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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Jul 14. 2024

탄성

탄성을 잃다

고무줄. 의사가 비유한 내 상태다. 정확히는 탄성을 잃은 고무줄.

환자분은 몇 년 간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상태였어요.

그렇게 고무줄을 오래 당기면 탄성이 사라지잖아요.

그래서 탄성을 잃은 채 늘어진 고무줄이 된 거죠.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용케도 안 끊어졌군.

도쿄에서 돌아오던 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던 별들이 기억이 나.

사진에 별들을 담아내고 속으로 내지른 우리의 즐거운 탄성들.

나는 그 직후에 탄성을 멈춰버렸다.

저 구름 밑에는 비가 내리고 있을 텐데.

비행기에서 내리면 빗속을 걸어야겠지.

이런 생각들이 문득.

삶은 그날의 비행기 같다는 생각을 했지.

안개 자욱이 끝 보이지 않는 활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난기류와 구름들.

가끔씩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

난기류가 심한 비행이었고, 때문에 안전벨트를 꽉 매야 했다.

안전벨트의 팽팽한 탄성이 아니면 우리는 흔들리고 위험하겠지.

탄성이 없다면 삶은 꽤나 흔들리고 위험하려나.

다행히 비행기에서 내려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별들을 보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탄성을 잃은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다시 버스의 안전벨트를 맸다.

버스 창밖엔 사진으로 담아낼,

속으로 즐거운 탄성을 내지를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탄성이 없다면 삶은 즐거운 일이 없으려나.

몇 달간 탄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해왔다.

늘어져있기 싫어서.

다시 언제든 팽팽하게 당겨질 수 있도록.

그러나 다시 탄성을 되찾을 순 없었다.

생각을 다르게 먹어보기로 한다.

탄성은 힘이 가해졌다 그 힘이 제거되었을 때 본래대로 돌아가는 성질.

반대로 힘이 제거되었을 때 돌아가지 않는 건 소성이라고 한다는데.

소성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아무렴 어때.

탄성이 없으니

흔들리고 위험하겠지.

조금은 덜 즐겁겠지.

그렇지만 소성이라도 고무줄은 고무줄일 테니.

아직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된다.


언젠가 친구와 술잔을 나누며 했던 말.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고.

따지고 보면 오늘이 앞으로의 날 중 가장 젊은 날일 거라고.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용케도 아직 안 죽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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