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존재 : 그 존재의 찬란함에 대하여
이 책의 시작은 어릴 적 은사님의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지식 있는 자는 태도가 다르다."
나에게 그 말은 배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올바른 자세와 생각을 말하는 것 같았고, 어쩌면 내 삶의 불멸의 모토가 되었다.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기존의 나와는 다른, 무언가 변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지식은 무언가를 변화시켜야만 그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을 쓰는 행위가 나를 더욱 배우게 하며, 여러분에게 배움을 향한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 있다. 학창 시절이라는 한때의 배움을 넘어 삶을 통해 지혜를 깨닫고, 책을 읽으며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배움은 흩어져 사라질 먼지가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며, 우리를 나아짐, 곧 변화의 길로 인도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 한 문장의 배움이 그 역사를 만들어 낸다.
이 책은 여러분에게 그 찬란한 길을 바라보게 해주는 등불의 역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배움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이 변화된 인류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모든 배움은 끝없는 여정이다.
태초의 바다에서 작은 원시 생명체는 우연히 환경과 반응하며 존재를 지속했다. 그것은 생명의 최초 원형적 배움이었다. 이 원초적 배움은 진화를 거듭하며 신경계라는 혁신을 이루었고, 신경계의 출현은 배움에 속도를 더했다. 생물은 빠르게 환경을 인식하고 기억하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결국 찰스 다윈이 말했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란, 배움을 통해 생존하고 그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종이었다.
생명체의 배움은 진화가 되었고, 그 진화는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가 해왔던 대로 배움을 본능이자 생존의 도구로 활용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배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기록을 통한 배움의 영속화와 교육을 통한 배움의 진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은 지구상 생명체 중 최초로 이 지구상에 문명이란 것을 쌓아 올렸다.
그러므로 배움의 역사는 생명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배움이라는 거대한 책은 모든 생명이 짧은 한 문장, 단어 하나를 기록해 나가며 만들어진 모든 존재의 숨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거대한 책을 아무 희생이나 노력 없이 들여다볼 수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불의 발견부터 바퀴의 발명, 인쇄술, 전기, 인터넷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신의 이면에는 고대의 인류가 상상을 통해 키워왔던 배움의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우리 자신과 사회, 문명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배움과 그것을 통한 변화는 미래를 향해 꿈꾸게 만든다.
우리는 배움에 관한 모든 것을 인지하고 있다. 무엇이 배움이며, 배움에는 어떤 능력이 있고, 누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배움을 활용하고 응용함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 생명의 진화에 따라 그 생명들이 해왔던 배움의 형태 또한 진화되어 왔듯, 오늘날의 우리도 배움의 진화를 이끌 차례이다.
현대사회는 인공지능, 양자기술, 뇌과학 등 급속한 기술 발전을 경험하며 또 하나의 진화적 전환점 위에 서 있다.
배움을 경험한 인간은 새로운 인간을 향해 발돋움할 것이며,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 배움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존재로 나아가고자 한다. 배움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진화의 수단이며, 우리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나의 삶은 항상 낙관의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이라 하진 않겠다. 배움이 가진 가치에 대한 믿음이 나의 낙관을 구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주를 사랑하는 나는 코스모스를 향한 항해를 꿈꾼다. 문자 그대로 커다란 배를 타고 드넓은 심우주를 탐험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며, 은유적으로 코스모스가 상징하는 질서와 조화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이 땅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나를, 아니 우리 인류를 코스모스로 인도할 힘도 배움이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우주 안에 있으며, 우주는 우리 안에 있다"
- 닐 디그래스 타이슨
인간의 배움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모든 만물의 시작이자, 자연의 진리 그 자체인 코스모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어버이다.
코스모스의 오묘한 질서와 조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삶이 곧 배움임을 깨달은 이라면, 배움은 결국 코스모스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서와 조화, 공존과 우주 자체인 그 코스모스를 말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깊은 심우주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별에서 온 우리는 다시 별을 향해 간다. 이것은 인류가 꿈꾸는 가장 위대한 회귀이자 회복이다.
배움은 결국 그것이 가진 변화의 힘을 통해 새로운 인류와 새로운 문명을 만든다. 그것은 영원한 자유와 공존, 질서와 평화를 향한 길이다. 우리가 배움을 통해 여는 이야기는 바로 더 나은 존재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이야기이다.
배움은 인간이, 아니 생명의 출현 이후로 시작되었던 지식과 진리의 역사서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를 더해 가듯 우리의 배움도 나날이 두터워지며 그 어떤 풍파에도 맞설 단단한 몸체를 구성해 나간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커다란 세계수처럼 코스모스에서 시작된 배움의 나무는 이 세계의 정상을 향해 자라나고 마침내 우주에 도달한다. 뻗어나가고 여러 가지로 분화하며 마침내 열매 맺는 그 나무.
그 열매 안에 우리는 다시 그 나무의 씨앗을 확인한다.
그 열매 속에는 어떤 씨앗이 담겨 있을까?
삶, 생존, 지식, 정보, 과학, 인문학, 경험, 지혜, 사유, 질문, 그 모든 것을 담은 배움, 그리고 배움의 시작인 코스모스.
우리가 코스모스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지식? 기술? 정보? 사실 이 모든 건 이미 우리 앞에 준비되어 있다.
