 다 골라드려요. 그리고 이런 그림을 보셔야 담배 피울 생각이 뚝 떨어질 것 아닙니까. 그래야 건강하게 사시죠. 손님)
"다른 거 드릴까요?"
난 아예 진열된 에쎄 클래식을 전부 매대에 펼쳤다. 손님은 무슨 그림작품 고르듯 신중하게 하나를 골랐다. 편의점 6개월 아르바이트하면서 담배 그림 고르는 손님은 이분까지 딱 두 명. 이 혐오그림들이 효과가 있다는데 과연 얼마나 있으려나.
나는 손님을 보내고 위에 적은 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과연 담배회사 사장님은 담배를 피울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