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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Mar 20. 2023

덕후 실패

벅차서 아려오는 그 마음은 도대체 뭘까?

<덕후 실패>


시인 황인찬은 자신이 종교를 갖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덕후가 되는데 실패했다고. 내 주변에는 덕후들이 많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벅차고 과몰입되는 친구들. 감정 과잉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나 나는 덕후가 못 됨을 절감하고는 한다. 그래서 슬프냐고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냥 덕후의 곁에 있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덕후들을 좋아한다. 덕후의 눈과 마음으로 보정된 사람과 물건과 콘텐츠들을 되집어보며 되물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가 왜 좋은거야? 이 부분이 좋다는 거지? 그건 어떤 마음인건데?”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물어보면서 세세하게 짚어 보는 일은 세상 재미있는 과정이다. 나는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농도 깊은 사랑을 눈빛과 몸짓과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이미 몰입했던 과정을 뒤에서 따라 걷게 되면 세상의 풍경이 달라져 있고는 한다. 그걸 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덕후들은 자기 세계 안에 기쁨을 차곡차곡 쌓아 즐거움을 누린다. 나는 딱 반보 뒤로 물러서서 그와 그의 세계를 관찰한다. 소유한 것은 없지만 내어주는 풍경을 내 것이라 생각하며 차경한다. 덕후의 창으로 바라본 세계를 즐기기만 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 가끔 이렇게 안과 밖을 보여주며 본인도 후련하겠지 짐작해본다. 사랑이 넘치는 그 세계의 풍경을 보면 덕후가 되지는 못 해도.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2020년 7월의 글


https://www.instagram.com/p/CDQoIZ7pdq6/?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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