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기숙사의 세끼
아들은 기숙사에 살다 보니 보통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다 학교에서 먹었다. 얼추 얘기를 들어보니 아침, 점심은 대체로 간단히 나오는 듯했고 저녁엔 뭔가 힘이 될 만한 양질의 음식이 나오긴 하는데 그건 무제한 먹을 순 없고 배급, 나머지 감자나 야채는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원체 한식을 좋아하는데 쌀밥도 없고(쌀이 나오긴 하지만 아주 가끔 볶음밥 정도), 그 좋아하는 뜨끈한 국물거리도 없으니 밥맛이 크게 있진 않았을 터. 게다가 매끼 나오는 감자, 이 감자는 아주 질려버렸다고 했다.
사진 중에 갈색 컵에 막대기가 꽂혀 있는 게 '배추된장 즉석국'이다. 유학생활 6개월 정도 지나 한국에 들어왔을 때 건조된 블럭으로 되어 있는 즉석국을 종류별로 사서 보냈다. 황태미역국, 배추된장국, 미소된장국 등. 고기성분이 들어있는 건 뉴질랜드에 반입불가라 해서 고기가 없는 걸로만 골랐다.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좋아하는 아이라 이렇게라도 먹으면 낫겠다 싶어 한 보따리 들려 보냈다. 뉴질랜드에 돌아간 아들은 아침마다 컵에 하나씩 타서 마셨다. 마치 모닝커피처럼. 당시만 보면 언제까지고 하루 하나씩은 꼭 마실 것 같더니 홈스테이로 옮긴 올해는 먹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마음이 허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기숙사에선 손잡이만 당기면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선 본인이 물도 직접 끓여야 하고 사용한 컵까지 씻어야 하니 그 귀찮음이 보통 귀찮음일까. 그래도 내년엔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니 아마 올 겨울에 한국에 왔을 때 또 한가득 이 즉석국을 들려 보내지 않을까 싶다.
아들이 학교에서 주는 밥 말고 무언가를 먹는 방법은 마트, 한식당 그리고 우버이츠였다. 마트에서는 간단한 음료나 라면, 과자 등을 사 와서 기숙사 사물함에 두고 먹었는데 가끔 기숙사 현지인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해서 불닭라면을 주곤 했다. 그걸 하나 끓여서 몇 명이서 나눠 먹는데 어떤 애는 잘 먹고 어떤 애는 한 입만 먹고도 나가떨어졌단다. 기숙사 같은 방 아이들도 한국나이로 중2니 얼마나 한창 먹을 때일까. 나중엔 아들의 간식거리를 달라는 애들이 많아져 물물교환 식으로 주기도 했는데 한국라면을 넘겨주고 받은 현지라면이 아들 입에 맞을 리가. 그래도 먹고 싶어 하는 친구들 생각해서 준 거니 마음이라도 부르지 않았을까.
한식당은 친구들하고도 가지만 혼자서도 제법 잘 다녔다. 벌써부터 혼밥을 잘하니 나중에 쑥스러워서 식당 못 들어갈 일은 없으려나. 칼국수부터 된장찌개, 삼겹살까지 다양하게도 먹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한식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런데도 가끔 통화하면서 "한국 오면 뭐 먹고 싶어?" 물으면 아들은 언제나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요."라고 한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데(물론 몇 가지는 나쁘지 않지만) 아들의 이런 말을 들으면 상냥하고 나긋나긋했던 아들이 더 보고 싶어 진다. 어리다면 어릴 수 있는 나이 열여섯, 음식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그 무언가가 아직 필요한 나이일 텐데. 우린 잘하고 있는 걸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버이츠. 작년 언젠가부터 한 번씩 시켜 먹기 시작했다. 주중보다는 아무래도 주말에 학교가 조용할 때 시켜 먹는데 팁까지 야무지게 내 카드로 결제한다. 초밥 같은 경우 양껏 먹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워 극히 소량만 주문하고 말지만 그래도 이런 걸 볼 때마다 참 세상 좋아졌다 싶다. 먹고 싶은 걸 핸드폰으로 주문만 하면 배달되는 세상이라니. 어쨌든 우버이츠 덕분에도 아들은 종종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15년 동안 매일같이 먹던 쌀밥을 먹지 못하니 뭘 먹어도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언젠가 내가 뉴질랜드에 가게 된다면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실컷 해줘야지. 따끈하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쌀밥부터 좋아하는 미역국에 불고기까지. 그렇게 먹이고 나서 학교 가는 아들을 한번 꽉 안아주고 보내줘야지. 이번엔 코로나 같은 걸로 나의 계획이 어긋나지 않기를. 4년 정도 혼자서 생활할 아들에게 한두 달 정도 그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물론 그 덕에 나도 콧구멍에 바람도 좀 넣고. 그 생각을 하며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