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누인형 Jan 17. 2023

직장생활 인 스웨덴

면접 

백수가 될 참이었다.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놓아야 하는 순간은 한국에서도 스웨덴에서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대학에서의 3년은 일자리를 보장해 줄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 북부는 치과기공소가 많지 않아서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곳도 3곳에 불과했다.  


다행히 이력서를 넣은 3곳에서 모두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 '망했구나' 직감했다. 긴장한 탓에 가뜩이나 부족한 스웨덴어가 떠듬떠듬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경험한 첫 잡인터뷰였고 어떤 분위기로 진행이 되는지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두 번째 인터뷰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딱 한 번. 이걸 놓치면 스웨덴 남부로 이사를 하든가 다른 일을 찾아보든가 결단을 내려야 할 판이었다. 해가 바뀌면 학자금 대출도 갚기 시작해야 하니까. 


앞서 두 번의 인터뷰를 복기했다. 갓 졸업한 신출내기에게 기대하는 건 뭘까. 

스웨덴에 치기공학과가 있는 대학은 세 곳에 불과하다. 남부에 위치한 말뫼, 예테보리 그리고 북부의 우메오 대학. 이곳 북부에서 일하는 99%의 치기공사는 우메오 대학에서 같은 교수들과 같은 커리큘럼을 경험한 동문이다. 누구보다 교육과정을 잘 아는 그들이 막 졸업한 신입에게 실력을 기대할 리는 없다. 그러니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였고 그러자면 능숙한 스웨덴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건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를 뽑을지 안 뽑을지는 그들의 손에 달렸으니 후회 없도록 대답이나 시원하게 하고 끝내자' 

이런저런 생각 끝에 치과기공소에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잡인터뷰의 목표는 이렇게 정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예상 질문을 뽑아서 메모하고 답변을 정리하고 남편과 연습도 했다. 남편은 그런 내가 귀엽다며 웃기도 했고 나의 애씀이 안쓰러워서 종종 위안의 말들을 건넸다. 아마도 세 번째 고배를 마시고 나면 타격이 클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겠지. 


"인터뷰는 그들만 너를 보는 게 아니야. 그들이 널 선택하지만 너도 그들을 선택하는 거야. 그러니까 떨지 마. 그곳에서 그들과 일하고 싶은지 가서 보고 와. 처음 만난 친구처럼 하면 돼.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하게 널 보여주는 거야." 


남편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맞다. 그곳이 아니어도 나는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다. 무던히 애쓰며 쫓아가는 삶보다는 나에게 즐거운 곳을 찾아보자. 꼭 이곳이 아니어도 된다. 더구나 이곳은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이 아닌가. 취업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희망참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D-day 3. 코로나에 걸렸다. 

인터뷰를 미루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괜찮다면 온라인인터뷰를 하잖다. 영 아니다 싶으면 직접 볼 것 없이 걸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떨렸지만 아닌 척 카메라를 켜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치과기공소 셰프와 노조대표가 함께 앉아있었다. 첫 질문은 실습기간 동안 뭘 했는지, 무엇을 할 줄 아는 지였고 왜 기공사가 되려고 하는지,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동료와 마찰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관계와 취미생활 등 두루두루 인생 전반에 걸쳐서 질문이 쏟아졌다. 나름대로 대답을 이리저리 돌려 막으며 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인터뷰 말미쯤 나의 약점을 물었을 때 나는 스웨덴어가 나의 약점이라고 말했고 하지만 나의 스웨덴어는 하루하루 계속해서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에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뭔가가 사르륵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 입으로 나의 약점을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약점이 아닌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인터뷰는 전에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일방적인 질문보다는 내 대답을 듣고 그들의 의견이나 경험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흔히 경험하는 갑과 을의 인터뷰는 분명 아니었다. 처음 만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의 반짝임, 호기심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나의 세 번째 잡인터뷰는 마무리됐다. 


며칠 후 실기테스트를 받았고 셰프는 전화로 나를 고용하겠노라 연락을 해왔다. 

대체근무자로 6개월 단기 계약이었고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지 안될지는 불투명했지만 첫 직장생활은 그것만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출근은 그로부터 한 달 후로 정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사막을 떠올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