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에서 시작한 생로병사의 슬픔
우리집은 아침밥을 먹는다.
남편은 새색시 시절 나에게
"아침밥은 됐고, 마음이나 편하게 해줘"라고 했건만
결혼 10년차(세상에, 나도 남편도 새끼들도 기특하다)인 지금도
여전히 아침밥을 먹는다.
무수리 시절의 습관을 못 잊었기 때문일까.
21세기 현대인들이 시달리는 대부분의 질병은
'너무 먹어대는' 바람에 오는 것이라고 유명한 박사님들이 한마디씩 거들었건만
우리집에서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아침부터 32도를 찍는 이 여름날에도(쿠쿠가 망가지는 바람에 냄비밥--> 누룽지)
팔팔 끓여댄다.
...
평생 삼시세끼를 챙긴 친정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당뇨로 식단과 운동으로 혈당관리를 하셨고
평생 부인이 챙겨주는 삼시세끼를 드신 아빠는 혈압이 약간 있을뿐 당에서는 자유로웠는데
얼마전 아빠도 당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친할머니께서는 20년 정도 중풍으로 누워계셨고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당뇨로 고생하셨더랬다.
그리고 축복받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와 동생은
그동안 별 탈 없이 살아왔지만, 둘다 하지정맥류와 복부비만과 반평생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인생의 중간중간, 아주 잠깐씩 복부비만없이 가뿐한 상태도 있었다.
나는 결혼 전까지는 엄마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었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뒤에는 직접 아침밥을 주구장창 해 먹(이)고 있는데
평생 아침밥을 꼭꼭 챙겨드신 아빠가 70에 당뇨가 시작되다니.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다며 허탈해하시던 아빠.
의사는 아빠에게 건강염려증(?)이라고 했단다.
5남매의 셋째인 아빠는 두 형은 물론 동생과 하나있는 여동생도 나몰라라 하는 부모님을
홀로(아니 우리 오마니와 함께) 모셨다.
아마 그때의 기억때문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 때면
서글퍼지는 건 막을 수 없다.
인생이란 대체 뭘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모 밑에 태어나
운이 좋으면 금수저, 은수저 그마저도 아니라면 동수저라도 물고 나오겠지만
무수저...는 수저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평균수명이 늘었다지만, 시간은 모두에게 유한하고
활기차게 살아갈(쓸수)있는 시간은 그마저도 짧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그 시간조차
수저부터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
그에게 허락된 것은 과연 무얼까. 수저없이 사는 것도 방법이다.
도구없이 먹으면 되니까.
젓가락질 못해도 밥만 잘 먹지만, 수저 없이도 뭔가를 먹을 수는 있을테니.
남편과 나는 서로를 '잇몸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 없으면 잇몸으로,가 체화된 상태로 만나
그럭저럭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끼리끼리.... 참 슬픈 말인데, 틀리지 않아 더 슬프다)
아무튼 현대인들은 '너무 먹어서' 병을 앓는다고 하니
먹는 걸 줄여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상냥하게 "아침에 먹는 사과는 황금사과래" 라며
"아침부터 부담스럽게 먹는거 싫다고 했잖아" 하고 아침 식사=사과를 시도해 봤건만
남편이 원한 건 '부담스럽지 않은 아침 식사'였다.
황금사과가 아니라.
그래, 먹다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고 했지.
근데 나는 죽어서 말고 살아서 좀 곱고 싶다.
고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