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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Mar 21. 2022

샤이 페어런트

ⓒ Pixabay License



A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다. 사내에 안내할 것이 있어 메일을 썼는데 조금 재밌고 말랑말랑하게 썼다. 전부 자기 업무 하기 바쁜데 딱딱하게 쓰면 아무도 안 읽을 테니까. 잠시 후, 과거 상사에게 메일 답장이 왔다.     


A과장, 감은 여전하네? 역시!



A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퍼졌다. 육아휴직 복직자는 뒤쳐질 것이라는 인식의 반증. 상사의 칭찬은 조직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 했다.     


A는 다른 직원들과 밥을 먹을 때도 비슷한 결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자신에게 하는 얘긴 아니었지만,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분은 육아휴직을 해서 좀 그렇지 않아?', '그 직원은 애 낳고 돌아와서 적응이 안 된 것 같던데'라는 식이다.     


저출산 극복이라는 거대 담론은 오래된 편견과 직장이라는 굴레 속에서 희미해진다. A는 샤이페어런트가 되기로 했다. ‘샤이오미크론’, ‘샤이보수’, ‘샤이진보’와 같이 부모라는 사실을 적극 어필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쁘고 남의 삶에 관심이 없다. 내가 부모임을 알리는 순간 얻게 될 편견들에 일일이 맞서 싸우며 나를 증명하는 것도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샤이 페어런트가 되는 것이 훨씬 편하며 효율적이다, 라고 A는 생각했다.     





샤이(shy)한 부모들


직장에서 누가 묻지 않는 이상 굳이 아이 얘기를 하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더 넓은 시야와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거나 역경을 이겨내는 전투력이 늘어났다거나 하는 것은 개개인 안에서만 메아리치는 항변일 뿐, 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지 않는 유형이다.     


A의 이야기를 듣고 B가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 B가 다니는 H사는 싱글 남직원들이 입사하면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결혼을 촉진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가정을 가진 남성은 직장에서 가장 약자이며, 뭐든지 해낼 것이란 기대. 


조직에 충성하는 직원을 만들기 위해 남자에게만 결혼을 종용하는 회사나, 애 키우다 돌아온 여자들은 전에 비해 뒤쳐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인식 모두 여전한’ 우리 사회의 단상이다.

     

인식의 변화는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한 편견들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당당한 부모이고 싶지만, 직장에서는 어느정도 샤이 페어런트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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