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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un 20. 2024

때기


삼삼오오로 모여 놀던 열 명 남짓 아이들이 한 아이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은 것은 골목대장 만순이었다.


모여든 아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잠시  엇인가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흩어져 어디론가 갔다가 금세 흩어졌던 곳으로 다시 모였다.


조금 전 아이들이 흩어져 갔던 곳은 각자의 집이었고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바가지 하나씩을 들고 다시 모였다.

어떤 아이는 바가지를 손에 들고 왔고 또 어떤 아이는 아예 머리에 쓰고 왔다.

아이들이 들고, 쓴 바가지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 바가지는 작고 예쁘게 생겼고 어떤 아이 바가지는 앞보다 뒤가 더 튀어나왔다.

또 어떤 아이 바가지는 작고 삐뚤빼뚤 못생긴 바가지였다.

바가지를 만든 호박의 모양새가 각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바가지 모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가지를 들고 모인 아이들은 골목대장 만순의 지시로 줄을 서서 어디론가 향해 뛰었는데 곧 그들이 도착한 곳은 동네 뒤에 위치한 나지막한 동산이었다.

동산은 먼저 세상을 떠난 마을 어른들이 잠들어 있는 높지 않은 산이었는데 어떤 곳은 겉이 다 드러난 멀건 민둥산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멀지 않은 바로 옆 산의 모습은 도토리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짙은 숲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산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꿀밤(도토리)나무로 가 나뭇잎을 뜯어 계급장을 만들고 침을 발라 바가지에 붙였다.


아이들이 만든 계급장은 작대기 하나 이등병부터 작대기 네 게에 가꾸리가 셋 달린 상사까지 다양하였다.

아이들의 계급장은 이병보다 병장이 높지 않았고 상사보다 중사가 낮지 않았다.

그저 바가지의 여백을 채운 침으로 붙인 나뭇잎이었다.


비록 바가지로 만든 철모에 나뭇잎 계급장을 붙였지만 아이들의 눈은 빛났고 그들은 최전선을 지키는 용감하고 씩씩한 국군이었다.


머리에는 바가지 철모를 쓰고 손에는 소나무 총을 들었다.

소나무 총에서 솔방울 총알들이 발사되어 나갔다.

총알이 발사되어 나갈 때 아이들 입에서 피융~ 소리가 났다.


녹음이 짙은 숲에서 미리 매복한 용감한 국군들은 마을을 침투하는 무장공비를 일시에 격퇴시켰다.

무장공비 무리들이 용감한 바가지 국군들에 의해 일망타진되었을 때 아이들이 놀던 산 뒤로 여름해가 기울어갔다.


내가 어렸을 적 아이들의 놀이는 극히 단순하였다.

지금처럼 놀이도구가 많지 않았던 그때 아이들은 대부분의 놀이도구를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것을 사용하며 놀았다.


땅에 금을 그어 땅따먹기를 하고 추수가 끝난 논에 돌을 놓아 골대를 만들고 짚을 말아 공을 만들어 축구놀이를 하였다.

동네 앞 낮은 산에 부러진 소나무에 걸터앉아 자동차처럼 운전하였고 흐르는 시냇물에 돌을 넘겨 가재를 잡고 뿌구리(동사리)를 잡았다.

논둑을 가로질러 뛰고 그때 놀라서 날아오르는 뚜기를 잡아 구워서 먹었다.

길가에 나뒹구는 작은 돌을 주워  짜구(공기)놀이를 하며 손으로 길의 흙을 닦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었고 자연은 아이들을 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상수가 종이로 접은 무엇인가를 들고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놀거리가 정해진 아이들 눈에는 그 물건이 신기하게 보였다.


"상수야

이기 뭐꼬?"

상수 앞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몰려든 아이들 눈은 전부 상수가 들고 있는 접은 종이로 몰렸다.


아이들의 물음에 가난으로 평소 낮아있던 상수의 어깨가 높아졌고 높아진 어깨만큼 목소리가 크고 힘찼다.

"이기 뭔고 하믄 아잇나?

느그도 알다시피 우리 적은(작은) 아부지가 읍내에 사신다 아이가?

