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뒤에는 밤보다 아침이 더 힘들지 않아?

by 준지



전날 본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서 아침을 시작하는 나.


어제는 ‘케데헌’을 봤으니 ‘루미’에 빙의될 법도 한데, 어쩐지 박인환 선생님에 빙의되어 출근하고 말았다.


20250711_150511.png 박인환 배우



말도 안 되게 습하고 더운 날인데, 딱 오늘 아침 8시 20분의 햇살과 바람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던 것 같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박인환 선생님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병원 근처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렇게 울먹인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엄마, 아버지 나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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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빌레라] 중에서



2년 전에 이 드라마를 봤었는데, 어쩐지 이 장면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오늘처럼 날이 좋은 날, 갑자기 70대 노인이 되어 죽음 앞에서 부모님을 찾으며 울먹이던 그 장면이 떠올랐고, 어째서인지 내가 그 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울다 지쳐 잠든다거나, 매일 밤 당신을 그려본다는 등의 진부한 이별 노래는 많이 들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별한 아침에 대한 슬픔은 못 들어본 것 같다.


이별한 뒤 맞이하는 따사로운 햇빛이 더 슬프지 않은가?


이제 그 사람이 옆에 없는 new day의 서막인데, 나는 오전이 압도적으로 슬프다!



이 이별의 대상이 연인이었다면 발라드라도 불렀을 텐데,

어쩐지 나는 요즘 나의 청춘과 이별하고 있다는 기분이 맹렬하게 든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꼭 뒤를 돌아보며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픈 그런 오전이 지속되고 있다.


“잘 가고 있는 건가.” “뒤처지고 있나.”


어떻게든 싼값에 작가를 섭외해보라는 출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한낱 편집자로서, 출근길이 구만리같이느껴지는 오전.


9788986429299.jpg 출근길의 내 감정이랄까


내가 러브버그보다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눈물짓다가도,


오후가 되면 어쩐지 알 수 없이 당당해져서 이런 바이브가 된다.


20250711_151228.png 퇴근 무렵의 내 모습



내가 여름에 유독 취약한 인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꽤나 긍정적인 성격이라, 덥고 슬픈 오전이 지나면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만, 생명이 꿈틀대는 이 계절의 아침이 내가 이별한 것들을 상기시키는 게 조금 슬프다는 거.





올해 3월 4일부터는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도입돼 아침 8시부터 주식 알람은 띠링띠링 울리고,
집 근처엔 초등학교가 있어 뛰어다니는 활기찬 아이들이 보이고, 출근길 충무로에는 인쇄 용지를 조달하는 삼발이 오토바이들이 쌔애앵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력을 느낀다.



“이렇게 활기찬 여름인데... 엄마, 아빠 보고 싶네...”


이러다가도 오후가 되면 옅어지는 그리움 덕분에 하루하루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참외 한 봉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