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입니다. 일을 너무 못하는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직장인들의 커뮤니티로 유명한 사이트 ‘블라인드’에 올라왔던 2021년의 글이다. 글은 다소 길었지만, 후배를 대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고, 마음이 짠하고 공감되는 부분은 스크롤을 올려가며 다시 정독했다. 글에는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심정을 호소하며 사연이 마무리되었고, 내 마음은 어느새 알 수 없는 연민으로 파장이 일고 있었다.
“입사한 지 4개월 된 신입니다. 일을 너무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일머리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능수능란하고 싹싹하고 일 잘하는 팀원이 되고 싶습니다. 이거 알려주는 학원 있으면 당장이라도 돈 내고 다닐 것 같아요. 입사한 지 몇 달이 흘렀는데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궁금하다. 글을 올린 지 3년쯤 지난 지금 이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잘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친구이니 멘탈 관리만 잘했다면 어디선가 자기 몫을 잘 해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신입사원을 괴롭히는 착각
‘일을 잘하고 싶지만, 업무가 정확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키는 대로 했어도 잘못됐다고 혼나기 일쑤다. 상사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내가 무능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할 때는 내가 회사에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상사의 얼굴을 떠올리면 울렁증이 시작된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 막막하지만, 오늘도 비장하게 출근길에 나선다.’
신입사원은 누구나 이런 고민에 빠지고, 일 잘하는 것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 상사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이 많지만, 신입사원은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서 더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신입사원들이 진짜 일을 못 하는 사람일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아직은 익히는 과정이고, 조금 서툴러도 된다. 선배 또한 후배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 후배가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배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상사의 곱지 않은 말투에 자책하거나, 불만이 생기거나 둘 중 하나다. 이럴 때 직원들은 생각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특히 신입사원을 괴롭히는 생각의 오류는 다음의 3가지가 대부분이다.
실수를 자책하다가 자신이 일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다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의 질타에 기가 죽은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일을 잘하는 것이 엄청나게 특별한 일을 많이 해내는 것이라 착각한다
이런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 중에는 훌륭한 잠재력을 소유한 사람이 많다. 분명 잘하고 있고, 장점이 많은데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판단해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러한 사태에 원인을 따지자면, 먼저 반성해야 하는 쪽은 상사다. 후배를 가르치고 바로 잡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음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보다 당신에 대한 상사의 평가가 의외로 좋을 수도 있다.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일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부러워하는 선배도, 팀장도 모두 그 시기를 거친 사람들이고, 당신도 역시 그 시기를 지나가는 과정에 있다.
시간 지나면 님이 더 잘하실 겁니다
앞에서 소개한 사연에 진심 어린 댓글들이 많았다. 그중 내게도 감동적이었던 댓글 몇 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는 모두 같은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고 이겨냈거나, 지금도 그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댓글 1: 피드백받을 때 기분 나쁜 말투에 집중하지 마시고, 하나씩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피드백 많이 수집하는 만큼 성장하실 거예요.
댓글 2: 저도 버티다가 2년 지나니 업무 파악하고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업무가 눈에 들어오니 재미있어졌습니다.
댓글 3: 저도 그런 시기 한창 있었는데, 고민이 있으면 반드시 좋아져요.
댓글 4: 물어보는 걸 겁내지 마세요. 신입일 때 많이 물어봐야 합니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시기예요
댓글 5: 시간 지나면 님이 더 잘하실 겁니다.
나도 이 사연을 보면서 사회초년생 시절에 했던 실수와 고민들이 참 많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볼 줄도, 도움을 청할 줄도 몰랐다. 주어지는 일들을 혼자 해내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다 보니 늘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하루는 회사에 거래처 임원들이 방문했다. 사장님이 회의실에 다과를 준비하라고 지시하셨고, 나는 비즈니스를 위한 다과 세팅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 정도면 내가 보기에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며 사장님의 칭찬까지 기대했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였다. 회의 시작 타이밍에 테이블 세팅이 끝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회의가 시작된 다음 세팅에 들어간 것이다. 회의 테이블 위에 다과를 차례차례 올려놓는 동안 대화는 간헐적으로 끊어졌다. 사장님이 준비가 늦었다고 호통을 치셨고. 나는 무슨 정신으로 다과를 놓고 나왔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지난번 그분들이 회사를 재방문한다고 연락이 왔다. 사장님도 그 미팅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눈치였다. 오늘 미팅이 중요하니, 다과도 신경 써서 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지난번 망신을 만회하려고 서둘렀다. 그 덕에 타이밍을 맞추는 데는 성공했다. 나름 만족하며 목례하고 나오려는 순간, 뒤에서 또 사장님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아! 또 뭐가 잘못된 거지?’
문제는 시간을 맞추려고 너무 서두르다 시쳇말로 ‘비주얼’이 너무 안 나온 것이었다.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는 나날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됐다.
회사는 성과를 목표로 긴박하게 돌아간다. 잘못한 부분을 지적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하다. 중요한 것은 한번 지적받은 부분만큼은 확실히 바로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력은 늘고, 점점 더 능숙해진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무렵 후배들이 들어왔다. 나는 혼나면서 배운 일들만큼은 꽤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후배들은 내가 원래 ‘잘하는 사람’인 줄 알고 동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했다. 나는 늘 다짐했다. ‘내 후배는 혼내지 말고 자상하게 가르쳐 줘야지’라고…. 하지만 막상 후배가 들어오니 이래도 혼내고, 저래도 혼내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선배라고 생일을 챙겨주고, 손편지도 써주며 다가오는 후배들이 참으로 대견했다. 나의 상사도 나에게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지적과 질책은 앞으로는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지, 당신이 일을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입인 당신에게 상사가 거는 기대치는 정해져 있다. 시키는 일을 시간 맞춰 해오고 싹싹하게 인사만 잘해도 상사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 중요한 것은 주눅 들지 않는 멘탈이다. 그리고 직장 내 인간관계와 신뢰를 쌓는 이미지다. 실력은 배우려는 자세와 노력만 있으면 언젠가는 늘게 돼있다. 지금은 늦어도 나중에는 분명 ‘님’이 더 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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