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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Mar 26. 2022

신들이 부르는 뮤즈를 위한 노래들


음악가들의 주위에는 그들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는 뮤즈들이 늘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는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 또는 브람스와 클라라의 경우와 같이 뮤즈와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음악가가 결국 뮤즈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한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나 짝사랑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연애에 성공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음악가들이 자신의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활용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모차르트의 '라우다무스 테'





먼저 모차르트의 신부 콘스탄체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모차르트의 첫사랑은 소프라노 알로시아 베버였지만 아버지 레오폴트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알로시아의 여동생 콘스탄체 베버와 사랑에 빠진 모차르트는 이번에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합니다.












모차르트의 미완성의 걸작 대미사 c단조는 그의 아내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기념하는 이벤트의 하나로 작곡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보낸 서신에서 모차르트는 이 곡이 자신에게는 일종의 '결혼서약'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는데, 그래서인지 이 곡은 초연 때 소프라노 독창을 부인인 콘스탄테가 맡았습니다.



전체 미사곡이 너무 아름다운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소프라노가 부르는 라우다무스 테(Laudamus te)는 비록 그 내용이 신을 향한 찬미이지만 신부 콘스탄체를 향한 모차르트의 기쁨과 환희가 생생히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라우다무스 테 https://youtu.be/5ONbb37uX1A






베버의 '춤을 청함'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 베버와 사촌인 칼 마리아 폰 베버는 사랑하는 아내 카롤린 브란트의 생일에 '춤을 청함(Aufforderung zum Tanz)'이라는 작품을 작곡하여 선물하였습니다.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된 이 곡을 부인에게 선물하면서 베버는 '한 무도회장에서 신사가 젊은 여성에게 춤을 청한다. 그 여인은 부끄러워 거절하지만 신사의 간청에 결국 같이 춤을 춘다."라는 표제적 설명을 하였다고 합니다.












모데라토로 시작하는 곡의 처음에 피아노의 낮은 저음이 신사를 또 피아노의 높은 음이 그에 반응하는 여인을 각각 묘사하고, 그 후 알레그로 비바체로 다섯 곡의 멋진 춤곡이 이어지는데, 마지막에는 처음의 모데라토 부분으로 돌아가 춤을 청하였던 신사가 정중히 여인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면서 곡을 끝맺습니다.



피아노 독주 https://youtu.be/ycCgRLKgdho





표제음악적인 성격을 띠는 이 곡은 후일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등에도 영향을 크게 끼쳤는데, 베를리오즈는 이 곡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을 하였습니다. 베를리오즈는 도입부와 끝부분에 첼로 독주와 목관악기군이 각각 신사와 연인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외에 자신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원곡을 더욱 매력적인 곡으로 새롭게 변모시켰습니다.











아래 연주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곡은 실제 연주에서 화려한 춤곡이 끝나고 다시 첼로가 처음으로 돌아가 독주를 하기 직전에 곡이 끝난 줄로 알고 박수를 치기 쉽상이니 실연에서는 청중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 편곡 https://youtu.be/wLdnmueC0lE






슈만의 '미르텐'





자신의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활용한 대표적인 예로는 슈만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클라라의 마음을 자신의 음악으로 사로잡았던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하면서도 <미르텐>이라는 가곡집을 작곡하여 결혼식 전날 밤에 클라라에게 선물합니다(우여곡절을 겪은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https://blog.naver.com/celi2005/221908063865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헌정(Widmung)', '호두나무(Der Nussbaum)', '연꽃(Die Lotosblume)' '당신은 한송이의 꽃과 같아요(Du bist wie eine Blume)' 등 26개의 꽃다발로 이루어진 이 작품집은 한 곡 한 곡이 다 사랑스럽지만, 오늘은 아래의 25번째 곡인 '동쪽의 장미로부터'를 소개 드립니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연주자별로 템포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느린 연주와 빠른 연주 중 여러분은 어떤 곡이 더 마음에 드시는지요?



