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의 진리나 본질을 찾기 위해 어딘가로 들어갑니다. 내면의 깊은 문일 수도 있고 지혜로운 이의 품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던져온 질문이며 저의 삶 속에서도 가장 찾아 헤매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알려주길 바라며, 내가 인정한 지혜로운 이들의 덕목을 마음에 품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르침과 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깨달은 것도 있으며 내적인 성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진리라는 게 무엇일까요? 진리라는 건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절실한 무언가가 진리입니다.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내적인 자유가 진리일 수 있으며, 착한 아이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화를 내며 내 주장을 해보는 것이 진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어렵게 접근을 해서 복잡해졌습니다. 추상적으로 접근을 한다면 광범위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높은 철학적 질문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도움이 될까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수많은 철학가 문학가 운동가 등이 말해왔습니다. 우리는 참고할 뿐입니다. 그들과 다른 시대의 살고 있으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동일체 되어 이도교 같이 추상적 진리를 추앙하는 바보들이 됩니다. 제가 이제 것 삶이 그러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수준 높은 사람들 속에서 주워들은 말들이 참 많았죠. 무언가를 기억하고 그들이 보여주고 말하는 삶의 모범들을 내 방식 데로 해석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또래에 비해 늘 능숙한 어휘를 구사했고 겉으로 조금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었죠.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그것이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있고 남들이 생각지 못한 기발한 발상을 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을 때 찾아온 무력함은 처참합니다. 내가 배워온 것들을 기여할 곳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나태한 삶이 되겠어요? 사람은 의외로 받기만 하는 형태의 사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줄 수 있는 사랑에서 더욱 자기 존재감을 느낍니다. 제가 몇 년을 혼자 보내며 이제야 조금씩 깨달은 진리란 이렇습니다. 남들과 함께 할 때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며 칭찬받으려 애씁니다. 그 대가로 오는 달콤함이 추진력이 되어 자존감이 올라가죠. 하나 혼자 있게 되면 사랑받기보단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올라옵니다. 소속되어 있을 때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가면을 쓴 친절과 사랑이었다면 혼자 있을 적 내가 느낀 건 순수하게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였습니다. 내 안의 에너지가 혈기왕성한 걸 느꼈죠. 히키코모리라 부르는 이들의 대부분은 외적으로 보면 에너지가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용암처럼 끓고 있습니다. 아들러의 논리의 적극 동의 합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받아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지 않으려 트라우마를 이용한다.' 이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고 반기도 들었지만 직접 내가 겪어보니 맞는 말이란 걸 알았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성장하고 발견하기 위해 들어가고 탐구하기보다는 썩어빠진 정신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옷을 더 껴입어봐야 몸이 무거워질 뿐이죠. 걸친 옷을 벗을 때 자유와 진리에 가까워집니다. 우리도 모르게 이 사회 가정 세상에서 배운 여러 가지 습관들이 우리의 목을 조여 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할 필요는 없지만 거기서 무언가 나에게 떡국물이라도 떨어질 거란 기대는 멈추는 게 좋습니다. 그리하면 점차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탄다는 건 마법 같은 일입니다. 집안에서는 폰을 만지지 않고는 도무지 불안해서 덜덜 떨던 내가 산을 탈 때는 핸드폰은 만지지도 않습니다. 집에선 도대체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복잡한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생각안에 불안이 들어왔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태함에 점령당했죠. 산에 간다고 생각이 멈춰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좀 더 생산적인 생각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의 열쇠를 간혹 발견하곤 합니다. 찬양 곡 중 '부르신 곳에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부르신 곳에서 예배한다는 곡이에요. 진리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머나먼 땅 끝에서 진리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죠. 진리는 항상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우리를 부릅니다. 그걸 알아차리고 살아가면 되는 간단한 것입니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분들은 야성을 억제하고 하늘에서 비추는 햇살을 잠시 맞아보세요. 산을 걸으며 항상 해가 나를 비추더군요. 이미 진리라는 등불은 여러분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탐구보다는 그저 내 얼굴을 비춰주는 햇살이라는 온기에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이미 여러분은 진리를 찾은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