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갈 길이 있다는건 멋진 일이야'하고.
이번 주에 뮤지컬 '멤피스'를 보고왔다.
n차로 보는 공연이지만 몇 번을 봐도 이렇게 설렐 수가.
잘 만든 예술만큼 삶에 위로가 되는 친구도 없는 것 같다.
멤피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950년대 미국 남부. 흑인 음악은 거리에서 울려 퍼졌지만,
라디오에서는 백인 음악만 흘러나오던 시절.
백인 청년 휴이 칼훈은 우연히 들어간 흑인 클럽에서, 펠리샤라는 흑인 가수의 놀라운 목소리에 매료된다. 휴이는 그녀의 음악뿐 아니라 그녀 자체를 사랑하게 되고, 음악으로 인종의 벽을 허물고자 결심한다. 하지만 차별과 편견이 팽배한 사회에서, 둘의 사랑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각자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휴이는 펠리샤의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믿는 길을 선택한다.
음악으로 사랑을 지키려는 길, 그리고 음악을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려는 길.
멤피스는 그 선택들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열정을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이 작품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극 중 인물들이 모두 ‘잘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는 모습이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지 않도록 라디오를 진행한 휴이도,
사랑하는 백인 남자친구와 손잡고 길을 걷고 싶어서 성공이라는 방법을 택한 펠리샤도,
그리고 이들을 지지한 백인과 흑인 친구들까지.
"사랑만은 지킬게"라고 엄청난 소울 발라드를 부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결국 사랑만 포기한 것도 재밌다.
예전 같았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했을텐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게 과연 새드엔딩일까 싶다.
사실 요 몇 주간 굉장히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악행을 해야만 업보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 키를 과감하게 돌리지 않는 것도 업보를 받는 건가 싶었다.
내가 내 인생을, 더 멋지게,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살지 않다고 업보는 오는 건가 그런 마음에 괴로웠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을 세속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루저로 평가하고 있었다.
출판업계처럼 단 한 번도 호황을 맞이한 적 없는 곳에
첫 사회생활을 던져버린 내가, 괜히 철없던 20대 같기도 했다.
직장을 골라다닐 수 있는 능력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출판으로 시작하지 말 걸..
대기업의 높은 연봉을,
공무원의 노후 안정성을,
아티스트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혼란스러웠다.
색소폰 연주다닐 시간에 토익학원을 갔어야 했나?
저녁 수영반 갈 시간에 이직 준비를 했어야 했나?
20대에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했던 선택들이 후회되고, 좀 더 영리하게 굴었어야 됐나 나의 맹한 성격에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진짜 깊은 늪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꺼내준 건, 결국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우울한 방 안에서 재즈 음악을 튼다.
색소폰을 배우며 알게 된 곡들이다.
반지하라 약간 눅눅하긴 해도
끈적한 재즈 음악을 듣기엔 의외로 잘 어울리는 곳이다.
상사한테 폭언을 들었을 땐, 사과하라고 벌벌 떨면서 맞받아친다.
다음 날 무서워서 오전반차쓰고 수영하러 갔다.
주문한 음식이 잘못나와도 말 못하는 나인데 어떻게 상사한테 대들 수 있게 됐는지 뱉어놓고 무서워서 반차를썼지만, 집에 그냥 있지 않고 수영이라도 하고 출근하니 뽀송 개운하게 다시 대들 수 있었다.
이번 뮤지컬 관람도 대성공이다.
‘돈 아낄 때인데.. 10만원이 훌쩍 넘는 뮤지컬 티켓 구매하는 게 지금 처지에 맞나.. ’
이걸로 미장 소수점 구매라도 해야하나 싶었는데, 이번 주 내내 뮤지컬로 행복했으니 의미있는 소비였다!
그리고 때마침 꽁돈이 생겨 미장 소수점 구매도 했다.
사랑할 게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재즈랑 뮤지컬, 수영과 에그타르트는 나를 지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랑 material이라 정의하겠다.
“사랑만은 지킬게”라던 펠리샤처럼 인생의 기로에서는 재즈고 뭐고 다 버리고 세속적인 것을 좇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사랑을 고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너무 사랑하는 출판, 종이책은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잘 할 수 있겠지, 내가 가는 길에는 찐득한 재즈만이 울려퍼졌으면!
https://youtu.be/1yOy_yNgyj4?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