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느낌나는 한 평 텃밭 만들기
겨울 내 얼어붙은 땅이 살짝 부드러워진 것 같아 남편에게 텃밭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전원살이에는 남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들이 꽤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텃밭 만드는 것이다. 조경을 하면서 빈 땅에 모두 잔디를 식재했기 때문에 잔디를 들어내야 하는데 땅 아래에서 뿌리로 서로 얽혀서 하나가 돼 버린 잔디를 걷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위치는 옆집 경계에 닿아 있는 담 쪽으로 정했다. 오후 3시쯤 되면 옆집에 가려 그늘이 지긴 하지만 작년에 방울토마토도 그 정도 일조량에 충분히 열매를 잘 맺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퇴근하고 상추를 딸 때 좀 덜 덥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함께였다.
세 고랑을 만들려던 계획은 하다보니 면적이 충분치 않아 두 고랑으로 줄었고 나는 얼음에 박카스를 넣어다 주며 남편을 응원했다. 두시간 남짓 지나니 제법 밭고랑이 모습을 갖추었다. 그 후에는 내 차례이다. 작년 여름에 얻어 놓은 석회질비료를 흙에 조금 뿌리고 진흙질인 흙에는 상토를 부었다. 석회질 비료를 섞은 토양에는 2주쯤 지난 후에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작년에 텃밭 선배에게 배웠다. 2월 28일에 뿌렸으니 3월12일쯤 모종을 식재하면 될 것 같다. 모종은 담양장에 가면 모종을 많이 파는 곳을 작년부터 정해 두었다. 상추와 부추, 대파를 심을 예정이고 작년에 방울토마토를 심은 곳에 이번에도 방울 토마토를 심을 예정이다.
이제 텃밭 경계석을 만들어야 한다. 경계석은 동네 다른 집들을 돌아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붉은 벽돌과 굴림사구석 두 가지로 후보를 좁혔는데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지만 제주도 느낌 나는 굴림사구석으로 정했다. 굴림사구석을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이곳저곳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30분쯤 거리에 파는 곳을 알아내어 장당 1000원쯤에 80장을 구입해서 차 트렁크에 실고 왔다. 굴림사구석은 파렛트 단위로 판매하는데 한 파렛트에는 500~600개가 들어 있다. 파렛트로 구입해서 소나무 둘레에 장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운반비용이 별도로 드는데다 지게차까지 동원해야 한다고 해서 마음을 돌렸다.
경계석을 놓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땅을 파낸 모양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그대로 놓으면 돌이 비뚤어져서 보기 안 좋다. 남편은 고무망치로 경계석을 두드려가며 생각보다도 가지런하게 경계석을 놓았다.
한평도 안 되는 텃밭을 만드는데 하루가 다 저물어간다. 그래도 한 번 만들어놓으면 몇 년이고 나 혼자서 작물을 심고 수확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자주 도움을 받는 지성아빠 카페에 누군가 올려놓았던 질문이 생각난다. 텃밭을 만드는 비용과 수고가 더 많이 드는데 왜 텃밭을 하냐는 질문이었다. 나처럼 갓 뜯은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이 가족을 건강하게 해줄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일부러 이런 수고를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별로 한 일도 없이 남편 옆에서 부산하게 왔다갔다 하기만 한 것 같은데도 온 몸이 쑤시기 시작한다. 오늘 노동은 이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