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 사랑방을 꿈꾸는 곳
아무리 봐도 모를 일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기까지 하다. 내가 카페를 차렸다니. 하지만 또 잘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나는 커피보다 그 공간을 사랑한다. 공부하러 왔건 쉬러 왔건 누군가 잠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그리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그들이 짓는 행복한 표정들을 사랑한다. 그래도 여전히 문득 이게 꿈인가 싶다. 내가 카페를?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편의점 창업을 생각한 적은 있다. 아마 내가 무인카페를 차린 비용보다 더 적은 돈으로 창업이 가능한 걸로 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수시로 그만두는 아르바이트생을 그때마다 새로 구하고 같이 일할 자신이. 아니면 내가 그곳에서 아주 장시간 일할 자신이.
현재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 이 식당의 체인점을 해볼까 한 적도 있다. 아주 잠깐. 하지만 식당은 장난이 아니다. 40여 가지가 넘는 메뉴, 거기에 들어가는 방대한 식재료와 부자재. 그리고 피크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4명의 직원. 그걸 다 파악하고 운영할 수 있겠나? 나는 그런 그릇이 못된다. 그냥 여기서는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니는 경험으로 만족한다. 내가 맡고 있는 홀과 카운터도 볼 수 있고, 김밥장님 자리 비우면 김밥도 말수 있고, 주방에 손이 부족하면 간단한 요리정도는 가능하다. 이게 다다. 나의 능력은.
스크린 골프 아르바이트하면서 주워들은 바로는 당시(2년 전) 시세가 방 하나당 1.5억 받는단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스크린 골프 창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흡연부스에 들어가 문은 열어두고 담배를 피우거나, 아무리 부탁해도 종이컵을 재떨이 삼아 소파에 앉은 채 담배를 피워대던 손님들. 단골이라며 할인 시간대가 아님에도 "아니 봐봐. 기분이 그렇잖아"를 내세우며 할인된 요금을 강요하던 손님들까지. 물론 그들은 소수다. 매너 좋고 점잖은 손님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소수를 받아낼 그릇이 못 될 뿐이다. 그뿐이다.
나의 무인카페, 휴식의숲에선 흡연도 음주도 할인도 없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메모라니.
무인카페를 하며 나는 돈을 벌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을 받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항상 꾸준히 글을 쓰라고 격려하는 브런치.
이곳에 또 하나의 나의 이야기를 펼쳐나가 볼까 한다.
언제까지 할지,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쓸 생각이다.
휴식의숲을 오픈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
*
'휴식의숲'은
2001년부터 약 1년간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도쿄 니시닛뽀리에 위치한 가게
'이코이노모리'의 한글 뜻이다.
하와이풍 셔츠 유니폼에
하루종일 레게음악이 나오던 곳.
밤 11시에 사장님이 퇴근하면
밥말리에 질려버린 나는 스파이스걸스의 노래를 틀곤 했다.
이방인이었던 나를 채용하고 정을 나눠주었던 곳.
지금은 폐업했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곳.
늦둥이 딸을 위해
틈날 때마다 팔 굽혀 펴기를 했던 사장,
과거 여자친구가 그 유명한 시이나 링고였다는
음악 하던 사장 아들,
사장 아들의 현 여자친구로
예비 시아버지와 시원하게 맞담배 피우던 J,
베이비복스를 좋아하고
북한여행 다녀왔다며 인공기 뱃지를 내게 선물하던
장난 많은 중국인 주방장 C.
도라에몽을 좋아하던 잘생긴 키타상까지.
나의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
그리고 가장 즐거웠던 공간.
무인카페를 하고자 했을 때
단번에 떠오른 이름은
이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