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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레포트 Jan 06. 2024

(충격실화)  “촉법소년”들이 도시를 장악한 이야기

러시아 드라마 "사나이의 언어"를 통해 본 러시아 깡패의 역사

최근에 대한민국에서는 이른바 '촉법소년' 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들의 범죄수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잔인해지지만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비극적 사건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1980년대 후반 소련에서는 실제로 촉법소년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도시한 곳이 사실상 이들한테 장악된 암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카잔현상 Казанский феномен”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소련시기 급격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기존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붕괴되고 그로 인한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러시아 카잔Казань이라는 도시에서 촉법소년 폭력단체들이 활개를 쳤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1980년대 후반 카잔의 촉법소년 폭력단체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나이의 언어 아스팔트 위의 핏방울 (슬로보 빠짜나 크로브 나 아스팔테Слово Пацана: кровь на асфальте) 를 살펴보면서 러시아 깡패의 역사 그리고 그 시기를 겪었던 현재 러시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의 유명 감독 조라 크리즈니코프Жора Крыжников와 유명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표도르 본다르축Фёдор Вондарчук이 제작한 사나이의 언어: 아스팔트 위의 핏방울(Слово пацана кровь на асфальте)은 러시아 내에서도 드라마 랭킹 1위를 차지했던 오징어게임을 밀어내고, 1위 드라마로 등극을 했습니다.



이후 언론, 미디어, SNS등을 통해서 관련 밈들이 계속 생성되고 있으며, 드라마가 종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방영하는 기간 그리고 종영을 한 현재까지도 러시아 정계, 문화계 그리고 언론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갑론을박을 계속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체제 이행기 당시 카잔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촉법소년 깡패조직”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당시 카잔에서 실제 조직생활을 했었던 작가 로베르트 가리에프의 저서 "사나이의 언어 무법의 타타르스탄 1970-2010 Слово пацана криминальынй Татарстан 1970-2010"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드라마 "사나이의 언어"의 모티브가 된 작품 사나이의 언어 무법의 타타르스탄 1970-2010  

                          





러시아의 유명감독과 제작진, 출연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 그리고 당시 폐쇄적인 소련사회에 페레스트로이카가 도입되면서 자유롭지만 혼란스럽고 어두운 상황을 느끼게 해주는 배경음악, 스토리 등 모든 부문에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킬링타임용" 흥밋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을 넘어서 이 작품을 통해서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혼란스럽고 암울한 체제이행기의 시대적 상황과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전쟁 상황과 맞물려서 과거 암울한 시기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현 러시아 기성세대(60~70년대생)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 Андрей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과 같이 산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모범생이고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으며, 학교 안에서도 모범생의 삶을 살았지만, 같은 반에서 소년갱단으로 활동했던 마라트Марат와 만나게 되면서 안드레이의 삶도 180도 바뀌게 되고, 순종적인 모범생의 삶을 살았던 안드레이는 거리의 거친 남자Пацан로 변모하면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같은 무리 남자들과 함께 패싸움에 참여하고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로 원정 약탈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니베르삼 조직의 핵심 요원인 마라트 그리고 온순한 학생 안드레이





드라마는 이러한 주인공 안드레이의 관점으로 그가 가입한 조직 우니베르삼 Уиверсам 소년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드라마 속 안드레이가 소속된 우니베르삼 조직

 




뱌체슬라프 쥬보프Вячеслав Зовов평론가는 이 선량하고, 온순한 학생이 왜 유소년 범죄단체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이유로 주인공 안드레이라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안드레이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남성적 강인함을 내세우는 가치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성장과정에서 충족되지 못했었고 이러한 결핍을 충족해 주는 길거리 청년 조직범죄에 의존을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드라마 속 장면 중 안드레이가 이스칸데르Искандер라는 동급생에게 "삥" 뜯기는 장면이 있는데,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작품을 집필한 저자 로베르트 가라 에프Роберт Гараев가 실제로 겪은 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책의 저자인 로베르트 가리에프도 과거 미술학교를 다닐 때 이스칸데르Искандер라는 동급생에게 3 루블을 삥 뜯겼다고 합니다. 불량배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로베르트 또한 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 Нижий라는 청소년 폭력조직에 가입을 했고, 전직 조직원으로서 자신의 경험담 및 당시 폭력조직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진술, 인터뷰를 따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의 저자 로베르트 가라에프, 전직 폭력조직 원이며, 지금은 그 생활을 청산하고 음악-저널리스트 및 DJ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대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소련사회 말기 페레스트로이카 Перестройка이후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로 인한 환경 속에서 소년들은 이런 환경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공산당 공권력기구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고 그들을 대체할 «강력한 상징»집단인 남성폭력조직에 매료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체제이행기인  혼돈의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국가가 붕괴되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했습니다


사자가 없는 초원에 하이에나들이 들끓듯이 무기력한 공권력 기관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폭력조직들의 무질서가 판을 쳤다고 말합니다.



