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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osome Feb 13. 2024

Tricot, C’est la vie

인생은 뜨개질이야.  86살 친구 Jeannine 


Tricot, C’est la vie.

뜨개질은 인생이야.


 

회색 곱슬머리, 작은 몸집의 허리가 꼿꼿한 J는 나의 친구이다. 내 친구 J는 작년까지 우리 부부의 이웃사촌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종종 그녀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해 주었는데, 바쁜 애들이 뭘 해 먹고살겠냐며 우리 그릇에 아낌없이 음식을 담아 주었다.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가 잔뜩 들어간 프랑스 가정식 Pote au feu,  헝가리식 스튜 요리 Goulash, 디저트로는 우리가 가저간 와인과 아이스크림 혹은 그녀의 사과타르트를 먹었다. 식물로 가득 찬 그녀의 아파트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며 밤늦게까지 떠들었다. 헤어질 땐 계단 한 층만 올라가면 보이는 우리 집을 가리키면서 항상 말했다. ‘가는 길 조심해! ’


 

2차 세계 대전, Jannine: J는 가난한 집의 여섯남매 중 장녀였다. 그녀의 지금은 도시가 되어버린 Paris의 어느 외곽지역 출신이다. 우리가 '파리지엔 J'(Parisienne J)라고 부르면, '아니, 난 변두리 파리지엔(Banlieu Parisienne)이야'라며 유퀘한게 정정해 준다. 그녀는 가난한 철도노동자의 장녀로 태어났고 일 평생을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근면절약하게 성실하게 한 인생을 잘 산 그녀의 올곧은 태도에서 느껴지는 이뤄 말할 수 없는 당당함을 정말 좋아한다.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그녀의 쉽지 않았던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빈곤의 시절, 어린 J의 일과는 매우 고단했다. 밭이 없어 지붕에다가 토마토를 심고 다락에서 닭을 길렀으며 장녀로서 일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온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런 J의 인생에서 9살에 잊혀지지 못할 사건이 찾아온다. 어느 날 밤, 주방식탁의 등잔불 앞에 앉아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우연히 엳듣게 된다. 군인으로 착출된 친아버지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사실 양아버지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본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부모님의 향한 반발심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아버지의 친 딸이 아니라서 이토록 고생스러운 삶을 사는 것인가?  곧장 외할머니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진실을 알게 된 어린 J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날밤 목을 축이러 간 주방에서 시작된 진실로 평생을 만나보지 못한 그녀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J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각박 한 세상 속에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어제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간다. 지붕 위 토마토들에게 물을 주고, 닭에게 모이를 주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갔다. 그 후로도 그녀는 다른 날과 같이 최선을 다해서 동생을 돌봤다. 이웃이 준 옷을 다시 짜 입기 위해서 4살 때부터 뜨개질을 했다. 팔꿈치가 헌 이웃의 니트는 동생들의 바지가 되고 모자가 되고 장갑이 되었다. 그녀에게 뜨개질은 작은 집에 박작박작한 동생들을 피해 나만의 시공간 속에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도피처 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만의 작은 성과이자 작은 해방감이었다. 난로 앞에 앉아서 직물들을 헤치고 다시 뜨면서 집을 나갈 궁리를 했다. 정말로 뜨개질은 그녀의 인생 그자체였던 것이다.


그녀가 성인이 되고선 파리 외곽의 어느 초등학교에 교사로 일하게 된다. 고된 살림살이를 하면서도 항상 여학교의 최고의 성적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녀는 집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아름답고 부유한 미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로맨스 소설이 되었겠지만, 그렇진 못했다. 아니 절반은 맞았다. 같은 학교의 교사였던 미남자와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꿈에 그리던 독립, 그녀는 그녀만의 가족이란 울타리를 찾았다. 그는 그녀와 뜻이 맞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50년 전 그 당시 비혼식에 참석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그들은 여러 차례 이사 끝에 남불의 아름다운 시골마을 Maubec에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부부는 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부부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달랐던 두 사람, 마지막 자식을 결혼까지 시키고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장을 내민다. 여기에서 많은 비약이 있으며 그녀의 인생은 아픔만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짧은 글은 그녀의 잘 산 삶을 몇 줄로 축약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황혼의 나이에 40년간의 결혼을 마친다. 긴 세월 동안 가족이 이 꾸려 간 아름다운 시골집을 나누는 과정에 꽤나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골의 떠나 도시로 가면서 인생의 제2막을 연다. 그녀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전 세계의 소수 민족을 도와주는 NGO 수공예가게에 자원봉사자로 15년간 활동을 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수많은 새로운 딸들과 아들들을 얻었다. 지금도 J는 백순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매일매일이 새로운 일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80세가 넘기고도 이많큼의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인생의 롤모델이다. 당당한 에티튜, 자그마하지만 아름다운 자태, 센스 있는 유머감각.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빨간 니트는 그녀가 좋아하는 니트이다. 아무리 봐도 너무 잘 만들었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J가 뜨개질을 하면서 마시기 좋아하는 반주는 코냑이다.

