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서 지금 내 아내와 아이 셋이 둘러앉아 울고있고 또 다른 하나의 나는 울고 있는 가족옆에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서있는 나는 내 몸이 일찍이 이렇게 가볍고 건강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의 나는 몸의 무게가 천근을 넘어 만근이나 되었고 몸 구석구석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떤 때 나는 몸의 고통이 너무나 커 누운 채로 부처님께 어서 나를 부처님 세상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기도한 적도있었다.
그제쯤 의사가 누워있는 내 옆에서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는 말을 하였다.
의사는 내가 의식이 없다고 여기고 한 말이겠지만 나는 의사의 말을 다 듣고 있었고 직감으로 이제 내가 떠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의 그 말에 의식이 없었던 내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또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던 먼저 떠나신 내 어머니가 수시로 내 옆으로 와서 이제는 가자며 손짓으로 나를 부르셨고 표정 없는 낯선 얼굴의 사내 둘이 조금 전 어머니가 서 계셨던 자리에 서서 자신들은 모월 모일에 다시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서 있는 지금의 내 옆에 그때 그 표정 없던 사내가 서있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그가 얼마 전 말한 그날이다.
"내가 죽었소?"
내 옆에 서있는 표정 없는 사내에게 내가 물었다.
"그렇다.
너는 조금 전 혼(魂)은 날아가 지금 나와 같이 서있고 백(魄)은 흩어져 네 앞에 누워있다.
너는 지금 혼비백산(魂飛魄散) 죽은 것이 분명하다."
사내는 여전히 얼굴에 표정이라고는 약에 쓰려해도 없을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내 물음에 답하였다.
'나는 지금 죽었는데 이런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슬픈 표정을 지어주면 어디가 덧 날까' 싶었지만 사내의 표정으로 보아서 언감생심 같아 보여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의사가 와서 내 몸을 몇 군데 만지고 살피더니 'XXXX 년, 모월, 모일 사망'이라 종이에 쓰고 나가자 이내 누워있던 내 몸은 흰 천으로 덮여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다.
내가 도착 한 곳 문입구에 [안치실]이라 쓰여 있었다.
내 몸이 좁은 공간으로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86년간 나와 함께 하였던 내 육신을 한참을 바라보는나는 덤덤하였다.
살아온 지난날들이 일순간 내 눈에 펼쳐졌다.
어렸을 적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던 일
학창 시절 까만색 교복을 입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공부하던 일
승진에 기뻐하고 좌천에 좌절하였던 40년 직장생활 기억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던 기억
퇴직하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독서하고 혼자 밥 먹었던 기억
먼저 떠나신 어머니 곁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던 일.........
길고 험난하였던 86년 내 일생이 10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펼쳐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런데 사라진 내 인생에 대하여 한 톨의 쌀만한 미련도 없었다.
조금의 후회는 있지만 그 후회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보이는 것이 그저 10분도 안 되는 인생을 뭣하러 그렇게나 아등바등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짧게 지나갔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라 어쩔 수도 없다.
혼자 누워있는 지금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않다.
어느새 무표정의 사내가 또 나에게서 두어 걸음 뒤에 서서 나를 보고 섰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오늘부터 너는 사흘간 이곳 인계(人界)에 머물게 될 것이다.
지금의 너는 백(魄)은 없고 혼(魂)만 있어 너의 생각대로 네 혼이 움직이게 될 거야.
네가 보고 싶은 것을 생각만으로 볼 수 있고 네가 가고 싶은 것은 한 번의 생각만으로 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흘 후 네가 인계(人界)를 떠나야 할 때 하나 미련이 없게 열심히 보고 가 보거라."
사내는 이내 또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구나.
혹여라도 떠날 곳에 대한 미련이 많으면 닿을 곳에 대한 어색함이 클 것 같아서 말이야."
사내는 얼굴표정과는 달리 말투는 자상하였다.
실은 나도 그렇게 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저 내가 열두 살 때까지 살았던 시골마을과 내 인생의 절반을 보냈던 회사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살았던 시골마을에 내가 와 있다.
얼마 전 같았으면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찰나의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육신 없는 혼이 얼마나 가벼운지 다시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동네 모습은 흔적도 없고 밤가로등이 거리를 비추고 옛날 내 기억에 휘영청 밝았던 달은 가로등 불빛에 가려 존재를 알 수조차 없었다.
빠르게 내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가로등을 도와 달빛을 더 흐리게 하였다.
도로옆 불이 켜져 있는 작고 아담한 카페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커피잔을 앞에 놓고 대화에 열심이다.
나는 죽었는데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내가 죽은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나와 한치 상관없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열중하고있다.
살았을 적에 나도 누군가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내 작은 일상에 매몰되어 저리 하였으리라.
지금 카페자리가 내 어렸을 적 동네 우물이 있던 딱 그곳이다.
내 다음 생각이 내가 반평생을 다녔던 직장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옛날 내가 근무하였던 [인사부]에는 눈에 익은 사람도, 내가 근무하였던 그때의 모습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부서 어느 곳에도 인사부라는 글씨는 없고 뜻을 알 수 없는 영어가 팻말에 새겨 문 입구에 붙어 있었다.
[HR 부]라 쓰여있다.
나는 사무실 구석진 자리에 조금 서있다가 이내 그곳을 나왔다.
표정 없는 사내의 말이 맞았다.
추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떠나야지 눈에 담으려 하였던 내 생각이 틀렸다.
그래도 와보기를 잘했다 싶기는 하다.
이제는 정말 한 톨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홀가분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몸이 나무통속으로 들어가고 나무에 못이 박힐 때 아내와 아이들이 울었다.