집단들 끼리 사움이 흔하던 소련말기 길거리 모습





당시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 전 지역에서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알만한 대도시(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유사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신에서 설명하듯, 역사학자, 사회학자, 범죄학자 등 유독 카잔만큼은 다른 도시와 다르고 매우 특별했다고 말합니다.  




*왜 하필이면 "카잔"이 특별한가?

러시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지만 «카잔»은 매우 특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러시아 역사에서 몽골-타타르인들이 슬라브계 러시아인들 수백 년 동안 지배한 시기를 타타르의 멍에(Татарское Иго 1223-1480)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인들이 타타르의 지배를 벗어나고 점차적으로 국토회복운동을 펼치면서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들에 맞선 타타르인들의 전략적 보루 중 한 곳이 바로 카잔이며, 1552년 이반 4세 시절 카잔을 정복함에 따라서 러시아의 동방팽창(아스트라한, 시베리아 한국 정벌)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카잔한국 야디게르 무하메드Ядыгер Мухамед가 러시아 군에 항복하는 장면




그리고 오늘날 러시아 연방을 이루고 있는 민족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타타르족들의 공화국 타타르스탄의 수도가 바로 «카잔»입니다.


타타르스탄 수도 카잔의 국기





타타르민족의 수도 카잔이 어떻게 소련의 “고담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소련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다룰 정도로 카잔의 범죄조직활동은 그 강도가 매우 심각했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들은 당시 KGB국장 유리 안드로포프가 경쟁자인 내무부 장관 니콜라이 숄코프Николай Шёлков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카잔 내 폭력조직 내부에 KGB요원을 침투시켜서 폭력조직들간의 싸움을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끕니다.



차기 당서기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 KGB국장 유리 안드로포프와 내무부장관 니콜라이 숄코프






실제로 80년대 후반 카잔에서 폭력조직들 사이에서 약 200건의 패싸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내무부 소속의 경찰들은 이런 폭력조직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위신이 떨어졌고 이는 차기 서기장 자리를 노리는 안드로포프에게 유리한 이점을 제공해 주었다는 썰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중앙권력 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 카잔현상은 그저 단순히 순간적으로 "폭발" 한 현상이 아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오랫동안 숙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탈린 사후 1950년대의 소련사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탈린을 생각할 때 인권탄압과 독재정치의 이미지가 강해서 스탈린 시기 강제수용소에 갇힌 이들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구속되고, 사형된 무고한 지식인,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별개로 소련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법규를 준수하지 않는 많은 «범죄자»들 또한 투옥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집단수용소ГУЛАГ에 수용된 죄수들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가 집권을 하면서 이른바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수용소에 갇혔던 많은 이들이 석방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스탈린이 견제했던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고상한 지식인-엘리트 계층뿐 아니라 법규를 위반했던 범죄자들 또한 대거 사면되어서 소련 공동체에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며 이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이 새로운 공업도시로 계획된 «카잔»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사면과 맞물려서 당시 새로운 계획도시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부주도로 집단농장에 묶여있던 농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이주가 발생합니다. 1968년 스탈린 시기 엄격하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했던 정책이 완화가 되면서 집단농장에 있던 농민들이 여권паспорт을 발급받게 되면서 카잔이라는 도시로 몰려들게 됩니다.



집단농장Колхоз의 농민들




카잔이라는 도시에서 대규모 개발이 일어났고, 도시와 학교 공장이 각 구역들마다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이 구역들에는 농촌지역에서 올라온 각각의 무리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 나탈리야 표도로바Наталья Федорова박사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집단농장에서 “카잔”이라는 도시환경에 새로 정착한 이주그룹 1세대는 도시라는 공간에 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농촌지역에 살았던 가치관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농촌지역에서 가졌던 “우리의 생산수단인 우리의 땅은 우리가 지킨다”라는 신념을 같은 구역 내 동향들뿐 아니라 자식세대들에게도 학습을 시켰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서 직간접적으로 남자들은 열외 없이 집단 “패싸움(Стенка на стенку)”에 참여를 해야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패싸움"의 문화는 러시아 남성들의 행동양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타르 멍에 이후, 모스크바 공국과 제정러시아 시절 러시아 농촌지역에서는 이웃마을들끼리 빈번하게 자신들의 땅을 지킨 다는 명목으로 마을남자들 사이의 패싸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16세기 러시아 농민들의 패싸움을 묘사한 그림


집단 패싸움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러시아 농촌문화를 대표하는 “의식”중 하나로서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온 것을 기리는 명절인 마슬레니짜 «Масленица»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전통 «놀이»로 소개될 정도로 러시아 농민들의 집단의식과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윷놀이처럼 전통놀이로 자리 잡힌 쿨라츠니 보이Кулачные бои(패싸움)




특히나 중세시기부터 카잔에서는 러시아 농민들과 타타르 농민들 사이의 패싸움이 매우 빈번하게 발생해서 다수의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황실에서도 야만의 문화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려 노력했지만, 문명화되고 유럽화 된 중심부가 변방의 농촌에서 수 백 년 동안 이어져온 “전통”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고 이 문화를 뿌리 뽑지는 못했습니다.




