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Viajero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ar Luna Feb 25. 2023

 Viajero- Japan からつ

‘또 올게요’라는 말

 비가 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츠우라강과 가라쓰만 가까이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두웠다. 숙소의 창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새까만 강과 물결에 어른거리는 불빛이 전부였다. 한 벽 전체가 강 쪽으로 난 창을 가진 방에서 내일 아침 창밖의 풍경을 기대하며 잘 준비를 했다. 이런 창문이라면, 비가 내리는 풍경을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을 뿐인데, 다음날 정말 비가 내렸다. 흐린 아침 햇살 아래 창 가득 강과 하늘이 윤곽을 드러낸 아름다운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강물이 너무 가까워 물결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비뿐만 아니라 바람도 세차게 불어 강의 잔물결은 큰 물결이 되어 밀려오고 있었다. 배가 출렁였다. 바다같이 넓은 강이었다.

 비바람 속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 노곤한 채로 강을 건너는 다리가 보이는 1층 다이닝룸에서 맥주를 마시며 해가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 나침반이 서쪽을 가리키는 곳에 파란 조명이 켜지고 있는 가라쓰 성이 보였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 푸른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노을은 하늘과 강물 위를 번져 어둠에 삼켜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빛의 그림자를 놓지 않았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 동그란 조명들이 켜지고, 다시 어제처럼 새까만 풍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가 사라지고 난 까만 강 위에는 다리를 건너는 자동차의 라이트와 가로등의 불빛들이 물결을 따라 넘실거렸다.

 어두워지자 다시 일몰이 보고 싶었다. 슬플 때면 일몰을 본다는 어린 왕자는 어느 날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일몰을 봤다고 했었다. 의자를 조금만 움직이면 일몰을 볼 수 있었던 어린 왕자의 작은 별에서처럼, 이런 일몰이라면 나도 하루에 마흔네 번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온다면, 나는 좀 오래 머물고 싶다. 강을 바라보고 앉게 되어 있는 의자와 테이블에서 하루 종일 턱을 괴고 창밖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떠오르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눈부신 윤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의 짙푸름까지 그냥 계속 바라만 봐도 하루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갈 것 같다. 작은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준비해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코발트블루와 퍼머넌트 블루를 섞어서 하늘과 강을 표현해보고 싶다. 책을 가져와서 읽고 싶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설레는 책을 읽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것 같다. 커피를 마셔도, 낮부터 술을 마셔도 좋을 것 같다. 마음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면 조금 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숙소에서 차려주는 정갈한 아침을 먹고, 잠깐 졸다가 바깥공기가 쐬고 싶으면 강가로 나가 산책을 해도 좋겠다. 골목을 걷다 예쁜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서 물건을 구경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펜과 수첩이 있다면 하나씩 사기도 할 것 같다. 이번에 가지 못한 카페 키코우안에서 차를 한잔 마셔도 행복해질 것 같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엔 편의점에 들러 저녁에 먹을 샐러드와 주먹밥, 맥주를 사겠지.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다음날엔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며 받는 이가 있는 곳을 떠올려보기도 할 것이다. 좀 너무 한가롭나 싶은 날은 지도도 보지 않고 무작정 걸을지도 모른다. 소나무 숲길도 좋겠다. 걷다 보면 모르던 풍경이 보여 재미있을 것이고, 또 조금 힘들다고 느껴지면 돌아가고 싶어지니까.

 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 그곳이 마음에 든다는 직관적인 최고의 표현은, ‘또 올게요’가 아닐까. 이 짧은 말을 내뱉는 순간은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다시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을 다친 어느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 그냥 울고 싶은 어느 날, 이곳이 그리울 것이다.

 떠나올 때 말하지 못했다.

‘또 올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