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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Nov 23. 2023

편견이 빚은 화마(火魔), 그리고 치유의 빗물

괴물(怪物, 2023)

괴물(怪物, 2023)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교장인 마키코(다나카 유코)가 한 공간에 있다. 서로의 거짓말을 고백하는 그들. 마키코는 미나토에게 관악기 부는 법을 가르쳐준다. 비밀을 말하고 싶을 때는 관악기를 불어보라는 마키코. 그녀와 미나토는 각자의 악기를 분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감출 수밖에 없던 바로 그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외치는 소리는 카메라 밖에서 들을 때, 마치 괴물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바로 말할 수 없는 비밀, 그리고 그로 인해 태어난, 혹은 태어날 수밖에 없던 괴물에 관한 영화다.


<괴물>은 각 인물의 시선에 따라 사실상 세 개의 챕터로 나뉜다. 이 영화에는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안도 사쿠라)의 시선을 보여주는 첫 번째 챕터, 미나토와 그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담임 선생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의 시선을 보여주는 두 번째 챕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나토의 시선을 보여주는 챕터가 존재한다.


<괴물>의 첫 챕터에 관객들은 철저히 사오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리고 담임인 호리 선생이 자신의 아들을 학대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사오리의 심정에 그대로 이입한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학교 선생들의 태도는 그런 의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렇게 이 첫 챕터에서 관객들은 단정 짓게 된다.


“호리는 미나토를 학대했고, 학교의 다른 선생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이들이 괴물이다”


그리고 사오리의 챕터 종료 후 시작되는 두 번째 챕터. 호리 선생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바로 그 챕터. 철저히 호리 선생의 시선으로 쓰여진 이 챕터에서는 오히려  미나토의 행동이 이상하기만 하다. 마치 동급생 요리를 따돌리며 괴롭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다시 한번 관객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호리 선생은 억울한 피해자다. 이상 행동과 함께 친구를 괴롭히는 미나토가 진짜 괴물이다.”


그러나 마지막 미나토의 챕터에서 앞선 두 챕터의 비밀이 밝혀진다. 어린 나이에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미나토. “나는 아빠처럼은 될 수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그렇게 스스로를 괴물로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앞선 모든 오해와 갈등이 빚어진다. 결국 호리도 미나토도, 사오리도 괴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괴물은 미나토가 스스로를 괴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 편견의 시선을 가진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영화가 지적하는 이러한 부분은 앞서 괴물을 찾으려 했던 관객들이 앉아있는 객석을 바라본다.


영화의 중반부. 교장 선생인 마키코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한다. 이 영화는 이 대사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응시한다. 자신이 믿는 정답만을 바라보고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마음. 그로 인해 혼란을 겪으며 스스로를 괴물로 보는 미나토와 요리의 순수함을 영화의 어른들, 관객들은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태풍이 오는 날 미나토와 요리가 숨었던 열차의 유리창. 호리 선생과 사오리가 닦아도 닦아도 닦이지 않는 그 유리창 위 구정물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괴물> 한 건물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불길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왜 불이 났을까’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첫 장면. 그러나 다시 마키코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대사가 소환된다. 누가 불을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인간들의 마음에는 자기만의 정답이, 자기만의 활활 불타는 화마(火魔)의 괴물이 상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답을 정해놓은 사회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이 만든 괴물, 아니 그 시선 자체가 바로 괴물이다.


영화의(각 챕터의) 후반부에는 강력한 태풍이 온다. 이 태풍은 첫 장면에 등장한 화재에 이은 또 다른 재앙일까. 아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 피어난 화마를 잠재우는 치유의 빗물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이 빗물을 오롯이 맞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잡아준다. 이 후반부 시퀀스에는 그렇게 씻겨나가는 아픔. 아니 그 아픔이 씻겨나가길 바라는 이 영화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눈부신 하늘 아래 마음껏 뛰노는 미나토와 요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끝이 난다. 다시 태어나길 원했던 두 아이의 행복한 모습. 과연 그들은 바라던 것처럼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 선택권은 ‘시선’을 가진 사회의, 바로 관객들의 몫이다. <괴물>은 그렇게 스크린이 아닌 객석에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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