러시아 농민들의 패싸움


이렇게 농촌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패싸움의 전통이 새로운 계획도시 카잔으로 이주해 정착한 부모세대의 뒤를 이어 성장한 이주 2세대(1960-1980년 세대)들 또한 부모들로부터 교육을 받게 돼서, 각 구역들 간의 서열과 위계질서를 정하기 위한 패싸움이 어른세대뿐 아니라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환경은 스탈린 사후 집단 수용소에서 사면받은 대다수의 전과자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범죄를 저지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게 되고 이들은 이 집단들에 융화돼서 “우리 집단”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의 비호아래 범죄행위를 자행하게 됩니다. 



수용소의 죄수들과 콜호즈의 농민들이 카잔이라는 도시에 섞이면서 변종 폭력조직이 발생함





특히나 1964년 소련은 개혁을 시행하면서 그동안 시행되었던 국가통제의 경제정책에 어느 정도 사적인 기업활동을 허용해 주게 되는데, 이 시기 소위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업가들은 폭력집단으로부터 "보호비Ракет"를 강탈당하는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렇듯 스탈린 사후 진행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일어난 농촌집단들의 대거 이주 그리고 집단수용소에서 투옥되었던 죄수들의 대규모 사면이라는 이벤트들이 “카잔”이라는 도시에서 한꺼번에 발생함에 따라서 카잔은 "농촌식 집단주의"에 기반한 폭력-범죄조직의 인큐베이터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가장 악명 높은 조직으로는 턉럅«Тяп-ряп», 보리스코보«Борисково», 그랴즈«Грязь», 질카«Жилка», 키노플룐카«Киноплёнка», 칼루가«Калуга», 페르바키«Перваки», 하디 탁타시«Хади Такташ»과 같은 범죄단체들이 있는데, 이 조직들은 도시를 사실상 장악하기 시작하게 되고 이 조직원들의 주요 행동대원들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해서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는 촉법소년들이 주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80년대 후반 활동했던 카잔 유소년 조직




공권력으로부터 법적처벌을 받지 못하는 이 촉법소년들을 이용해서 폭력단체의 간부들은 강도, 납치, 보호비 강탈과 같은 일들을 저지르면서 도시를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만듭니다.  

 

이런 만인의 만인의 의한 투쟁과 같은 “개막장” 상황이 계속되는 대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의 공권력은 제대로 통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 서슬 퍼런 스탈린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무법과 혼돈이 발생함에 따라서 공권력은 어떻게 통제를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스탈린과 같은 공포시기 때처럼 그 자리에서 내무부 NKVD요원이 총살을 시행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도 보낼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공산주의 유토피아 소련공동체에서 범죄와 무질서는 존재해서는 안됬기에, 공권력 기관 그리고 언론과 미디어도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일어난 이런 사태를 암묵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글라스노스트(개방),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등 서방적 가치가 소련사회에 침투하면서 정보의 투명성이 소련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카잔에서 폭력단체들의 무법행위가 조명받기 시작합니다.


 당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사회에 불어 닥친 급격한 변화는 사회-경제적 혼란을 가중시키게 되고 서민경제의 큰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가정에서는 생계걱정을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훈육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체제이행기 암울한 사회-경제적 상황



러시아의 많은 범죄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의 갱단들과는 다르게 카잔 폭력조직의 특징은 나이에 따른 서열과 위계질서가 명확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일례로 카잔의 최대 폭력조직 턉-럅Тяп-ряп의 두목 세르게이 안티포프Сергей Антипов의 경우 나이에 따른 조직 간의 서열을 명확히 했는데, 조직은 일반적으로 3개의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스코르로 파Скорлупа라는 계층에는 가장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있고, Супера라는 중간나이대 그리고 스타리키Старики라는 계층에는 보스급 대장으로 연장자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카잔 폭력조직의 계급도




안티포프는 조직원들에게 술, 담배를 금지시키고 복싱, 레슬링, 유도 같은 투기종목 훈련을 권장했으며, 이를 통해서 그저 시정잡배들의 모임이 아니라, 체계적인 운영방식을 통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턉럅 조직의 두목 세르게이 안티포프




턉-럅Тяп-ряп의 예처럼 단순히 신체단련을 통한 공격성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무장이 돼있는 폭력조직에 맞서 과거 이런 전례가 없던 소련의 경찰들은 이들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몰랐고 경찰들의 무능력으로 인해서 시민들은 이들의 폭력과 위법행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직들 간의 패싸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과 러시아 사회의 반응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사회학자 뱌체슬라프 쥬보프Вячеслав Зовов는 드라마 속 보바 아디다스Владимир Адидас라는 인물을 주목합니다. 그는 참전군인이 폭력배로 변하는 전형적인 유형의 인물로 정의합니다.