내가 이번 방학 때 잠깐 적은 아부지 집에 갔디(갔더니)그 마을에 아~들이(아이들이) 이거를 가주고(가지고) 따묵기 하미(따먹기 하면서) 놀더라 아이가?"


"그래가?(그래서?)"

아이들이 궁금증 반, 호기심 반의 눈으로 상수를 보며 물었다.


"내가 누고?

그 마을 친구 중에 어떤 아이가 이거 따묵기 하다가 각쮀(갑자기) 오줌 누고 온다카미 지꺼를 놔뚜고(놓아놓고)변소에 가길래 퍼뜩(얼른)하나를 도딕히가(움쳐서)왔다 아이가.

이게 그거다"


상수가 신이 났다.


상수는 마치 중국 원나라에서 우리 백성들의 따뜻한 의복을 위해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몰래 들여온 애민가(愛民家) 문익점 선생이라도 된 듯,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의적(義賊) 임꺽정이라도 된 듯 목에 힘을 주며 말하였다.


"그게 이름이 뭔데?"

대장 만순이 상수한테 물었다.


"이거를 그 마실아(마을 아이)들이 '때기'라 카더라."


딱지였다.

그날 이후 딱지는 문익점 선생에 의해 들여온 목화씨 마냥 순식간에 마을로 퍼졌고 우리 마을 아이들은 온통 '때기 때기'하며 눈에 보이는 종이는 모조리 접었다.


당시 종이는 참으로 귀한 물건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아예 신문과 잡지는 존재조차도 몰랐고 달력은 한 장으로 1년을 표시한 달력이 고작이었는데 그나마 안방 가장자리 벽에 붙여져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서도 뒤처리는 짚을 말아서 하거나 감나무잎으로 하였다.


종이는 교과서와 공책이 전부였다.

그래서 아아들은 집 안에 있던 배움이 끝난 책과 공책을 모조리 뜯어 때기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위로 형이나 누나가 없던 아이 몇몇은 이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책을 뜯어 때기를 접었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하였다.


아이 하나는 양면이 똑같은 때기를 가지고 왔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 아이들 중에 유독 때기를 잘 치는 친구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는 같은 때기를 가지고도 치는 쪽쪽이 상대의 때기를 넘겼고 다른 아이가 치는 때기에는 그 친구 때기가 천년을 버틴 바위처럼 꿈쩍도하지 않았다.

때기의 달인 종두였다.


거의 반나절 이어진 때기 놀이가 끝났을 때면 언제나 종두 양손에는 수 십장의 때기가 들려 있었고 때기를 잃은 나머지 아이들 양손에는 작은 작대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금싸라기와도 같은 종이로 접은 때기를 모두 잃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에 작대기로 애꿎은 땅만 툭툭 쳤다.



다음날에도 아이들은 손에 몇 장의 때기를 들고 다시 모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 손에 쥐어졌던 때기는 종두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에 자리 바꿈을 하였다.

아이들은 또 작대기로 땅을 두드렸다.


이제 종두는 마을에서 때기로 대적할 인물이 없었다.


때기의 춘추정국시대를 영웅 종두가 잠재우고 천하를 평정하였을 즈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었다.


때기界에서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윗마을 친구 근동이 신무기를 들고 기마을로 나타난 것이다.

근동의 손에 들려진 그것은 지금껏 귀로 들어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었던 신출귀몰한 물건의 때기였다.


우선 생긴 것부터가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웅장한 것이었다.

생김새가 두껍고 커서 쇳덩어리로 쳐도 꿈쩍 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고 겉으로 보이는 아우라가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이 조금의 거짓말만 보태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물론 때기의 달인 종두의 얼굴에도 '나 쫄았다'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그렇지만 종두는 애써 자신의 얼굴빛을 감추고 때기의 달인답게 근동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근동은 종두의 도전장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 때기 전투의 성사가 실제 이루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종두가 자신이 들고 있는 가장 크고 무거워 보이는 때기를 한장 골라 땅에 놓았다.

근동도 신무기 때기를 종두 때기 옆에 놓았다.


때기를 앞에 놓은 둘은 마주서서 '장께이 뽀시(가위, 바위, 보)로 선공을 정하였는데 종두가 이겼다.