우주를 향한 항해의 장애물은 우리의 의식이다. 또한 질서와 조화를 향한 장애물도 우리의 의식이다. 그러니 나는 코스모스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의 전환, 변화라고 본다.
우리가 혐오와 갈등, 분열 등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떠올려보자. 국가 간의 군비 경쟁과 분쟁, 전쟁에 얼마나 많은 자본과 자원이 소비되고 있는지 떠올려 보자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미국의 2025년 국방 예산은 8,500억 달러(한화 약 1,3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매년 우주 개발에 투자되는 예산의 3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세계 평화, 인도주의, 국제 개발, 기후변화 대응 등 인간의 ‘공존’을 위한 예산과 비교하면 어떨까? 결과는 훨씬 더 충격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예산을 합쳐도 국방 예산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은 무장을 위해 매일 24억 달러 이상을 쓰지만, 분쟁을 예방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자금은 그 배정을 위해 항상 줄다리기를 해야만 한다.
미국을 예로 들었을 뿐, 미국만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이러한 오늘날 문명의 모습이 우리가 만든, 당신과 내가 만든 문명의 모습이다.
과연 이 문명이 코스모스로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아까 언급했듯 나의 시선은 낙관적이며, 그 낙관에는 근거가 있다.
바로, 우리에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온가스(CFC)는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학적 냉매로 사용되며 냉장고, 에어컨뿐만 아니라 스프레이, 반도체 세정제 등에서 사용되던 기체이다. 한때는 이 기체의 화학적 안정성으로 인해 무해하면서도 효율적인 ‘마법의 가스’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1974년, 과학자 셔우드 롤런드와 마리오 몰리나는 프레온가스가 상층 대기에서 오존 분자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즉시 프레온가스의 사용 중단을 촉구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반응은 미적지근하였다.
하지만 배움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대중의 반응은 달랐다. NASA 위성사진에 담긴 남극 오존홀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고, 대중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어린이 교육용 도서, 다큐멘터리, 언론을 통해 오존의 중요성과 위협을 시각적으로 전달했다.
오존층과 프레온가스에 대한 과학적 사실, 그것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배우고 깨닫게 된 사람들은 전 지구적 시민 참여와 대중 운동을 이끌어냈다. 환경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프레온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학교, 마트, 병원 단위로 CFC-free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정부와 기업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독일, 스웨덴 등은 조기 자발적 규제를 시작했고, 다국적 기업들은 ‘친환경 냉매’로의 전환에 투자하며 ‘에코 브랜드’를 형성했다.
그 결과 1987년 몬트리올에서 CFC를 포함한 오존층 파괴 물질(ODS)의 생산과 소비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국제조약이 채택되었고, 이 조약에 198개국이 서명함으로써 UN 역사상 가장 보편적이고 성공적인 환경 조약이 되었다.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CFC 사용은 90% 이상 감소했고, NASA와 WMO(세계기상기구)는 오존층이 점차 회복되고 있으며, 2060~2070년경에는 1980년대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은 2022년 이 협약을 가리켜 “지구 시스템 복원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 선언했다.
프레온가스의 성공적인 규제 사례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함께’였을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었다."
인간은 때로는 잘못된 기술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용기는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연대할 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연대는 우리가 배움을 통해 진정으로 깨어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이 배움의 길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세계가 진정으로 변화하여 영원한 코스모스를 향해 회복하기를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배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직 멈추지 않는 배움만이 우리의 앞날을 찬란하게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움은 자기 성찰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성적 행위다. 배움은 생물학적 본능이며,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 삶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배움의 틀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
배움은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며 지속적으로 자기 갱신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영원한 배움의 존재로 살아가는 진정한 방식이다.
인간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배움 안에 있다. 나아가 인류와 그 문명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그 힘은 배움 안에 있다.
그러니 배움 그 자체는 얼마나 찬란한가. 그것은 단지 기능이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움은 본질적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배우는 삶은 아름답다.
배움은 우리를 변화로 인도하며, 변화하는 우리는 이전과 다른 종이다. 더 아름다운 종이 되는 것이다.
변화된 아름다운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찬란한 배움의 역사의 끝이란 없다. 우리의 배움은 광활하고 광막한 코스모스처럼, 높디높은 탑으로 쌓여간다.
별을 향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란히 빛나는 별처럼, 끝없이 변화하며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배움의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우리라는 존재의 숙명이며,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당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길 원하는가?
좋은 직업과, 부유한 삶을 위해 배우려 하는가?
이것은 단지 배움이 가져다주는 혜택의 단편적 모습이며, 배움이 가진 변화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불과하다.
배움이 주는 변화는 개인의 삶에 머물러 있지 않다. 배움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문명, 인류, 세상의 모습을 재편한다.
변화한 인류는 화합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공존을 이루어낼 것이며, 이 질서와 조화가 어우러진 인류는 그제야 찬란한 코스모스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학생'인 우리, 배움의 존재는 배움을 통해 변화한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인류로 말이다.
그 신인류는 희망을 말하고, 사랑을 노래하며, 평화를 새기는 코스모스적 존재이다.
그러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 책을 덮는 동시에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배움을 시작한다. 계속해서 배워 나간다.
우리는,
'배움의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