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네 알바 3주 차
'김밥, 라면, 떡볶이, 라볶이, 철판치즈쫄면, 김치볶음밥, 모둠어묵, 오므라이스, 소떡소떡, 스팸옛날도시락...'
어떠세요.
혹시 좋아하는 메뉴가 있으신가요?
대부분이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김가네, 손님이 미어터진답니다.
사장님 입꼬리는 연일 상승장.
오픈발 플러스 대국민 분식사랑.
여기는 김가네입니다.
김가네 오픈하는데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나는 팔이 아프다. 옛날에 코로나 때 중국집에서 일했는데 같이 서빙 보던 친구가 애기 맡길 데가 없어 안 나와서 한 세 달 동안 거기 사장님이랑 나랑 둘이 죽어라 일했고 그 후로 팔이 아프다."고요. 구구절절 말했죠. 사실이고요.
그때는 오른팔로 창문도 못 열고 병뚜껑도 못 돌렸어요. 주사 맞으면서 일했죠. 지금 생각하면 전 바보예요. 내가 못 나온다면 사장님이 다른 누굴 구할 텐데 그걸 왜 말을 못 했을까요. 미안하기도 하고 말하기 겁나기도 하고 그랬나 봐요. 심지어 팔 아프다고 말씀도 안 드렸다니까요.
어쨌든 제가 팔이 아프다니 사장님이 회심의 카드를 던지더군요. "주문은 무인 키오스크 두 대로 받고 셀프 배식/퇴식 시스템이다."라고요. 여기에 끌렸어요. 자동화 같은 느낌. 그래서 사실 지금 일하면서 음식을 홀로 나르지 않으니 팔은 괜찮아요. 대신 다른 일을 많이 하죠. 근데 그거 아세요? 식당일은 정말 끝이 없답니다.
바쁜 주문 쳐내면 그다음을 위해 일해야 해요. 재료손질하고 물품도 채워 넣고요. 게다가 제가 일했던 식당들은 보통 오전 11시가 되면 슬슬 손님들이 오고 1시 되면 매장이 비었거든요. 근데 여긴 11시부터 손님이 꽉 차기 시작해서 한 2시까지 바빠요. 요즘은 밥때가 따로 없나 봐요. 일찍 오는 손님, 늦게 오는 손님 등 다양해요. 처음에 사장님이 점심시간 '4회전' 말씀하셨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더라고요? 거대한 지식산업센터에서 분식집은 우리 하나라서 그런가 봐요.
'홀담당'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계약서에는 '주방보조'가 추가되었어요. 해야죠. 제 몸이 주방에 있으니까요. 저만 한가하면 쓰나요. 김밥 재료 채우기부터 분리수거, 퇴식구 정리는 기본에 설거지 여사님 안 계시면 설거지까지. 주방 재료 세팅, 튀김기에 튀김 넣기, 물류 정리까지. 아, 물론 홀은 홀대로 해야 하고요. 순서대로 매장에 음식 내보내고, 포장손님께 전달하고. 테이블 정리부터 수저, 단무지 채우기까지. 그리고 배달앱, 키오스크 관리와 전화주문까지.
여기에 더해서 일하는 중간중간 손님들 요청을 받죠.
"김밥 지금 주문한 거 우엉이랑 오이 빼주세요."
"이거 남은 거 포장돼요?"
"요 옆에 갔다 올게요." (금방 안 오심)
"포장으로 주문했는데 매장에서 먹고 갈게요."
"키오스크가 이상해요."
"죄송해요. 쫄면 4개 주문한 거 취소할게요."
"아직도 음식 안 나왔어요?" (돈가스, 쫄면, 갈비만두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림)
이런 요청들은 제 담당이에요. 저도 예전보다는 손님응대가 많이 나아졌지만, 당황하면 말이 두서없어요. 심장도 막 두근거리고요. 그래서 다른 동료들이 손님께 노련하게 대하는 걸 보면 저도 하나씩 배웁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요. 젊을 땐 배우지 않았어요. 그냥 흘려보냈죠. 아마 제가 똑똑했다면 배우려고 했을 텐데 말이에요.
이렇게 하루 9시간, 한 일주일 일하고 나니 '편의점이 천국이었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제가 일하는 편의점이 주말에 손님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어제 요리여사님이 본인 틈날 때 오셔서 제가 하는 그릇정리 슬그머니 도와주시더라고요. 여사님의 굵은 손마디로 잘 포갠 그릇을 건네주시는데 순간 어떤 '정'이 느껴졌어요. '엄마랑은 다른 끈적한 동료애!'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죠. 제가 한 오버해요.
그래도 그런 순간이 저에게 제대로 먹혔는지, 편의점으로 노트북 앞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어요.
편의점에서는 혼자,
김가네에서는 여럿이.
요즘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일은 글 쓰는 일인데
이 와중에도 저,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