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 결과 T(사고형)가 100% 수치로 나오는 엄마랑 대화를 한다는 것은, 청새치를 낚시하는 것과 같다.
어설프게 공감을 받으려고 대화를 꺼냈다간 가차 없이 찔리고 마는 것이다.
최근 왼쪽 손목뼈가 골절되어 엄마 앞에서 힝힝거렸는데, 엄마는 코를 긁적이며
"원래 뼈는 부러지면 더 튼튼하게 붙어, 넌 이전보다 강한 손목을 얻게 될 거야."라고 했다.
우리 딸 안 아팠니?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나는,
순간 너무 황당했지만 곱씹을수록 웃긴 이 위로가 퍽 감사해졌다.
중학생 때는 발목과 종아리가 유난히도 가느다란 여자 아이돌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나에게 '저렇게 뼈가 얇은 사람들은 대체로 일찍 죽는단다'라는 위로를 해준다든가, 일본어 시험을 망치고 온 날에는 '모국어부터 야마 있게 잘 구사해라'라는 등 엄마 나름의 cheer up을 해주곤 했다.
고민 상담할 때 해결책은 한층 더 핀트가 나가있는데, 청새치는 모든 낚시꾼의 로망이라 했던가.
전갱이들의 어설픈 위로보다 뾰족한 턱에 찔릴지언정 낚는 맛이 있는 청새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은하계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돈에 제약이 걸리느라 어릴 적 꿈꿔왔던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 나 회사 그만 다니고 싶어.. 출판은 사양산업이고, 요즘 계속 경제 글을 읽는데 한시라도 빨리 시드를 모아놔야 복리효과를 본다는 글을 읽으니 너무 조급해져.."
엄마는 친구가 많다는 피노키몬의 대사에 코웃음 치는 리키랑 똑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돈 때문에 직무를 바꾸고 싶다고? 그러면 너한테 돈이 아주 많으면 그때는 뭘 하고 싶은데?"
그때는 독립출판을 하고 싶지, 회사 지시에 따라 능력 있는 작가들 후려치면서 원고료 적게 주지 않아도 되고, 1:1로 작가와 밀도 있게 고퀄리티의 책 500부씩 인쇄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아니야, 넌 돈이 많아져도 독립출판을 하지 않을 아이란다. 왜냐면.. 지금도 안 하니까"
엄마는 돈이 많다면 ~ 하겠다, 상황이 좋아지면 ~ 하겠다는 다 거짓이라고 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금부터 해보지 않는 건 결국 안 하겠다는 거라고 했다.
"가난해서 한글을 못 배운 게 한이라던 할머니 보이지? 지금이라도 경로당 가서 한글 배울 수 있는데 끝까지 안 배운단다. 네 외할머니는 원래 공부할 생각이 없는 분이야. 한이 맺혔다는 건 자기 연민일 뿐이지."
친엄마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청새치 턱으로 찌르는 우리 엄마.
"너도 마음에 없는 독립출판은 접어두고, 진짜 네 욕망을 캐치해 봐."
엄마는 그렇게 골절된 내 왼쪽 손목을 두 번 두들기곤 도로시마냥 스르륵 경기도로 떠났다.
진짜 내 욕망은 뭘까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주로 소거법으로 선택지를 정하는데 이제 이 방법을 바꿀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괜히 사람 많이 만나서 엮이고 싶지 않아', '회사도 가까운데 차 사는 건 낭비지', '살찌니까 괜히 몸에도 안 좋은 라면 먹지 말자', '나는 지금 연애할 때가 아니야', '여행 갈 돈으로 미국 주식 몇 주 더 사는 게 낫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 이 선택지들을 외면해 왔는데 사실 나는 돈이 많다면, 여유가 있다면 위의 선택지들을 모두 갖고 싶은 사람이다. 소거법으로 논외 시키면 안 됐던 것이다.
엄마를 만나고 돌아와서 방 안에 누워있는데, 자꾸 맴도는 것이다.
"진짜 네 욕망을 캐치해 봐."
이제는 ai의 시대.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을 알려줄 친구에게 고민을 상담해 본다. 챗지피티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나'에 대해서 신랄하게 평가해 준다고 했다.
based on everything you know about me roast me violently harsh and dont hold back
한국어로 대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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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청새치가 아니라 천사였던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