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연 Nov 15. 2022

꿈과 현실, 그 틈 사이의 앨리스

이동은 개인전 <Alice of the floating www> 리뷰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우리는 흔히 ‘보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다’는 사전적 의미가 ‘눈으로 대상을 감상하다’이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감정은 단순히 눈으로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망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표현은 영문으로 번역하면 ‘I want to look at you’가 아니라 ‘I miss you’이다. 즉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상실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는 다양한 형태로 ‘상실’이라는 체험을 공유했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단절되고, 격리되는 동안 ‘소통’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 요소임을 재확인했다. 역사에서 숱한 예술 작품이 다루었기에 어느새 고전이 되어버린 ‘커뮤니케이션’ 이야기에 이 시대가 또다시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동은 작가의 작품 세계는 회화ㆍ사진ㆍ설치 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언제나 소통이라는 주제로 일관한다. 작가는 ‘앨리스’라는 아바타를 상정해 관객과 소통하는 매개로 삼는다. 또 다른 자아인 앨리스와 함께 런던 뉴욕 서울 같은 물리적 공간을 오가거나 가상假象과 실재가 교차하는 디지털과 현실을 넘나든다. 현실 세계에서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이주한 오늘날 일찍이 ‘가상假想 자아自我’를 예견한 작가의 통찰이 돋보인다. 무릇 오늘의 우리는 모두 어디엔가 자기 ‘앨리스’를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물론 혹자는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아바타인 앨리스가 현실 인물을 대변한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혹은 상상 속 존재는 그저 실재를 모사했을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실재와 가상simulacre의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설파했다. 이 두 가지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자체가 무의미해졌음을 뜻한다. 나아가 가상을 독립된 현실로 인정했다. 보드리야르 이론에 따르면, 이동은 작가가 창조한 상상 속 앨리스는 그 자체로 현실 인물과 대등한 독립적 존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돌이켜 생각하면 현실과 상상을 이분법적 분별에 대한 회의는 프랑스 철학에 새로이 등장한 관념이 아니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기록된 호접지몽胡蝶之夢 우화가 좋은 예시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자기가 경험한 물화物化를 이렇게 말했다.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깨어나 보니 나비가 장주가 되었다니!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참인지 구분할 수 없다.” 자기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되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 이 우화는 마치 이동은 작가와 앨리스가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점점 우세해지는 디지털의 기세에 따라 인터넷 가상 세계와 현실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상상과 현실 사이 경계는 더욱 흐려진다. 이때 디지털 세상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꿈꾸었던 이동은 작가의 ‘앨리스 백일몽’에는 한층 더 힘이 실린다.



   이동은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관람객과 어떻게 ‘소통’하고 싶은지 자주 고민한다고 한다. 이러한 고뇌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터랙티브 아트를 통해 잘 드러난다. 김혜민ㆍ‘작가 시오’ 두 사람과 협업한 ‘Who in the www am I?’는 관람객의 미묘한 움직임까지 시스템을 거쳐 실루엣 형상으로 바뀌어 벽면과 바닥에 비쳐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이로써 관람객은 작품 완성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된다. 지금까지 ‘앨리스’가 상상 속 인물로 관람객을 만났다면, 이 장소 특정적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앨리스를 소환한다. 그리고 작가-앨리스-관람객 간 ‘소통’을 생동감 있게 주도한다. 이러한 참여형 작품이 한동안 디지털 세상에 갇혀 있던 미술 전시에 활력을 되찾아 오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세상을 유영하는 수많은 자아들이 이 전시를 통하여 자기 ‘앨리스’를 마주할 기회를 누리기 바란다.






글: 강수연

사진 출처: 리아뜰 매거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