내가 울지 말아라 말하여도 그들은 듣지 못하였고 내가 어깨에 손을 얹어도 그들은 알아 차리지 못했다.
그저 투영되는 X-ray처럼 내 손이 가족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날이 바뀌자 내 영정사진이 있는 방으로 한두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내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했다.
문상객들인가 보다.
내가 살았을 적에 수도 없이 다녔던 문상을 이제 내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맞이하고 있었다.
나에게 두 번 절한 사람들이 이내 뒤돌아 서서 아이들과 마주 절을 하였다.
그들은 고인의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평소 지병이 있었느냐
마지막 임종은 하였느냐는 정해진 말들을 아이들과 나누고 이내 마련된 자리로 가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들은 이내 그곳에서도 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포복절도로 웃었다.
옛날 나도 저렇게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다.
그런데 희한하다.
죽은 나를 위한 문상객들인데 정작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방 입구에 줄지어 서있는 조화(弔花)에 쓰여있는 이름 중에 내가 아는 것은 두세 개 밖에 없다.
그랬다.
조문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식(式)이 아니었고 산 사람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살았을 적에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내가 죽고서야 알았다.
내일이면 사내가 말한 인계(人界)에서의 사흘 마지막 날이다.
약속이나 한 듯 사흘이 되자 조문객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래서 사흘의 시간을 주었는지 사흘의 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조문을 왔는지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장례식장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이리 오고 저리 가며 바쁘게 움직인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가자 승복을 차려입은 스님이 나의 영정사진 앞에 서서 반야심경을 독경하셨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래!
나도 그 옛날 내 어머님과 아버지를 이렇게 보내 드렸다.
오늘이 발인일이다.
이제 내가 이곳을 나가면 나와 함께 하였던 나의 육신이 한 줌의 흙으로 변해 질 것이다.
어렸을 적에 나는 나중에 내 몸이 불속으로 들어가 타게 되면 얼마나 뜨거울까 겁을 먹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가볍다.
나의 육신이던, 내가 썼던 물건이던 태워져 하나 남김이 없어야 가볍게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 들었다.
마지막을 태우는 나와 함께 해주었던 내 육신에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였다.
큰 딸아이가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는 내 관을 잡고 '아빠 집에 불났어요. 어서 나와~'하며 흐느껴 울었지만 나는 아무 동행인 없이 홀로 뜨거운 화장로로 들어갔다.
나의 86년 삶은 단 1시간 만에 흔적도 없어져 버렸다.
나의 혼(魂)을 담고 다녔던 백(魄)의 모습은 이제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표정 없는 사내가 또 와서 물었다.
"이제 떠나시려는가?"
지체 없이 어서 가자고 내가 사내의 앞에 섰다.
깊은 동굴로 내가 들어갔다.
아니다.
그 동굴이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동굴은 어두워 눈을 감으면 훤해지고 훤함에 눈을 뜨면 다시 어두워졌다.
"이제 눈을 뜨라."
사내의 말에 눈을 떴다.
내 나이 마흔일곱부터 끼었던 안경을 끼지 않았는데도 눈앞의 광경이 망원경을 보듯 크고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는 이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에 일순간 얼어 내 눈과 입은 있는 대로 커지고 벌어져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 꽃과 나무에서 날고 울고 있는 나비와 새
지금껏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름다우냐?
신기하냐?"
사내가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
내 육신!
분명 조금 전 태워져 한 줌의 흙으로 변했는데 지금 내가 눈을 뜨고 입을 벌리다니 싶어 내 발 앞에 놓인 조그마한 옹달샘에 나를 비쳐 보았다.
내가 가장 젊었을 적 스무 살 때 내 모습이 옹달샘에 비쳤다.
'그래 저 때의 나는 참으로 젊었었고 용기도 많았었지'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일순간 옹달샘에 내 86년의 삶이 비쳤다.
학교에 다닐 때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불러 작은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던 모습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저 일은 참으로 잘했는 일이라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물밖으로 나와 몸에 물기가 말라 죽어가는 물고기를 잡아 물에 넣어주고 빠르게 달아나는 그놈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에서도 나는 웃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에 재미 삼아 개구리들을 잡고 메뚜기들을 잡아 불에 구울 때 그들이 내는 고통의 신음을 들을 때 나는 울었다.
그때 내 나이가 어려서 모르고 그랬다며 진심으로 사과 하였다.
삵바느질로 생계를 꾸미셨던 가여운 내 어머니를 속여 돈을 받아 딴짓을 했던 모습에서도 나는 울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옹달샘에 비친 생전의 내 모습에서 나는 참으로 부질없는 것에 애타하고 갈구하고 가지려 했다는 허무감에 몸서리를 쳤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냥 흐르는 물처럼, 이는 바람처럼 흘러 보낸 것에 대한 후회의 마음에서 내 가슴을 후볐다.
옹달샘이 사라졌다.
옹달샘이 사라지고도 한참동안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너의 전생이다.
너는 방금 너의 전생 업(業)을 전부 소멸하였다.
네가 잘했다 생각하는 것에는 미소가, 네가 잘못했다 생각하는 것에는 눈물을 흘렸으니 그것으로 네 업보는 소멸된 것이야."
사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너는 너희가 전생에서 말해왔던 내생(來生)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는 너의 전생처럼 80년, 100년 보다 훨씬 긴 어쩌면 영겁의 시간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부터 너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야.
너에 대한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럼 나의 내생은 대체 어떤 삶입니까?
도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를 심판하셔야 할 염라대왕님은 도대체 언제 뵐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제 곧 가게 될 너의 내생 다음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금 네가 가는 곳에서의 삶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