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가 디즈니 인수 후 처음으로 나온 <데드풀> 시리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최근 몇 년 사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중심에 자리한 ‘멀티버스’를 다룬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플래시>가 그랬던 것처럼, 멀티버스를 활용해 성공적인 작별 인사를 건넨다. 시끌벅적 요란하게 꾸며진 엽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지막 인사말은 “굿바이 20세기 폭스”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를 통해 공개됐던 슈퍼히어로를 영화로 끌고 오며 그들과 관객들이 서로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할 기회를 제공한다. 애틋한 마음이 연출을 맡은 숀 레비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장면, 장면마다 묻어있다. 물론 그 안에서 <데드풀>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색깔을 절대로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데드풀과 울버린>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는 이미 닫힌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여느냐였다.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 캐릭터는 <로건>을 통해 이미 멋지게 퇴장한 바 있다. 죽음으로 물러난 휴 잭맨의 울버린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끄집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파묘’. 무덤을 파헤친 후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뼈대로 적을 베어나가는 데드풀의 모습을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뻔뻔하다. 그래서 더욱 <데드풀>스럽다.
이후 이 영화는 관객을 놀라게 할 카메오들을 연이어 보여준다. 중후반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블레이드>의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 <데어데블>과 <엘렉트라>의 엘렉트라(제니퍼 가너), 마침내 대중 앞에 공개된 갬빗을 연기한 채닝 테이텀. 그리고 이들에 앞서 영화의 초중반에 존재감을 드러낸 <판타스틱 4> 속 크리스 에반스의 휴먼 토치까지. 모두 그동안 마블 히어로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얼굴이다.
이 영화가 이들을 퇴장시키는 방식은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오래전 막을 내리며 잊혀진 영화(<블레이드>) 속 영웅, 흥행에 실패하여 잊혀진 영화(<데어데블>과 <엘렉트라>) 속 영웅, 제작이 취소되며 잊혀진 영화(<갬빗>) 속 영웅. 이들 모두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과 울버린이 걷는 영웅의 길을 도우며 영웅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여기에 <판타스틱 4>로 실패를 경험했던 크리스 에반스. 그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캡틴 아메리카로 영웅다운 퇴장을 한 만큼, 이번 영화에서는 기꺼이 자신의 흑역사인 휴먼 토치를 드러내 보이며 유쾌하게 사라져간다. 이렇듯 블레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웅이 20세기 폭스를 통해 공개(혹은 공개 준비)됐기에,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주는 이 영화는 마치 과거의 20세기 폭스에게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웨이드 윌슨의 생일 파티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한바탕 시끌벅적한 파티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충분히 즐겁지만, 영화의 진입장벽은 다소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매우 높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사용 설명서는 이미 우리 곁을 스쳐 간 지난 시간 속의 수많은 영화들이다. <엑스맨>과 <데드풀> 시리즈는 물론이고, 수많은 작품들의 레퍼런스가 데드풀의 쉬지 않는 입을 통해 끊임없이 나열된다.
이렇다 보니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드풀의 중심 이야기에는 좀처럼 힘이 실리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게 앞서 멀티버스를 훌륭히 다룬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플래시>와 다른 점이자, <데드풀과 울버린>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돌아온 이 영화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걸걸한 입에서 온갖 음담패설이 쏟아지고,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적들로 인해 유혈이 낭자하지만, 예전의 <데드풀> 시리즈가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