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하던 때의 잔여물이랄까, 그런 것들이 몇 가지 남아있다. 주문량은 줄었는데 빠르게 많이 저렴하게 만들던 시스템과 가격은 바뀌질 않아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 지금의 사업 형태. 또 도래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채로 너무 많은 원단을 생산해버린 경우.
우리 공장/공방에는 만들어진지 꽤 된, 비닐로 포장되어서 뜯기지도 않은 명화 원단 롤이 몇 덩이는 있다. 몇 번의 이사로 몇 덩이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젠 명화 반짇고리가 많이 나가질 않아서 생산해둔 원단만 남아버렸다.
난 검은색 베이스를 좋아하는데, 내가 어두운 색의 반짇고리나 수납함을 만들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어두워서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고 한다. 설득해서 장미 반짇고리를 만들었는데, 코스모스 반짇고리만큼 비등하게 잘 나간다. (으쓱)
반짇고리로 원단을 소진하는 것엔 한계가 있어, 파우치도 만들었다. 자카드 원단은 프린트된 원단이 아니라 색실로 짜인 원단이라 두껍고 질긴 편이다. 파우치를 만들고 원 모어 백이라는 파우치, 가방 편집숍에 입점 신청을 했었는데, 거절됐다. 파우치가 이것뿐이었고 원 모어 백은 당시에 나날이 커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방향이 맞지 않았던 걸까 생각했다.
이 파우치 외에도 다른 명화 원단으로 지퍼 파우치나 각이 진 에코백을 만들고 싶은데, 실행력이 부족했다. 리는 미싱을 하는 사람인지라 미싱 공장에 돈을 주고 맡기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나도 금세 추진력을 잃었다. 만들어 둔 파우치가 조금 더 소진되고 나면 캔버스 백을 의뢰해봐야지.
지금 갖고 있는 원단 재고가 워낙 무겁고 많아서 당분간 우리의 공방 선택지에는 2, 3, 4층이 없다. 언젠가 명화 원단을 다 소진하는 날이 온다면, 그땐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공방이 리의 따뜻한 작업실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충분히 아늑하긴 하지만, 어떤 무게감이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무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