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바흐 이전 최고의 독일 바로크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체코 출생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1644~1704)가 전투에 관련된 여러 장면들을 묘사한 일종의 프로그램 음악입니다.
제목인 Battalia는 흔히 '전투(battle)'로 번역이 되지만, 전투의 대형, 진용, 순서(order) 등을 의미하는데, 특이하게도 비버는 이 곡을 주신인 바쿠스(Bacchus)에게 헌정하였다고 합니다.
전투의 준비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장면을 묘사하는 총 여덟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단순히 현악기로만 연주됩니다만, 당대로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콜 레뇨 등 특수 연주 기법과 복조 기법 등을 포함한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각의 장면들을 매우 독특한 음향 효과와 함께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제가 즐겨듣는 하인리히 괴벨이 이끄는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연주를 통해 각 악장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 드리겠습니다.
전쟁이 신인 Mars를 제목으로 하는 이 곡은 전체 악장 가운데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저음현악기의 2중주인데요, 저음현악기(더블베이스)의 스트링과 지판 사이에 종이를 집어 넣어 군악대의 드럼 소리를 연출해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이 요즈음 클래식 연주가들보다 더 창의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길게 도열해있는 군대를 사령관이 말을 타고 순시하는 듯한 느낌마저도 드는 이 곡은 괴벨의 탁월한 감각을 능가하는 연주와 녹음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래에서 소개드린 연주 가운데는 더블베이스가 아닌 첼리스트가 바이올린 주자와 함께 악기를 들고 무대를 행진하듯 한 바퀴 돌며 연주하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도 있는가 하면, (쿠렌치스처럼) 저음현악기가 아니라 아예 직접 드럼을 두드리는 연주도 있습니다.
마지막 악장은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내용, 즉 부상당한 군인들의 고통과 탄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버의 또 다른 바이올린을 위한 걸작 '묵주소나타(Rosenkranzsonaten)'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악장은 B단조로 시작하지만 D장조로 끝을 맺는데,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표현한 것일까요? 아니면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담은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참혹한 후과가 따르는 전투와 전쟁은 이제 음악으로만 상상하고 표현하는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하에서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연주들을 소개드려보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연주가 가장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