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릴까 봐 남기는 기록
2019년 가을부터 취업 준비를 하던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실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지 않아, 어디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이렇게 헤매는 와중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업해 나갔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뒤쳐지는 기분,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 2020년 1월, 코로나가 창궐했다. 그 당시 대구시청에서 인턴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그 누구보다 코로나를 빨리 접하게 됐다. 그리고, 사회가 멈춰가는 게 느껴졌다. 하나 둘 채용 공고가 올라와야 했던 3월과 4월, 많은 기업들이 채용을 대폭 축소했고, 나는 더욱이 급해졌다. 앞서 취업한 친구와 선배들의 말 따라서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다 지원했고, 지금의 회사(였던)에 운이 좋게도 4월 서류와 AI면접에 합격했고, 5월 1차 면접을 거쳐 6월 최종면접에 합격했다. 코로나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2020년 7월 이 회사에 입사했다.
사실,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를 제외한 문과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많지 않음을 알기에 '영업관리'라는 직무에 지원했으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든 생각은 '나갈 준비를 하자'였다. 무더웠던 7월 입사한 나는 편의점 직영점의 매니저직을 맡았다. 편의점의 전반적인 운영을 해보며 앞으로 해나갈 영업관리 직무에 대한 스킬을 쌓는 시간을 회사 측에서 준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달랐다. 영업관리직에 필요한 스킬을 쌓을 시간은 없었고, 편의점 하나를 운영할 시간만이 있었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도를 해보라며 독려했지만 그 시도를 하며 폐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위에서는 책임을 물었다. 스태프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그 자리에 매니저가 근무를 들어가게 해서 영업이익을 관리했다. 하루에도 300명~400명이 들어왔다 나가는 매장에서 먼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안 되는 그런 군대식 문화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과자가 든, 라면이 든 박스를 칼로 뜯고 진열대에 진열하고, 무거운 맥주와 소주 박스를 워크인 안에 가지런히 정리해야 했다. 이 시절 들었던 생각은 '와, 이건 굳이 대학을 안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일 텐데.'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제법 밤공기가 쌀쌀해지는 10월이 왔다. 4개월의 직영점 생활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 이후에 직영점을 운영할 후배 2명이 들어왔고, 나는 슬슬 영업관리직으로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영업관리직이 아닌 점포개발직으로 발령이 났다. 기존 운영 중이던 점포를 관리하는 직무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점포를 오픈하는 직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런 말을 나 스스로 하기는 그렇지만,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점포개발 직무는 '꽃'이라고 불릴 만큼 핵심적인 직무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점포개발 직무는 다들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유는 그랬다. 경직된 문화, 실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직무, 즉 한 달에 점포 개점을 하나씩은 해야 하는, 그런 직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업무 스트레스는 더 과중 돼있는 그런 것으로 회사 내부에서 인식되고 있는 직무였다.
아무튼, 나는 개발직무를 하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격하고 경직된 문화는 아니었고, 팀장과 팀원들 모두 나에게 잘해줬다. 물론, 일은 힘들긴 했다. 내 성격상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살갑게 대화하지 못하는데, 그런 것들이 요구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지역에 한 명의 개발 담당만이 있기 때문에 팀별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철저한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도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사실, 나는 편의점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주변에 편의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편의점 숫자가 좀 줄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편의점 개수를 늘리는 일을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웃겼다. 그런데, 현장에서 걸어보고, 밤에 야간 상권도 보며, 상권조사를 하니 완벽한 레드오션은 아닌 한 85%의 레드오션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숫자를 개점한 것은 아니지만, 소도시와 소멸 예정인 도시에서 16개월간 10개의 편의점을 개점했다. 너무나 단순한 숫자 10으로 정리되기 힘든 여러 이야기들이 이 속에는 들어있다.
먼저, 개점에 이르는 절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상권분석을 먼저 한다. 이 상권분석은 실제로 걸어 다니며 유동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그 유동인구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배후세대는 얼마나 되는지, 그 상권의 특색은 어떠한지, 그 상권과 유사한 상권에 위치한 우리 편의점의 매출 데이터를 비교해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한다. 이 이후에 건물주와 점포 조건에 대한 협상을 한다. (물론, 이 이전에 조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본다.) 그리고 조건이 확정된 점포를 운영하고 싶어 하는 가맹객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편의점을 운영 중인 점주들 혹은 그분들의 지인을 통해 찾아보기도 하며, 본사로 연락이 오는 사람들을 상담하며 점포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점포와 점주가 확정이 되면 도면을 짜고 공사에 들어가고 개점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흐르길 바라는 사람, 아무것도 몰라서 모든 걸 나에게 맡기는 사람,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 등등 개중에는 정말이지 나이스 한 사람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결국 내가 얻은 사회의 교훈이 있다면, 모든 것은 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단 돈 만원에도 쉽게 흔들리는 그런 인간의 내면이 너무나도 많이 눈에 보였다. 그런 돈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절충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저기 위에 적었던 10이라는 숫자였다. (아마, 협상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수는 어림잡아 100명은 넘을 듯싶다.)
개발직을 하며 느꼈던 생각들에 관해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