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톡~"
커피 한 잔을 태우고 거실에 앉아 지척에 보이는 뒷산을 보고 멍 때리며 백수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내 옆 휴대폰이 이제 정신줄을 잡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 시간쯤이면 늘 오는 광고성 문자이겠다 싶어 열어 보지 않으려다 이제 일어날 시간도 되었고 싶어 열어본 카톡의 내용이~~
당신 자동차보험이 8월 26일 만기가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있고 이제 슬슬 갱신준비를 하란다.
카톡 내용을 확인하고 하나에 깜짝 놀랐고 다른 하나에 허탈해졌다.
놀란 하나가 불과 한 달 전에 다시 계약한 자동차보험을 벌써 다시 계약하라고 하니 깜짝 놀랐고 허탈한 하나는 내가 느낀 그 한 달이 정확히 1년이 지났다는 것에 허탈하였다.
세월 참 빨리도 간다.
빨라도 너무 빨리 간다.
삼추(三秋)가 일각(一刻)인 듯하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내가 1993년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바로 자동차를 구입하였으니 자동차보험만 30번을 가입하고 갱신하였다.
지금껏 나는 그냥 보험사에서 계산해서 나온 보험료를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납부하였고 갱신기간 1년이 지나면 또다시 갱신하였다.
어차피 자동차보험은 책임보험이고 의무보험이니까 내가 납부하지 않을 다른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친절하게도 보험사에서 올해 내가 납부해야 할 예상납부 보험액을 미리 산정해서 보내주었다.
보험사에서 보내준 예상보험료를 보다가 불현듯 생각하나 가 스치고 지나간다.
'대체 매년 내가 내고 있는 보험료 산정기준이 무엇일까?
무슨 근거로 내게 이런 금액을 제시했을까?'
나는 어떤 것을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게으른 나의 천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익숙의 편리성이 새로움의 어색함 보다 훨 좋아서 그렇다.
그래서 자동차 보험도 바꾸지 않고 거의 20년을 같은 보험사를 이용하고 있다.
타 보험사의 견적도 한번 받아 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도 못 들은 척하였다.
덕분에 설계사 분도 꽤나 친분이 있다.
설계사분께 보험료 산정 기준을 물었다.
설계사분 답변은 이랬다.
'case by case라 정확한 설명은 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는 작년 한 해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의 평균금액으로 산정한다'라고 하였다.
평균금액!
그러니까 어느 운전자가 운전 중 사고로 보험사에서 100만 원을 보험 처리해주었고 어느 운전자는 1년간 무사고로 보험사에서 보험 처리해준 금액이 0원이었다면 이 두 사람과는 전혀 무관한 나는 둘의 평균금액인 50만 원을 자동차보험료로 지불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금액을 기준으로 내가 1년 동안 운전을 하연서 보험 처리한 금액을 가감한다는 설명도 부연해 주었다.
보험사 입장에서야 마땅히 자사 보험기입자들에게 보험료 산정기준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그 기준이라는 것에 '평균'이라는 캡(cap)을 씌워 운전자들에게 내놓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았다.
'아~
내가 매년 생각 없이 의무적으로 내왔던 자동차 보험료라는 것이 어느 무사고 운전자의 안전의식 덕분에 차감이 되었고 어느 운전자의 사고 때문에 가산이 되고 감산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다.
평균!
어떤 값을 구해야 하는 것에 포함된 무리의 수가 많을 경우 극단 치를 순화시키는 것에는 합리적 일지 모르겠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무책임 한 단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시기 수험생 100명을 대상으로 수학실력을 묻는 시험이 치러졌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수험생 중 절반인 50명은 수학천재들이고 또 다른 절반은 숫자에 아주 둔감한 소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라 가정을 하였을 때 시험 결과는 당연히 천재들은 100점을 받았을 것이고 수포자들은 0점을 받았을 것이다.
- 나는 어렸을 적부터 숫자에는 굉장히 둔감하였고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였다.
이때 수험을 주관한 중간 간부가 최고 책임자에게 시험결과를 보고 할 때 수험생 평균 점수는 50점으로 보고 되었을 것이다.
즉 평균점수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번 수학시험의 수험생들의 실력은 그만그만한 중간치의 사람들로 분류되고 평가되었을 것이다.
사실은 수학의 천재와 수학의 둔재들이 섞여 치르진 시험인데 말이다.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어느 곳에서 불꽃놀이 행사가 열렸는데 그 행사는 1년에 딱 두 번 봄과 가을에 열리는 행사였다.
그런데 하필 올해 봄의 행사일에 엄청난 황사로 관람객이 100명도 채 모이지를 않았다.
보통의 행사날 평균 관람객수는 2만 명이 되었는데 그날의 관람객수는 평상시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그랬다가 다시 가을에 행사가 열렸는데 그날은 날씨가 쾌청하여 봄에 관람하지 못하였던 관람객까지 한꺼번에 몰려 관람객 수가 평소의 두 배인 4만 명이 운집하였다.
행사주최 측이 관람객수를 이렇게 발표하였다.
"올해 불꽃놀이 축제의 관람객수는 평균 2만 명으로 평년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맞는 말인가?
극단치로 적게 모이고 극단치로 많이 모인 관람객수를 평년의 수준이라 발표된 것이 과연 맞는 발표일까?
뾰족이 튀어나온 극단 치를 두리뭉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평균의 모순(矛盾)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색이고 단색인 까만색과 하얀색을 섞어 희뿌연 회색이라고 해버리는 평균의 삶을 내가 지금 살고 있다.
어리고 젊었을 때 나는 극단적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사리분별이 명확하였고 나쁜 말로 하면 뾰족하고 모가 나 있었다.
좋고 싫음이 명확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명확이 내 주변사람들을 꽤나 피곤하게 만들었고 나 자신도 꽤나 피곤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나이 예순을 넘은 지금은 그저 평균의 삶이다.
극단적으로 검은색도, 극단적으로 흰색도 아닌 회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예순의 나이에 이순(耳順)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평균은 또 모순이 아닌 듯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