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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Dec 13. 2023

암호화 (Encryption)

인식론적 단상

정보를 암호화하는 것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정보가 읽히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복원이 가능한) 고의적인 정보의 왜곡이다. 이런 목적의 왜곡은 행위 자체가 미적 자극을 주기도 한다. 난해하다는 의미는 숨겨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해독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숨겨진 의미의 존재에 대한 신념을, 해독을 하려 할수록 확신케 해주는 동시에, 의미에 접근할수록 더 복잡한 함정에 기하급수적으로 빠져 들게 되는 구조의 기법도 있다. 암호화된 1억 개의 데이터 파켓의 절반인 5백만 개를 푸는데 십만 flop의 연산이 필요하다면, 그다음의 반인 2백50만 개를 푸는 데는 백만 flop이 요구되고, 그다음 1/4인 1백25만 개를 푸는 데는 천만 flop이 필요한 암호화를 가장 해보자. 이 패턴은 기하급수적으로 점근적(asymototic)이며, 영원히 끝까지 풀 수는 없지만 해독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지속적 동기부여를 받는 구조다.



자연의 <직관적> 아름다움을, 오감의 페리페럴을 통해 수집하여 <인식>된 특정 객체들(나무, 들꽃, 석양, 별 등)의 고유성이 아니라, 의식의 <인지> 과정을 통해 상징화되고 차별화된 카테고리로 전제해 보자. 이때 정보의 처리 과정에 암호화는 없다. 노을에 비친 들꽃의 시각정보가 특정 감성의 임계점을 자극하기까지의 흐름에는 의도(암호화)가 없다. 이 과정과 <예술>은 연관성이 약하다.


이제 위의 흐름에 <의도>를 개입시켜 보자. 노을에 비친 들꽃에게 "기다림과 눈물"이란 인문화된 상징을 부여하며 보편적 직관성을 <변환>시킨 <시>가 쓰인다. 의식은 노을과 들꽃의 시를 읽으며 "기다림과 눈물"을 풀어야 하는 해독과정을 겪게 된다.


시는 직관적 서정을 암호화하는 코딩이다. 시의 압축성도 정보의 변환 (transform)이고 암호화의 한 경우이다. 난해하게 쓰인 시일수록 해독(decryption)은 비례적으로 많은 논리와 감성의 연산이 필요하다. 연산의 증가는 다양한 감성의 카테고리 조합의 <인지>를 의미한다. 이 과정 중 의식은 미적 자극을 경험한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풀어야 할 때는, 숨겨진 정보의 직관적인 수집 과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암호를 만든 사람의 눈과 머리가 되어, 만일 나였다면 이 정보를 어떻게 암호화했을지 생각을 해본다. 마치 난해한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더듬어, 슬픈 정화인지 기쁜 환희인지 작가의 삶의 정보와 시의 공간적 배경들의 카테고리를 조합하여 그 속에 자신을 삽입한 시뮬레이션을 해 볼 필요도 있다. 나는 이 과정을 <공감>이라 부르고 싶다.

지독하게 꼬아버린 난해한 에니그마를 만든 크립토 데이터 엔지니어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도 또한 <공감>으로 보아야 한다. 풀리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시인의 작품만큼 <감동>을 줄 것이다.



flops: floating-point operations per second (초당 실수 연산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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