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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플로우 Jul 23. 2022

인구구조, 막을 수 없는 흐름

막을 수 없는 인구학적 흐름, 그에 비해 미약한 개인의 발걸음


  어느덧 날씨가 화창해집니다. 보건소에 내원하는 환자들도 점점 늘어납니다. 제가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시골의 보건소에서 아이들 예방접종을 해주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아이들부터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내원하며, 모두 예방주사를 맞기 전에 걱정 어린 표정으로 제게 예진을 받습니다. 5살 이하의 아이들은 저만 보면 예외 없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무래도 저는 무섭게 생겨서 유치원 교사나 소아과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될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습니다.


  1년 넘게 아이들을 진료하며 수많은 표본을 접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체감상 시골동네의 만 14세 이하 어린이의 절반 가까이는 혼혈아, 즉 다문화가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절반이라니,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해보지는 않아 과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제가 느낀 것을 그대로 말씀드릴 뿐입니다. 아이의 이름은 한국식 이름이지만 학부모 서명란에 가장 많이 보이는 어머니의 이름은 응우옌 또는 나탈리아입니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조합되어 그런지, 아이들 눈동자가 정말 예쁩니다. 수줍어서 제게 말을 못 꺼내는 아이들을 대신하여, 어머니들은 어눌하지만 순수한 말투로 제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하십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속 불가능한 바람이었습니다. 작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젊은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더 이상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할 만큼 늙어서 부양을 받아야 될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시기가 옵니다.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한민족(韓民族) 표본의 합계출산율이 2명 이상으로 올라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사회체제가 오든, 그 어떤 경제상황이 오든, 결국 인구가 소멸하면 그 국가는 존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요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많이 볼 수록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집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대한민국의 인구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민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다문화가정이 더 많이 형성되는 것 외에는 현실적 대책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의 흐름은 아직 도심 속 빌딩 사이를 파고들진 못한 것 같지만, 꽃과 바다가 있는 시골 동네에서는 벌써 눈에 띄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과 자기소개 등으로 유추해본 결과, 이곳 구성원들 중 대부분은 MZ세대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MZ세대로, 아직 사회초년생입니다. 소득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직업을 선택하든, 제 수입의 원천이 근로소득이든 자본소득이든, 제가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아마 지금으로부터 20년쯤 후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회구조가 지금과 같다는 가정 하에요. 그렇다면 20년 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물론 미래는 감히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은 결국 본인의 예측을 토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투자를 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되니 저 역시 조심스럽게 저만의 예측을 해봅니다.


  정확한 데이터가 궁금해서 국가통계포털 인구피라미드를 찾아보았습니다.


- 2022년 현재 20세~39세 인구수는 약 1357만 명이며 60세 이상 인구수는 약 1314만 명입니다.

- 2042년 기준 20세~39세 인구수는 약 890만 명이며 60세 이상 인구수는 약 2160만 명입니다.


  생산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60세 이상의 머릿수가 젊은 연령층의 2배를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MZ세대는 필연적으로 소위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를, 다른 표현법으로는 586세대와 그 직후 세대를 부양해야 됩니다. 물론 ‘어른들’이 우리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일조하였으며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훌륭한 세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분들 중 상당수는 아직 일을 하고 있지만, 20년 후에는 더 이상 경쟁력 있는 근로자로서는 일을 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본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했든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는 결국 본인들의 노후를 부양할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 줄 '큰 정부'를 원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노후에 수입이 끊기는 것을 체감하게 되면, 국가 재정을 늘려 노후 복지를 해줄 것을 약속하는 큰 정부를 표방하는 후보자를 행정부의 수반에 앉히고자 투표하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질 것입니다.