종두는 근동이 놓은 때기 옆에 자신의 왼발을 놓고 오른손으로 근동의 때기 모퉁이를 사정없이 후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었을 때 종두의 저 후림에 넘어가지 않은 때기는 없었다.


구경하던 아이들 모두가 일순간 눈을 감았다.

아이들은 감겨 있던 눈을 최대한 천천히 뜨면서 조금 전 땅을 보며 엎드려 있던 근동때기가 하늘을 향해 발라당 누워 있을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런데~

눈을 완전히 뜬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연질색의 모습으로 땅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 장의 때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동의 때기는 종두의 발 옆에서 요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고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있었고 종두 때기만 조금 전 후려친 주인에게서 멀리 튕겨져 나뒹굴었다.


모인 아이들 전부가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

종두의 당황이 그중에서 가장 커 보였다.


아이들 중 유일하게 당황해하지 않고 덤덤한 친구는 당연 근동이었다.

근동의 얼굴은 표정변화 없이 조금의 비장함만 보였다.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신무기 때기를 주워 들고 멀리 널브러져 누워있는 종두 때기 옆으로 간 근동이 종두 얼굴을 한번 훑어 보았다.

'종두야 마음의 준비 됐나?'


종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근동이도 조금 전 종두가 하였던 것처럼 종두 때기에 자신의 발을 대고 신무기를 내리쳤다.


순간~

마을에 천둥이 치고 돌개바람이 이는 듯 하늘이 진(震)하고 땅이 동(動)하였다.


아이들은 조금 전 종두가 선공을 하였을 때보다 더 깊이 눈을 감았고 감긴 눈은 금세 뜨지 못하였다.


잠시 후 아이들이 뜬 눈에는 믿기지 않는 장면이 들어와 있었다.


지금껏 자신들의 때기를 있는 대로 넘겨서 따간 종두의 때기가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 있었고 종두 때기 위에 근동의 때기가 올라타고 있었다.

종두 때기는 숨이 막힌 듯 하늘을 보며 드러누워 연신 항복을 외쳤지만 근동때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런 종두때기 위에서 쾌재를 부르며 앉아 있었다.


구경꾼 아이들은 그런 모습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하였다가 종두로부터 돌아올 후환이 두렵기도 하였지만 아직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종두가 다른 때기를 꺼내 재 도전했지만 이후에도 근동때기가 한번 춤출 때마다 종두때기는 초겨울에 이는 바람에 날리는 마른 낙엽이었다.


얼마지 않아 때기들은 모조리 종두의 손에서 근동의 손으로 자리바꿈을 하였고 종두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지금껏 우리가 수십 번 되었던 빈털터리를 종두가 하고 있었다.


종두가 난생처음 나무작대기로 애꿎은 땅을 두드렸다.


근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대인(大人)이었고 의적 임꺽정의 포스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러싸고 있는 아이들 전부에게 자신의 손에 들린 때기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때기를 몇 장 받은 나는 그때 사람에게서 후광(後光)이 일어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근동아!

니가 쫌 전에 친 그 때기는 도대체 뭐고?"

잃은 때기를 되돌려 받은 친구 중 하나가 근동에게 물었다.


"이기(이것이) 촛때기라는 거다.

촛때기가 뭔고하믄 아있나.

느그들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양초 안켜나?

그 양초 껍띠기(껍데기)로 만들었다 아이가.

양초 껍띠기로 때기를  만들어가(만들어서)겉에다가 양초로 살살 문때주마(문질러주면) 천없어도 야는 안 디비지는기라."


그날 이후로 집집마다의 양초들은 아이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알몸으로 쫓겨나서 선반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전부 제례식 종이때기를 버리고 신식 때기로 재 무장 하였다.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모아 두었던 종이를 버리면서 잠시 종이가 귀했던 그때 추억이 떠올라 혼자 실없이 웃었다.


다음 주에 그때 친구들이 포항 강구에서 한자리에 모여 1박으로 모임을 한다.

총무가 보낸 모임 알림 문자에 때기의 달인 종두가 답글을 달았다.

'느그 그날 저녁묵고 때기치기 할끼다.

전부 때기 10장씩 접어온나 알았제?

그런데 절대 촛때기는 안된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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