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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Nov 10. 2024

일기를 쓰면서

"종열아!

일기를 쓸 때 쓰지 말아야 단어가 두 가지 있데이~

첫째는 '나'라는 단어이고 둘째가 '오늘'이라는 단어인기라.

니 일기는 니가 쓰는 일기니까 ''라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고 또 일기는 오늘 쓰는 거니까 '오늘'이라는 말도 굳이 할 필요 없다 아이가.

알겠나?"


국민학교 3학년 때 내 일기를 검사하신 선생님이 나한테 하신 말씀이다.

- 나는 오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그때 내 일기장에 이렇게 쓰였을 터였다.


그 시절 나에게 일기 쓰기는 참으로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방학은 참으로 기다려지고 즐거웠지만 방학숙제는 참으로 귀찮고 싫었다.

그 숙제 중에서도 일기 쓰는 것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었다.


다른 과목 숙제는 뭐 미루어 두었다가 개학하기 하루나 이틀 전에 한꺼번에 할 수도 있고 또 그것조차 마땅치 않으면 다른 친구들 숙제를 보고 베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일기는 그것이 안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일기장에는 꼭 날씨를 기록하는 이 있어서 그날그날의 날씨를 써넣어야 했고 또 시골에서의 방학생활이라야 뭐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데 새삼 무슨 하루의 기록을 매일 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 일기를 베낄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가 마을에 잔치가 있어 돼지라도 잡는 날

아이들 일기장을 난리였다.

'오늘 우리 마을 상수네에서 잔치를 하였다.

누나가 시집을 갔다.

그래서 상수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으셨다.

...................'

이런 날 아이들은 마치 신문사 기자가 특종거리를 잡은 양 일기장을 꽉 채워 썼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은 천일여일(千日如日)의 날들이었고 그러니 일기장도 매일이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그러나 그 밥에 보리쌀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먹기 싫었다.

쌀밥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개학이 되고 반아이들 일기를 검사하신 선생님은 아마 기가 찼을 것 같다.

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써온 일기장에 날씨가 제각각 인 것을 보시고 아마 '이 눔들 차암~~'하며 피식 웃으셨을 것이다.

한 동네 마을 마을의 같은 날 날씨가 흐림, 맑음, 심지어 비 라고 썼을 테니 말이다.


그때 나는 일기의 개념을 내 몸이 움직이는 것만 공책에 기록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하는 생각과 꿈은 기록하는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저 귀찮고 성가신 그냥숙제였다.


그랬던 내가 10여 년 전부터 매일 일기를 써왔다.


어느 날 문득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 날부터였다.


나에게 허락하신 소중한 하루를 맞이하고 그 하루가 가고 새로운 하루가 또다시 찾아왔을 때 가버린 하루는 오늘이라는 이름에서 어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더러는 기억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나가 잊어버린다는 생각이 들고부터 지난날을 잊지 않으려 일기장에 보관하였다.


지금부터 딱 45일 전에 내가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의 파편이 단 1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거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하루는 내게 참으로 소중하고 귀중한 하루였을 터인데 그냥 흘러 보내고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일 하는 기도에서 '주신하루 허투루 쓰지 않고 소중히 잘 쓰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고는 그 소중하였던 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허투루 잊고 사는 것이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하루를 기록하자.

하루에 내가 했던 말 

내가 했던 수많은 생각들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수많았던 일들을 기록하자.


요새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10년 전 오늘부터 작년 오늘까지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써놓은 일기장을 읽어보는 일부터 한다.

' 그때 이 일은 내가 잘했구나.

   그때 그 일은 내가 잘못했구나. '


반성하고 review 한다.


딱 1년 전 오늘 내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있다.


             2023년 11월 10일 (), 흐림


어제부터 나를 찾아온 몸살친구가 본격적으로 내 옆에 바짝 당겨 앉았다.

나는 이 친구가 별로 달갑지 않지만 이 친구는 해마다 이맘때쯤 나를 꼭 찾아와 내 옆에 앉았다.


내 옆에 앉은 몸살친구가 내게 줄 것은 따로 없고 이거라도 받으라며 내놓는 것이 관이다.

친구가 내놓은 것이 나를 으슬으슬 춥게 만들고 팔다리를 쑤시게 하고 머리를 아프게 한다.

가끔씩 기침도 나게 하기도 하 몸에 기운이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게도 한다.


나는 몸살친구가 주는 선물(?)을 받지 않으려 바둥거렸지만 기어이 내게 주려는 몸살친구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받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이 성가신 불청객을 쫓아버릴까 생각하였다가 이내 내 그런 생각을 접었다.


몸살친구가 내게 그랬다.

'나를 쫒으려 병원에 가면 1주일 만에 내가  것이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7일 만에 내가 가지'


그냥 시간으로 때우고 버티련다.

'나도 병원에 가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1주일 후에 나를 떠나렴.'


원래 역마살기가 있어서 좀체 집에 있지 못하는 나인데도 춥고 아프고 기운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먹고 자고만 하였다.


그런 나를 누누가 신기한 듯 자꾸 쳐다보다가 하루종일 내 곁에 딱 붙어 있다.

   * 누누 = 우리 집 강아지


다 늦은 저녁에 몸살친구가 내게 한마디 한다.

- 얘, 종열아

내가 니 옆에 왔을 때는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니 몸을 쉬렴

오늘처럼 ㆍㆍ


그냥 먹고 자고만 해.

니 몸이 몇 번이고 그렇게 하라고 신호를 줬는데도 니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내가 와서 니 몸에 있는 기운을 다 빼버린거야.

감기는 하느님이 주신 휴가의 병이야.


그리고 이 참에 아프지 않고 건강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느껴봐.

알았지?


        ----- 오늘 한 일 -----

아침식사 : 집

점심식사 : 집

저녁식사 : 집


휴대폰 앱에 깔린 [카렌다]에 이렇게 매일 쓴다.

지금 내 휴대폰 그곳에는 2014년부터 매일의 하루가 기록되어 있다.


국민학교 때 공책에 써왔던 숙제일기를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에 쓰고 있다.

밤에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그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오늘 내가 한 말과 행동, 생각을 정리하고 자찬(自讚) 할 것은 그리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오늘도 나는 나의 하루를 쓴다.


일기를 쓰면서부터 자칫 잊힐 뻔하였던 소중한 내 지난날들이 글로 박제(剝製)되어 있고 하루의 끝에서 하루를 반성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차마 하지 못하였던 하고 싶었던 말들을 글로 표현할 수가 있고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밤에 쓰일 일기가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의식하게 된다.



어느 순간 내가 떠나야 할 순간이 코 앞에 와있을 때

나는 맑은 정신으로 오랫동안 써왔던 내 생애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추억하고 싶다.


읽어본 내가 살았을 적 일기는 전부 지우고 새털처럼 가벼이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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