  노령화되어가는 국가를 존속시키기 위한 비용은 점차 증가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중 일부가 본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윗세대를 부양할 생각이 없다고 하셔도 전혀 달라질 게 없습니다. 노인 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을 늘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생산력 있는 젊은 세대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의 계좌에 수입, 혹은 월급이 들어오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세금을 떼어갈 것입니다. 미처 떼어가지 못한 부분은 5월에 한번 더, 연말정산 때 다시 한번 더 챙겨갈 것입니다. 차를 살 때 차값만큼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소득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알뜰하게 소비를 줄일수록, 오히려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젊은 층으로부터 걷어간 세금은 생산적 근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재분배되거나, 혹은 ‘지하철 안내원' 등 더 이상 생산성 측면에서 필요가 없는 공공형 실버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 세대로부터 걷어간 세금을 은퇴한 누군가의 일시적 봉급으로 치환해 줄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은 정부가 아니면 그 어떤 주체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는 분야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습니다. 사회보장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한 불필요한 비용 역시 증발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100만 원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180만 원 정도를 징수해야 할 것이고, 80만 원은 증발할 것입니다. MZ세대 개개인의 능력치와 소득이 올라가는 속도보다 사회적 비용으로 납부하는 세금이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빠를 것입니다. '월급보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은 20년 후의 살벌한 사회에서는 농담으로도 쓸 수 없는 문장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제 경제적 능력의 발전 속도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앞지르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문장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단지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 이해관계에 따라 저는 언제나 ‘작은 정부'를 원했고, 앞으로 20년간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인구 위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1년간 아낀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환수당한 지난 연말정산의 악몽을 떠올리며 제가 번 소득 대비 적은 세금을 납부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심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실제로 지금 정부 기관에서 복무하며 정부가 개입하는 분야의 필연적인 비효율을 직접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참 독특하다는 걸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합계출산율이 0.5명 이하로 내려갈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럴 경우 능력 있는 MZ세대가 가장이 되었을 때에는,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열심히 윗 세대를 부양하지만, 우리가 늙었을 때 부양해줄 젊은 세대의 머릿수는 우리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저처럼 경제적 이기심이 많은 MZ세대는 소득이 많아질 무렵 작은 정부에 표를 던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소용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머릿수가 윗세대의 절반도 안 되는 MZ세대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약속하는 정부는 결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그런 정부는 수립되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을 테니까요.


  결국 대한민국은 지금의 북유럽 국가들보다도 큰 정부가 운영하는 노령화 복지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사회적 비용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MZ세대가 부담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MZ세대의 퇴사 열풍, FIRE 열풍, 소확행 등의 단어들은 MZ세대의 근본적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조만간 엄습해 올 사회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을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괴리감으로부터 발생한 유행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진료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어느새 수십 년 후의 극단적 상황에 대한 기우로 확장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미래는 저 같은 범인이 함부로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제 예측이 보란 듯이 완벽히 빗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가끔 사람에게 실망하더라도, 사람들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헬조선' 타령을 종종 하지만, 언젠가는 천국 부럽지 않을 선진국이 될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실력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아직 인구구조가 탄탄한 미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장문의 카톡을 친구들에게 보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남아서 훌륭한 선진국 국민으로 일조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본심을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의 모든 바람을 위해서는 인구구조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아직 역부족이지만, 분명 이민자들이 유입되는 흐름은 시골 동네부터 눈에 띌 정도로 시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IT 기술의 발달로, 가히 천재 1명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10년 내로 천재가 나타나서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압도적 역량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굳이 고마운 이민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3~4명씩 낳아도 걱정 없는 사회가 되어 대한민국이 지구 상 유일한 단일민족 선진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흐름을 막고 사회를 개선하는 것. 그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제 자신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아직 제 능력은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느덧 주말이 다가옵니다 이번 주에는 업무적으로 신경 쓸 일이 많아 책을 1권도 채 못 읽었습니다. 사회의 변화 속도에 비해 저의 발걸음이 너무나도 미약한 듯하여 아쉬웠던 한 주입니다. 아직 주말이 남아있으니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한 역량을 발전시키고자 남은 이틀간 보폭을 키워 정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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