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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ay 10. 2024

자유의지

여러분은 동물과 사람이 무엇이 다르다 생각하시나요? 미래의 질문으로는 기계와 인간의 차이를 비교할 수도 있겠습니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기계는 정답을 맞혀가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동물과 로봇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사람일 겁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자유의지라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란 쉽게 말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 봅니다. 깊게 파고들면 선택하기까지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존재하겠지요. 동물은 제 각기 종류의 따라 개성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분명히 다르죠? 이와 다르게 사람은 종류에 따라 구분하지 못합니다.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죠. 동물들도 물론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삶의 가치를 특정한 평가는 어려울 겁니다. 그냥 우리는 보고 고양이다 강아지다 사슴이다 토끼다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고 누구다 누구다라고 특정할 수는 없어요. 다가가서 이름을 물어보기까지 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전까진 말이에요. 알 수 없는 모르는 제삼자 일 뿐입니다. 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와 같이 태어난 목적이 분명한 동물과는 다르게 '사람이란 개인이 태어난 목적을 찾아야 하는 존재 같습니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행동으로 말로 생각으로 대답해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죠. 누구는 동물과 같이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누구는 기계와 같이 완벽주의를 강조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 행복의 기준도, 삶의 질도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많은 게 행복한 삶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겐 가난한 삶이 행복일 수 있어요. 내가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90%의 사람들이 돈이 많은 게 행복이라고 외치지만 10%의 사람들은 돈이 많은 게 불행하다 합니다. 그 이유는 돈이 많았다가 잃어본 사람이나 돈의 유혹을 뼈저리게 경험한 이 들일 겁니다.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어요.

성경 말씀 중 가장 좋아하고 중요한 인간의 역할에 대해 꼭 집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구절이에요. 일반적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재림까지 이겨내고 버텨내라는 미래의 희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 저의 개인적인 믿음은 이미 하나님은 재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말했죠. '신은 죽었다' 오늘날에 우리가 신을 죽였다. 더 이상 사람에겐 신이란 존재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이 이야기는 제가 보기엔 수많은 미래의 나날동안 대두 될 화제일 겁니다. 신은 없다는 무신론자분들과는 다른 주장입니다. 신은 이미 존재하는데 우리가 신을 외면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 곁에 계시는데 하늘에 대고 하나님 하나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현장에 함께 머물러 계시는데 우리는 모순적이게 삶의 바깥 환상 속에서 신을 찾는다는 뜻이 되겠고요.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들 다들 보셨나요? 원작의 진짜 이름은 쇼생크구원이라 합니다. 영화 전반적인 내용은 감옥을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감옥을 우리의 삶이라 보고 탈출을 삶의 해방과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한다면 구원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죠. 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키워드는 '희망'이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해 나가는 것이 사람이었으며 되래 감옥을 출소해 자유를 얻게 됨에도 자살을 선택한 것도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주인공은 감옥 안에서도 희망을 항상 품고 살아가죠. 그를 보고 느낀 한 사람이 출소 후 새 삶을 자유롭게 살게 됩니다. 영화 안에서 주인공은 처참한 감옥 생활에 도서관을 짓고, 동료들에게 맥주를 선사하며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해 줍니다. 제가 감독이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주인공은 신의 역할이었습니다. 환경이 어떻든 '희망'을 잃지 말아야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라는 두리뭉실하고도 추상적인 빛 한줄기의 의미는 위에 성경 메시지와 같이 항상 깨어있으라 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깨어있으라는 의미는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 라는 뜻이 되겠죠. 여러분이 누구든 어떤 삶에 처해있든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 새로운 삶은 여러분들에게 다가 올 미래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을 감옥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살아내지 못한 삶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어 한탄하는 분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아픔이 있으신 분들 태어날 때부터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삶의 불공정함을 외치시는 분들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인 분들은 많을 겁니다. 오늘날의 힘듦과 실패를 기쁨과 성공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와 같이 구원이라는 뜻은 기적적인 요술이 아니란 것입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삶이 내는 문제에 대해 답하기보다는 기계적인 삶을 선택하고 있죠. 초기의 인류는 분명 동물과도 같았을 겁니다. 점차 문명이 발전하며 우리는 진화하죠. 동물에서 현재는 기계와 로봇처럼 정해진 답안지를 향해 신나게 땀 흘리는 고철 덩어리 같아요. 신은 우리에게 목적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목적을 우리가 직접 찾을 수 있게 하셨어요. 그 때문에 고뇌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생각이 너무 많아 외면하며 일에 빠져 살아가죠. 자유의지란 신이 준 인간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멍청하게도 혼란을 겪고 살아가는 거예요. 사실 답안지는 굉장히 단순할 겁니다. 깊게 파고들수록 우리는 로봇과 같이 정확한 정답을 발굴하기 위해 엔진에 열을 가하지만 머리로 찾을 수 있는 정답은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심도 깊은 고뇌보다 우연찮게 흘린 땀 한 방울이 진리를 알려줄 때가 많습니다. 자유의지란 생각에서 행동으로 옮겨야만 완벽해지는 개념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동물에 가까우신가요? 기계에 가까우신가요? 그 두 가지 모두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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