Aus den „Östlichen Rosen“("동쪽의 장미"로부터)



Ich sende einen Gruss wie Duft der Rosen,


보냅니다 장미의 향기같은 인사를


Ich send’ ihn an ein Rosenangesicht.


보냅니다 그것을 장미꽃같은 얼굴에


Ich sende einen Gruss wie Frühlingskosen,


보냅니다 봄의 애무와도 같은 인사를


Ich send’ ihn an ein Aug voll Frühlingslicht.


보냅니다 그것을 봄빛 가득한 눈동자에


Aus Schmerzensstürmen, die mein Herz durchtosen,


내 마음이 울부짖는 고통의 폭풍으로부터


Send’ ich den Hauch, dich unsanft rühr’ er nicht!


보냅니다 그 숨결을, 그것이 당신을 거칠게 휘저어놓지 않도록


Wenn du gedenkest an den Freudelosen,


당신이 기쁨을 잃은 한 사람에 대한 생각에 잠길 때


So wird der Himmel meiner Nächte licht.


나의 밤하늘은 밝아집니다



슈라이어 https://youtu.be/BVk6IDsp1-0






피셔 디스카우 https://youtu.be/Osqfh-yGp3w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의 목가'





자신의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활용한 예로는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바그너를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 그가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자 자신의 친구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었던) 코지마 리스트와 동거하던 중 자신을 위해 아들 지그프리트를 낳아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그프리트의 목가'를 작곡하여 톤할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당시 코지마와 같이 머무르고 있던 루체른의 별장으로 불러 그 곡을 연주하게 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특별히 작곡된 이 꿈결같이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아침 잠을 깬 코지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아래 동영상과 같이 화려한 비브라토를 배제한 순수한 퓨어톤에 의한 지그프리트의 전원의 노래를 들으시면서, 성탄절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이 곡의 초연을 선물받은 코지마와 또 그렇게 행복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바그너의 흐뭇한 모습을 머리에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지그프리트의 목가 https://youtu.be/eNTjVpJ0snE






엘가의 '사랑의 인사'





우리가 잘 아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역시 엘가가 연인 앨리스 로버츠와의 약혼을 기념하여 그녀에게 선물한 곡이지요. 엘가는 독일어를 잘 하는 로버츠를 의식하여 이 곡의 자필 악보에는 'Liebesgruss'라고 곡의 제목을 독일어로 기재하였다고 합니다. 로버츠는 엘가보다 8살 연상에다가 신분의 격차까지 있어서 둘의 사랑이 맺어지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 곡의 중간에는 사랑의 시련을 연상시키는 음영이 드리워져 있기도 합니다.











연인 로버츠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담긴 이 곡은 처음부터 피아노 독주,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2중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등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출판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인사에 대한 많은 연주가 있지만 테미르카노프의 연주는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엘가의 마음을 깊은 곳에까지 제대로 읽어낸 몇 안되는 연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의 인사 https://youtu.be/_eTpjokho8g






말러의 '아다지에토'





우리에게 유명한 말러의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역시 말러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알마를 위해 작곡한 곡입니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유명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사용되어 더욱 대중적 인기와 유명세를 누리게 된 이 곡은 존 에프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연주된 것처럼 흔히 매우 장중한 템포로 무겁게 연주되어 왔습니다만, 사실은 이 곡은 말러가 알마에게 보내는 일종의 프로포즈였습니다.











세상없이 달콤한 말러의 이 애틋한 연애편지에 알마는 '오라'고 답장합니다. 클림트의 연인이기도 하였던 콧대 높은 알마조차도 관악기나 타악기 등 다른 악기를 모두 배제한 채 오로지 비단결과 같은 현악기들에 의해 펼쳐지는 이 달콤한 사랑의 고백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말러가 직접 이 곡을 연주한 피아노롤을 보면 이 곡에 대해 말러가 생각했던 템포는 현재의 연주 관행보다는 상당히 빠른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한 템포에 의해 이 곡을 재현한 사례들도 있지만, 아바도의 연주는 중용적인 템포를 취하면서도 사랑의 고백이 담긴 이 곡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다지에토 https://youtu.be/6QBYJtsFTgw





