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레터
영화를 좋아해서 가능한 여러 OTT를 구독했었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쿠팡 플레이어.
그러나 퇴직의 여파로 지금은 넷플릭스와 자주 쇼핑으로 활용하는 쿠팡 와우회원으로 쿠팡 플레이어만 남았다.
오늘 넷플릭스에 접속하니 대문에 [누가 공작의 춤을 보았나?]라는 드라마를 떡하니 내게 보여주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시청하는 내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이리라.
히로세 스즈 배우를 [아수라처럼]이란 드라마에서 처음 봐서 얼굴은 알고 있었다. 상당히 카와이한 일본 배우다. 실제로 보면 사랑에 빠질 만큼.
[누가 공작의 춤을 보았나?]는 아직 1화밖에 나오지 않아 시청을 시작할 시 다음스토리를 기다리는 지난한 시간을 감당해야 하기에 시청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상세정보에 들어가서 히로세가 촬영한 다른 작품이 넷플릭스에 뭐가 올라와 있는지를 확인했다. 몇 가지 없는 작품 중에 눈에 들어온 건 [라스트 레터]였다.
궁금해서 한번 클릭해 본 영화는 처음부터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의 향기가 흘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와이 슌지의 작품이었다. [러브레터]를 상당히 감명 깊게 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 감독 작품이 정서에 맞나 보다.
[라스트 레터]에서 히로세는 두 가지 역을 맞는다.
토노 미사키 - 소설가 쿄시로의 과거 연인이자 자살한 아유미의 엄마
오노 아유미 - 미사키의 딸
두 역할 모두 같은 나이대의 여고생을 연기한다. [아수라처럼]에서는 완연한 성인처럼 보이는데 여기서는 앳된 모습이다.
영화의 내용은 [러브레터]와 같이 죽은 옛사랑의 기억에 관련된 이야기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두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 죽은 미사키의 동생인 키시베노 유리 그리고 미사키를 사랑해서 그녀의 기억을 소설로 쓴 오토사카 쿄시로. 그 두 사람이 동창회에서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리는 언니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언니의 동창회에 참석하지만 사람들은 유리를 미사키로 오해하면서 유리는 자신이 동생임을 밝히지 않고 미사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쿄시로와 만나게 되고 둘은 후에 편지를 주고받는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것이 일본 작품을 보는 묘미 중 하나다.
굳이 언니의 죽음을 알리러 동창회에 참석한 유리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일이 없었다면 쿄시로와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고 쿄시로도 미사키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후에 아유미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좋아했던 남자라 해도 가정이 있는 유리가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받는 부분들. 그 외에도 발견할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감동 있게 본 장면은 쿄시로가 자신이 다닌 폐교된 고등학교에 다시 찾아갔을 때, 그곳에서 미사키를 빼닮은 아유미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옆에는 유리를 빼닮은 소요카가 있다. 쿄시로와 관계된 여성들의 2세들과 조우한다. 자신의 옛사랑을 빼닮은 아유미를 보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옛 연인을 닮은 그녀의 딸.
쿄시로는 시간의 멈춤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을까. 간혹 시간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런 순간들은 찾아온다. 사랑으로 시간과 공기가 멈춰버리는 날들. 그런 날들을 이와이 슌지는 [라스트 레터]에서 표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