극 중 보바 아디다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89) 참전군인으로 전쟁 이후, 고향인 카잔으로 돌아와서 우니베르삼 구역의 행동대장 맡아서 촉법소년 조직을 이끕니다.




드라마 속 행동대장이자 리더로 등극하는 보바 아디다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용사로 그려진다




전통과 가족의 가치를 수호하는 시민단체장 엘레나 주그토바Элина Жгутова «이반차이Иванчай»의장은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에 있으며 이 드라마를 통해서 젊은 청소년들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가족의 전통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 연구자료를 보면 전쟁 이후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그 국가에서의 범죄율은 올라간다라고 강조합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체제이행기 당시 러시아에서 마피아들과 같은 조직범죄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이 조직원들의 상당수가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첫 대통령이 된 옐친대통령의 고향 예카테린부르크에서는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들이 주축이 돼서 형성된 조직 "아프간찌Афганцы"가 우랄마쉬Уралмаш조직과 함께 예카테린부르크의 어둠의 세계를 양분하기도 했습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장악했던 아프간찌



실제로 당시 혼돈의 90년대Лихие 90-е를 지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들은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러한 박탈감을 사회시스템에 대한 반항과 불복종의 시그널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범죄그룹 조직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고 말합니다.


러시아 사회학자 데니스 볼코프Денис Волков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투경험을 간직한 채로 복귀하는 전역병들이 육체적, 심리적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국가가 응당 보전해주지 않을 때 이들이 범죄조직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됐을 때 러시아 정부는 감옥에서 투옥하고 있는 강력범죄자들을 동원해서 지정된 복무기간을 이수한다면 범죄전과와 상관없이 석방시켜 준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 



러시아 참전군인



실제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강력범죄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되었고, 그중 많은 이들이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한다고 해서 러시아 사회가 예의주시 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꽃놀이패


이 드라마를 통해서 현재 러시아 사회가 푸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푸틴의 대내외적 비판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오랜 집권기간에 대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에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련붕괴 이후 이들이 피부로 직접 겪은 혼돈의 90년대에 대한 집단의 기억과 군중심리가 크게 작용을 합니다. 




소련붕괴 이후 개혁 개방이라는 친 서방노선을 채택했고 서방과 잘 지내보려고 했으나 돌아온 것은 서방의 공작을 받은 과두세력과 분리주의 세력이 초래한 혼돈과 무질서가 러시아 사회를 병들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현재 러시아의 주축세대이자 드라마 속에서 묘사하는 "카잔현상"과 같은 혼돈의 시기를 겪은 60-80년대생 세대들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집권한 푸틴이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주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푸틴을 지지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시점에서 러시아 사회에 혼돈의 90년대에 대한 집단의 기억과 군중심리를 끌어올리는 것은 푸틴의 존재이유와 푸틴의 집권이유에 대한 러시아 대중들의 심리를 자극하는데 큰 역할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 

비록 시대적 상황과 역사가 다르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준 "카잔현상"의 역사는 


1) 공권력에 대한 불신  

2)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화가 되지 못한 방치된 소년들


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촉법소년 범죄"문제에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로 촉발된 문제로 인해서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대로 통제하지도 교육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그리고 가정에서 대다수의 맞벌이 부모들은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서 자식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카잔현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은 소련이라는 시스템이 붕괴했을 당시 가정과 학교 그리고 권위와 무게감을 잃은 공권력으로부터 소년들이 방치되었을 때 그들은 “야생”적이고 만인의 만인이 투쟁을 하는 환경 속에서 오로지 힘이 지배하는 폭력집단에 복종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인권감수성"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피해자는 생각 안 하고 범죄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법기관과 공권력의 권위를 얕잡아보는 풍조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과 교육기관에서도 "말"로는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인 "배려, 존중"을 이야기하지만, 행동으로는 그것과 정반대 되는 "이기주의" "냉소주의""물질만능주의"를 실천하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언행일치가 안 되는 행동을 보고,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끊임없는 세대갈등, 정치갈등, 젠더갈등으로 인해서 공동체의 결속이 점점 약화될 것이고 


저출산-고령화, 지정학리스크 등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은 점점 성장동력을 상실할 것이며 미래세대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담한 상황을 만든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폭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환경 속에서 막가파식의 사고를 가진 소년들을 방치한다면 30년 전 소련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지 않을까요?  저의 생각이 "기우"이길 빌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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