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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Mar 01. 2022

하인리히 비버 'Battalia'


이 곡은 바흐 이전 최고의 독일 바로크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체코 출생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1644~1704)가 전투에 관련된 여러 장면들을 묘사한 일종의 프로그램 음악입니다.



제목인 Battalia는 흔히 '전투(battle)'로 번역이 되지만, 전투의 대형, 진용, 순서(order) 등을 의미하는데, 특이하게도 비버는 이 곡을 주신인 바쿠스(Bacchus)에게 헌정하였다고 합니다.



전투의 준비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장면을 묘사하는 총 여덟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단순히 현악기로만 연주됩니다만, 당대로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콜 레뇨 등 특수 연주 기법과 복조 기법 등을 포함한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각의 장면들을 매우 독특한 음향 효과와 함께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제가 즐겨듣는 하인리히 괴벨이 이끄는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연주를 통해 각 악장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 드리겠습니다.





1곡 Sonata

https://youtu.be/-fuzAwHa28o




곡의 시작을 알리는 이 곡은 전투를 위해 군대가 소집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짧고 평탄한 음을 필두로 마치 연병장에 소집되는 군인들의 모습처럼 매우 힘차고 활발한 리듬의 음악이 전개됩니다.



이어지는 음악에서는 마치 연병장에 모인 군인들이 리더의 점호에 씩씩하게 대답하는 장면이 연상되는데, 특히 현악기의 활로 스트링이 아니라 몸통을 두드리는 기법, 그리고 연주자들이 발을 굴리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흥미롭습니다.




2곡 Allegro (Die liederliche Gesellschaft von allerley Humor)

https://youtu.be/2xiOxRnF49I




2곡은 7개의 서로 다른 조성을 가진 여덟 개의 다른 노래가 두 개의 다른 박자로 동시에 연주됨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런 느낌을 주는데, 이런 음악을 그 당시에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전체 곡을 바커스 신에게 헌정한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군기도 잡혀 있지 않고 전혀 전열이 가다듬어지지 않은 군대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3곡 Presto

https://youtu.be/E50mz6lauJk




3악장은 아주 빠른 리듬의 짧은 곡인데, 강약의 대비와 함께 (중간에 칼싸움 모습을 그린 듯한 장면과 함께) 마치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는 듯은 모습이 연상됩니다.



참고로, 위 괴벨의 음반에는 비버의 스승 슈멜처의 Fechtschule(펜싱 학교)라는 작품도 수록되어 있는데, 펜싱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듯 그려집니다.



Fechtschule

https://youtu.be/kbf0u8RrbJ8




4곡 Mars

https://youtu.be/RuqjduerUMk




전쟁이 신인 Mars를 제목으로 하는 이 곡은 전체 악장 가운데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저음현악기의 2중주인데요, 저음현악기(더블베이스)의 스트링과 지판 사이에 종이를 집어 넣어 군악대의 드럼 소리를 연출해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이 요즈음 클래식 연주가들보다 더 창의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길게 도열해있는 군대를 사령관이 말을 타고 순시하는 듯한 느낌마저도 드는 이 곡은 괴벨의 탁월한 감각을 능가하는 연주와 녹음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래에서 소개드린 연주 가운데는 더블베이스가 아닌 첼리스트가 바이올린 주자와 함께 악기를 들고 무대를 행진하듯 한 바퀴 돌며 연주하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도 있는가 하면, (쿠렌치스처럼) 저음현악기가 아니라 아예 직접 드럼을 두드리는 연주도 있습니다.




5곡 Presto

https://youtu.be/rb94MWDNQcU




5악장도 3악장과 마찬가지로 강약 대비에 의한 짧은 음악인데, 중간에 카논풍의 모방이 삽입된 것이 눈에 띕니다. 아마도 노련한 상관의 전투 기술을 따라 배우는 것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곡 Aria

https://youtu.be/nE1rDj-ecN8




아리아라는 제목의 6악장은 다소 의외로 차분하고 명상적입니다. 아마도 전투를 앞두고 드리는 기도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7곡 Allegro

https://youtu.be/2cWlKVGSKog




드디어 7악장에서는 전투가 벌어집니다. 매우 격렬하고도 인상적인 악장인데요, 흔히 바르톡 피치카토라고 해서 오른손으로 스트링을 지판 위에서 때리는 방식으로 사격 또는 포격의 장면을 묘사합니다.



연주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서로를 향하여 대립적인 구도로 연주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악기를 대포처럼 뉘어서 연주하기도 합니다(아래 Voices of Music 연주 참조).




8곡 Adagio

https://youtu.be/72eI-kVSHr0




마지막 악장은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내용, 즉 부상당한 군인들의 고통과 탄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버의 또 다른 바이올린을 위한 걸작 '묵주소나타(Rosenkranzsonaten)'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악장은 B단조로 시작하지만 D장조로 끝을 맺는데,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표현한 것일까요? 아니면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담은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참혹한 후과가 따르는 전투와 전쟁은 이제 음악으로만 상상하고 표현하는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하에서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연주들을 소개드려보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연주가 가장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네요.




Voices of Music

https://youtu.be/dMVI7z5GYRU




musicAeterna (Currentzis)

https://youtu.be/a_hsKCQIMEs




Amsterdam Sinfonietta

https://youtu.be/4BjOCz4jLMg




Le Concert des Nations (Jordi Savall)

https://youtu.be/5YBOmgi-qSs




Ensemble Matheus

https://youtu.be/BC2oaSAToRE




New York Baroque

https://youtu.be/_8YN26FOTGU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3월 (나태주)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 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새 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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