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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Feb 24. 2022

시어머니와 배추흰나비 애벌레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공통분모가 별로 없다. 태어난 곳, 살아온 과정, 현상에 대한 견해도 대개 다르다. 며느리의 대화는 팩트 중심이다. 어떤 현안을 놓고 사색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내려고 한다. 시어머니의 대화는 정반대다. 상대방과 소통하며 뭔가를 결론짓고 정의하기보단 신변잡기적 에피소드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한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두 사람은 그냥 다르다.     


 그중 며느리에게는 거의 없고 시어머니에게 넘치는 것은 ‘서정성’이다. 며느리의 콘텐츠는 잿빛이고 무색무취하다. 시어머니의 콘텐츠는 다채롭고 흙냄새가 난다. 파란 하늘, 닭장 위로 떨어진 뱀, 논에 나타난 희고 큰 백로, 색감이 오묘했던 노을….      


 하루는 정적을 깨고 시어머니가 말했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본 적 있니? 배추 이파리를 솎아내는데 애벌레가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그 작은 몸통에 솜털이 빼곡하고 보송하단다. 나비가 되면 얼마나 예쁘게. 배춧잎을 갉아먹어 밉다가도 나비가 될 상상을 하면 약을 칠 수가 없어.”     


 “아.. 그래요?”     


 다시 정적이 흐른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다. 시어머니는 다른 소재로 말을 이어간다.


며느리에게 애벌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포켓몬스터'의 캐터피(좌)다. 캐터피가 진화하면 버터플(우)이 된다.


 

 며느리는 곤충에 관해 깊이 생각한 적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였다.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고운 눈길을 준 적도 없다. 아이를 위해 자연전집이 한 질쯤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도 ‘한두 푼도 아닌데’, ‘잠자리나 개미에 대해 알아서 대체 무엇에 쓸까’를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며느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견해를 얻고서는 무릎을 쳤다.     


"사실 모든 책의 영역들을 따져보면 인생과 큰 관련은 없어요. 개별 학문도 마찬가지죠. 당장의 쓸모보다 관심사의 확장에서 접근하는 것이니까요. 육아의 모든 것들이 ‘반드시 해야한다’는 전제가 없는 것처럼 자연전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영유아기 아이들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친구들이 동물이나 곤충을 그림으로 그린 캐릭터인만큼, 실제 모습과 연관 지으며 아이가 좋아해요."

 

"여름에 매미소리를 들었을 때 ‘으, 징그러워’라고 하는 아이보다 ‘엄마! 매미는 땅 속에서 한참 있다가 나온대.’라고 신나서 떠드는 아는 아이가 됐으면 해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요. 남극의 펭귄, 북극곰 등 직접 눈으로 보여주기 힘든 것들을 책으로나마 간접체험 시켜줄 수 있어서 좋아요."     


"의성어 의태어를 이해할 때도 필요해요. ‘폴짝’과 ‘깡충’의 차이, ‘어슬렁어슬렁’, ‘으르렁’, ‘찌르르르’ 같은 소리를 들을 때 실제 소리를 떠올릴 수 있게요."


"제가 그 자연전집을 만든 사람인데요(출판사 관계자 등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내가 왜 온갖 생명체의 사생활을 알아야 하나? 종교가 없지만 ‘생육하고 번식하라’가 신의 명령인가 싶더라고요. 왜 생명들은 나고 자라 짝짓기를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가 생각했죠. 그 과정에서 알았어요. 아이가 생명체에 궁금함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기 때문에 내가 이걸 만드는구나. 나를 알려면 다른 생명을 알아야 해요."

        



 나무와 흙으로 지은 시부모님의 집에는 도심에 없는 많은 생물들이 산다. 쉰발이*, 거미, 청개구리가 한 지붕 아래 잠을 자고, 마당에는 사마귀, 장수풍뎅이, 귀뚜라미가 드나든다.


 대상에 대한 부모의 감정을 아이에게 동조하도록 하는 것도 폭력일 것이다. 그것이 아무 죄도 없는 자연의 생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른의 좋고 싫음, 편견까지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하지는 말자, 배추흰나비 애벌레의 예쁨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포켓몬의 캐터피가 실제 어떤 모습인지는 떠올릴 수 있는 아이로 키우자, 며느리는 생각했다.



         


* 쉰발이(오픈사전): 긴 발이 많이 달린 해충인 '그리마'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발이 50개라는 뜻에서 쉰발이라고 불리어지며, 간혹 쏘이면 벌에 순간적으로 쏘인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민간에서는 이들이 오줌을 싸고 달아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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