슈트라우스의 '내일'





슈트라우스는 22세에 한 살 연하의 파올리네와 결혼을 합니다. 파올리네는 슈트라우스의 평생의 반려자였는데, 그의 말년의 걸작 가곡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소프라노였던 파올리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 중 죽음을 앞둔 노년의 두 커플의 심정을 석양을 배경으로 높이 나르는 종달새 두 마리를 통해 표현한 마지막 곡인 '저녁노을에'는 슈트라우스의 파올리네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https://blog.naver.com/celi2005/222068034650).









슈트라우스는 파올리네와의 결혼을 앞두고도 <네 개의 노래(Op.27)>를 작곡하여 그녀에게 선물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래의 내일(Morgen)이라는 곡은 앞으로 펼쳐질 사랑하는 이와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가 잔잔하면서도 엄숙하고 기품있는 선율로 노래되는 그의 최고의 걸작 가곡으로 평가됩니다.












Morgen(내일)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


그리고 내일 태양은 다시 빛을 발하리라


Und auf dem Wege, den ich gehen werde,


그리고 내가 가게될 그 길 위로


Wird uns, die Glücklichen, sie wieder einen,


태양은 축복받은 우리를 다시 하나되게 하리


Inmitten dieser sonnenatmenden Erde...


태양을 마시는 이 땅 가운데서




Und zu dem Strand, dem weiten, wogenblauen,


그리고 파도 푸르른 넓은 해변으로


Werden wir still und langsam niedersteigen.


우리는 조용히 또한 천천히 내려가리


Stumm werden wir uns in die Augen schauen,


말없이 우리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


Und auf uns sinkt des Glückes grosses Schweigen.


그리고 우리에게로 내려오리 그 행복의 커다란 침묵이












원래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피아노 반주에 의한 가곡으로 작곡하였는데, 피아노가 단순한 반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긴 도입부를 통해 피어나는 파올리네와의 사랑을 노래하듯 영롱한 선율로 연주하면서 곡을 이끌면 도중에 가수가 ". . . .그리고(Und) 내일 태양은 다시 빛을 발하리라. . ."라고 나지막히 피아노를 이어받아 노래를 진행해나가는 것이 참 이채롭습니다.



Baker https://youtu.be/DYfn3jFtR5I



피아노 (Max Reger편곡) https://youtu.be/SOEOiIp0vVQ





슈트라우스는 이 가곡을 나중에 현악기와 하프, 그리고 솔로 바이올린과 3대의 호른을 위한 곡으로 편곡을 하였는데, 솔로 바이올린의 그윽하고 기품이 넘치는 선율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에 Stumm werden wir uns in die Augen schauen(말없이 우리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가 노래될 때 가담하여 마지막 Und auf uns sinkt des Glückes grosses Schweigen(그리고 우리에게로 내려오리 그 행복의 커다란 침묵이)라는 가사와 같이 조용히 연인들에게 스며내려오는 행복한 침묵의 시간들을 묘사하는 호른의 음향도 매우 각별합니다. 아래 연주는 비록 소프라노의 독일어 딕션이 좀 아쉽지만 바이올린의 독주와 마지막 눈물을 훔치는 가수의 감정이입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수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t-Fyqo15Z8w




이 곡은 워낙 유명한 곡이다보니 유명한 가수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한 녹음을 남겼는데, 유튜브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주를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케스트라 반주 1 https://youtu.be/0P2qZSpz87w



오케스트라 반주 2 https://youtu.be/z3r9ifssLZQ



다니엘 호프 https://youtu.be/MtF2DNNr0S8



다니엘 호프 리허설 https://youtu.be/Wnf3sszsXTk






이상과 같이 천재 작곡가들의 그들의 음악적 재능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발휘한 사례를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들처럼 직접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곡을 (그 사연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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