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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캉 May 15. 2022

첫 번째 퇴사 #2

인생의 짧은 한 챕터의 마무리

1편이 있습니다.



- 전화

  10개의 편의점을 개점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다양한 회사 부서 사람들과의 연락, 외부 공사업체를 비롯한 외부업체와의 연락, 전화를 싫어하던 나에게는 정말 싫은 나날들이었다. 한 달 평균 통화 시간 700분은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수치화해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통화시간 대부분이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연락이었고, 그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여러 방면으로 전화를 한 시간이었기에 힘들었다. 그럼에도 거의 매일같이 연락하던 대리님과의 통화는 내 회사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무래기 시절부터 매번 전화가 와서 '뭐 하고 있냐', '쉬어가면서 해라', '몸 생각하면서 해라' 등의 안부 연락부터 회사의 이런 점이 싫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개점이 잘 안 풀린다라는 불평불만 섞인 얘기들을 나누면서, 내 속에 있던 불만과 고통을 내뿜을 수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었다. 힘들었던 시간 속 차에서 그 선배와 나누던 실없던 이야기들은 휴게소의 호두과자처럼 날 쉬게 만들었다.


- 운전

  나는 입사하기 전에는 운전을 아예 하지 못했다. 14년도에 딴 운전면허는 있었지만, 그 후로 운전대를 잡은 지는 무려 6년이나 지났었다. 그래서 합격하자마자 아빠의 차로 운전을 배웠다. 운전을 가르쳐 준다던 아빠는 갑작스레 대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이제 운전해보라고 하며 나와 자리를 바꿨다. 그 후, 바로 나는 운전대를 잡았고, 브레이크와 엑셀의 위치도 헷갈리는 채로 운전을 했다. 마산 현동에서 저도연육교로 가는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불안하게 주행했다. 손에 땀이 가득 찼고, 다리 근육은 계속 긴장되어 있었다. 한 번은 산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내버스 때문에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데 엑셀을 잡아서, 진짜로 사고가 날 뻔했지만,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아빠는 내색을 안 했지만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어떻게 사고를 안 내고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마을을 한 50바퀴 계속 돌았고, 어느 정도 감을 익히게 되었다. 그렇게 일하는데 필요한 필수 스킬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운전은 매우 고된 수행 같았다. 매달 4000km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편의점 오픈할 곳을 찾다 보니, 집에 오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는 날이 다반사였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먼저 무릎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허리, 엉덩이, 허벅지, 햄스트링까지 아주 완전히 맛이 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7월에 89000km짜리 중고차가 22년 4월 162000km짜리 중고차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7만 3천 키로를 1년 하고도 9개월 만에 탄 거니까, 운전이 많이 싫어졌다. 재취업을 하게 되면, 지금 아반떼를 팔고 SUV로 넘어가서 몸을 좀 편하게 하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뭐 가끔씩은 좋긴 했다. 일이 아니었더라면 가지 않았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가~~~끔씩 나오는 예쁜 풍경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했고, 남들이 사무실에 앉아서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있을 때, 나는 차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니, 그런 점은 이 일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좋은 장소들이 생겼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장점이었고.

가끔씩 좋았던 풍경들 시계 방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 책임감

  여러모로 생각해도 나는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타입이다. 나에게 맡겨진 일, 역할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해야 마음이 놓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개점을 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큰 부담을 느꼈다. 회사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 이거보다는 이 편의점을 운영하게 될 점주 입장에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무리 개점이 없더라도 점주들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해가며 점포를 오픈하기는 싫었다. 뭐 편의점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우선 모아둔 자금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편의점은 무엇보다 적은 투자금으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2,270만 원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그들의 주머니 사정은 대부분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편의점을 해서 실패하면 그들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을 나는 만나왔다는 것이다. 나를 만나서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평균 이상의 매출을 낼만한 점포만 욕심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점주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개점을 했지만, 나는 그 책임을 지기가 싫었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그 점주들과 상담, 협의 끝에 개점을 결정하면, 끝에 항상 이런 말을 붙였다. '저는 어디까지나 상권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담당이고, 이 데이터와 상권에 대한 설명으로 개점을 결정하는 건 점주님이다.'라는 말을.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내 어깨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였다.

  이렇게 개점한 10개의 점포 중에 매출이 평균 이하로 나오는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다는 것은 책임감이 이 일에 도움이 되었다는 방증이 아니었을까.


- 조직

  모든 조직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본사의 기획팀과 현장에서 뛰는 담당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다르다고 느껴졌다. 사실상 프랜차이즈라고 하면, 양적인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는 그 양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개발팀에 대한 지원이 너무나도 열악했다. 담당들에게 주어지는 임무와 목표는 과다할 정도로 많으면서 그에 대한 보상은 합당하지 않았다. 으레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오히려 이것밖에 못해오냐고 윽박을 팀장과 부장한테 그렇게 질러댔다고 하니, 이 간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현장과 덜 떨어진 생각을 하며, 얼마나 숫자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47,000개의 편의점이 있다. 그것도 있을만한 자리에는 다 들어가 있는 그런 상황 속에서 뭘 더 얼마나 차려와라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숫자 만들기에만 혈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팀은 전사 2등이긴 했다만) 팀장급까지는 담당들의 고충을 알고 으샤 으샤 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위에 고인물들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  앞으로 뭐해먹고살지?

  회사에서 나오기 전, 인터넷에 퇴사를 검색해보면,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이라는 말이 눈에 가장 띄였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다니고 싶지 않았던 회사를 나오니 회사 밖은 따스한 햇살과 숨 쉬는 초록빛이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동안 벌어둔 돈이 있고 그 돈으로 공부하면서 부족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앞으로 뭐해먹고살지. 큰 고민이다. 공부에 전념하고 있지만, 내 능력에 대한 의심도 들기도 한다. '저 얼마 안 뽑는 사람 사이에 내가 뽑힐 수 있을까. 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준비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제치고 붙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미 나는 퇴사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씩 천천히 완벽하게 해 나가는 수밖에. 

  조금만 더 치열하게 살아가자. 내가 달성하려는 바를 달성할 때까지.


  '겨울이 깊었으니 봄이 멀지 않았을 겁니다. 모진 겨울을 견뎌낸 것들이 그 봄을 맞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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