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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Nov 24. 2023

두서없이 막쓴 글 14

1. 교회는 사람이 만든 하나의 공동체일 뿐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는다. 공간이 아닌 여러분 자신이 교회가 되어라 네팔에 나마스테라는 인사의 의미는 '당신 영혼에 깃든 신께 인사 올립니다.'라는 뜻을 지녔다. 나는 이 의미에 대해 듣고 크게 전율했다. 교회가 하나님이 아니구나 건물이 그분을 모시는 성소가 아니구나. 가끔 카페에서 교회를 다니는 아주머님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가관이다. '목사님한테 식사대접을 했는데 글쎄 나한테 실망스럽게 대하지 뭐야' 이 아주머님의 하나님은 목사님이다. 정확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이다. 성경에 나오는 맹인은 이와 같이 시력을 잃은 사람이 아닌 통찰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 생각한다.


2.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말아라 흔히 베스트셀러 책들을 보면 긍정의 힘, 긍정적이어야 한다 등 긍정이라는 이슈는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반대로 부정적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시선과 고집 이기적 등 좋지 않은 표현이 대다수다. 하지만 나는 과감히 부정적이어도 좋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긍정적이면 안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만일 내가 너무나 부정적인 상태라면 나는 그것도 괜찮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너는 사고가 너무 부정적이야 라고 떠들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곁을 떠날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부정적인 현재 상태가 당신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려 가면을 쓰지 마라. 때로는 부정적인 사고가 위험을 방지해 주고 손해를 감소시켜 준다. 또한 부정적이게 되어 주변에 사람들이 떠나간다면 여러분은 사회적 외톨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비판을 과감히 무시해라. 여러분들에겐 그로써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 니체가 말했다. '고독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자유입니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고독해져야만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다. 타인과 있을 때를 떠올려 보라.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왜 이렇게 행동하지? 등 복잡한 생각과 생각의 중심은 타인을 향해있다. 혼자 있을 때 여러분은 자유를 얻고 성장한다. 나에게 쓰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사회와 단절하고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회라는 공동체는 개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개인이 없다면 공동체가 어디 있겠는가?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서로 맞춰주기 위해 애쓰는 인형놀이 같다. 사회로 나간다면 우리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가면을 썼다 벗을 수 있어야 한다. 가면을 온전히 벗고 있을 자유가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오늘 하루는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와 함께 보내는 저녁을 맞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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