그녀는 지지난해 관리 서비스가 있는 어르신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물론 그녀의 식물들도  함께 말이다. 사실 사랑스러운 나의 이웃 J 주기적으로 만날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그녀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달라 부탁하였다그렇게 나의 뜨개질 초행이 시작되었다우리는 월요일 아침마다  작업실에서 약속을 잡고 둘만의 뜨개질 모임을 시작했다그녀에게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한 재작년 11 한국에선 바라클라바라는 모자가 유행 중이다 모자는 턱을 감싼 도둑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의 모양이다뜨개질 초짜치고는  과감한 시작이었다   동안은 안뜨기와 바깥 뜨기를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본격적으로 바라클라바를 시작하기 전에 손에 익히는 연습을 꽤나 오래 했다.  배우고 나면 자신감이 충만하다그러나 다음 월요일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마치 말을 새로 배우는 예전의 나처럼 떠듬거렸다가끔 규칙에 어긋나는 뜨개질을  때도 있었다언어를  배운 사람이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내는 척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엉성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뜨개질을 했다. J 항상 나에게 ‘너는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너는 이미  알고 있어라면서   없는 격려  주었다매주마다 J 매번 내가 해치워야  숙제는 내주었다.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을 위해 일요일 오후 아주 밤늦게 까지 뜨개질을 한다짬짬이 매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그런 만남은 반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부턴 그런 우리는 지켜보고 있었던  작업실 동료 친구 Camille Hélene  합류를 하면서  여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우선 J 작업실로 맞이하기 위해 책상을 한구석으로 밀었다그리고  4  10유로를 주고  널찍한 라탄 바구니를 중간에 마련해 두었다작업실은 월요일마다 뜨개질 모임으로 북적북적하다이렇게 얼렁뚱땅 우리의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그리고 얼마  나의  뜨개 결과물이라고 말할  있는 바라클라바를 완성하였다. 3월의 중순봄이 움트는 남분에 양모로  바라클라바를 억지로 쓰고 다니는 동양인이 있다. 나의 5개월의 수고와 J 인내심으로 완성된 작은 걸작을 자랑스럽게 쓰고 다닌다


 


리셉션에 그녀를 기다리다 그린그림. 

노래 수업이 끝난 J가 나를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와락 껴 앉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 지난번에 내가 늦어서 복수하는 거야?' 


 


평생을 뜨개질을 하지만 항상 배우고 있어! 
그래서 행복해, 아직도 배울 수 있는 게 있어서.


 

J의 시니어타운 아래층에는 리셉션이 하나 있다. 보통 월요일 17시에 그녀의 집으로 가는데 그 쯤이면 노래수업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그녀에게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한다는 말이 너무나 어울린다. (70세에 클라이밍을 배우고 손녀와 함께 아웃도어 클라이밍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또렷할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일까? 정신과 기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도'도 아니며 '철학'같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라는 것에 가깝다. 그 마음은 '호기심'과 같은 것 같다. 호기심이란 말로는 또 다 설명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설렘'과 같은 것일까? 아마도 그녀에게 뜨개질을 부탁한 시점은 내가 일상의 설렘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건네준 수채화 박스로 다시 시작된 수채화 열정처럼 나는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설렘을 불어넣기 위해 뜨개질을 배운다. 그녀에게 배우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이 아닐까? 그게 일상을, 그리고 인생을 더 재밌게 살아갈 수 있는 원료가 된다면 좋겠다.


 

또 새로운 걸 배우고 있다.  어렵게 한 글자를 써 내려가듯이 한 코 한 코를 어설프게 뜬다. 

글자가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듯이 나의 한 코 한코가 모여서 목도리가 되고 모자가 되고 옷이 된다. 평생 배워도 배울 수 있는 게 하나 더 생겨서 참 좋다.


 

2022 1월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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