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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13. 2023

나의 초딩수학학원 방문기

아들이 손을 잡고 레벨테스트를 보러 갔다

큰 아이가 초딩이 되자 자동으로 학부모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준비성이 별로 없다.

결혼을 할 때에도 잘생긴 신랑 얼굴 하나에 혹해 덥석 결혼했고,

부모가 될 때에도 

출산 직전까지 출장다니다 갯벌에 푹 빠진 다리가 안빠져 거기서 아이를 낳을 뻔했다. 


준비성이 별로 없는 특성은 그동안의 내 인생과 늘 항상 함께 해온 ...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아니 그냥 나는 닥치는 대로 살았왔다. 

굴릴 머리가 없었기에 그냥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그래도 그건 열심히 했다. 다행히 좋아하는 일이라)

해냈다. 


대입에서 실력이 뽀록나 대학도 어그러지고

좌절감과 패배감이 전부인 상태로 이십대를 시작했지만

다행히 사진은 재미있었고,

나를 구제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십대는 내가 빵꾸낸 십대를 땜빵하기 위해 열심히 버텼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한달을 버티고

훌륭한 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여기서 밀리면 정말 안드로메다...로 가버릴 것 같은 절박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게다.


그래서일까. 

꼭 공부 못한 엄마들이 애를 낳으면 공부하라고 지랄한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렇다.

부끄럽다. 

미리미리 공부 시키지도 않았으면서 

6살인가, 유치원 선생님이 "어머니 OO만 이름을 못써요. 집에서 좀 살펴주세요"라고 전화를 주셔도

유치원생인데 뭐~라며 그냥 놀렸다. 책이나 좀 읽어주고 한글은 안 갈쳐줬다. 

어디선가 책을 많이 읽어주면 한글은 저절로 뗀다고(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한글이 익숙해져 통글자(?)로 익혀 한글 배우는데 좀 수월하다~~ 는 뉘앙스 같았다) 봤던 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책만 좀(그 책에서는 많이 읽어주라고 했는데 심지어!) 읽어주면 될거라고 

나 좋을대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일곱살이 되어서야 기탄에서 나온 1장씩 뜯어서 하는 한글떼기 책을 사서 시작했다. 

하루 한장만 하면 되니 부담없었다. 

엄마가 부담없으니 아이도 부담없이 한글을 익혔다.

기적의 한글떼기(?)인가? 기억이 가물한데 둘째도 7살이 되면 이걸로 떼야지 하고 있고, 

주변에서 한글어찌 하냐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들은 한글을 익히고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이제부터는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초딩이 한글 알면 됐지, 뭐!


그런데...

1학년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구몬 수학'이나 '눈높이 수학'같은 걸 하면 좋다고 알려주셨다.

쿠르릉 쾅쾅. 


아이는 덧셈을 어려워했다. 

돈계산은 아주 잘해서(따져서) 수학은 잘 할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헛된 희망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도 않고

학원을 보내지도 않고

학습지를 시켜준적도 없으면서 

나는 속으로 조금 화가 났다. 


그래도 화만 내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서점에 가서 아이와 연산책을 같이 골랐다. 

+1부터 (기탄에서 나온 책 중에 그런 문제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야 덧셈을 시작한 아들과 나. 

아들은 과학자가 꿈이라고 했는데

덧셈 뺄셈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매일매일 1장씩 풀기 시작했다. 

어느때는 용가리같이 불을 뿜고 

어느때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간중간 안될 때도 많았지만

꾸역꾸역 했다. 


<소마셈><원리셈><기적의 계산법>을 풀면서 

<팩토><1031><탑사고력> 같은 사고력 수학 문제도 추가했다.

연산은 같이 진행했지만 사고력은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었기에 한 출판사(?) 문제지씩 클리어해갔다.

선행보다 지금 배우는 걸 제대로, 가능하면 깊이있게 알았으면 좋겠다. 

도형은 <플라토>를 했는데, 1, 2학년 것은 너무 쉬워 1학년 말쯤 3학년 것에 들어갔는데

C02 부터는 어렵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었다. 좋은 도형 문제지라고 사둔 <960>은 아직 편안히 쉬고 있다. 

반년 동안 손을 놓고 있던 도형은 얼마전 처음으로 본 수학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들통났다. 

기가 막히게 도형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초3부터는 수학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것보다 아이와 거의 1년 반 동안 공부해온 수학을 점검(?)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다. 

<씨매스><씨엠에스><황소수학> 세 학원만 추려서 아이에게 수학학원 구경도 할 겸 

레벨테스트를 보러가자고 했다. 아이는 <황소수학>은 빼자고 했다. 

이름이 황소처럼 수학을 해야할 것 같아서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은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움머 소처럼 일했던 나는 황소수학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물론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씨매스>와 <씨엠에스>는 레테 비용이 무료라고 했다. 

영어학원에 이어 수학학원에 다니려면 레벨테스트를 봐야하다니...

레테 결과에 따라 맞는 반이 없으면 동생들과 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내 학창시절에는 부족한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우수한 학생들만 학원을 다닐 수 있는 건가(?). 세상이 달라진 건가? 내가 몰랐던 건가?


암튼 엄마 촌닭은 아들 수학학원 레테를 보러 간만에 시내에 나갔다. 

시험 시간은 제법 길었다. 

<씨매스>는 교과와 사고력을 함께 학습한다고 했다. 

50분에서 1시간 가량 시험을 보고 나온 아들

그동안 엄마는 나갔다 와도 된다고 해서 근처 서점에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닌텐도 캐릭터 책자가 보여 선물해주려고 샀다. 아이가 보면 좋아하겠지, 힘들지는 않을까.

올해 초에 영어학원에서 레테를 본 이후 두번째 경험이지만, 

수학학원은 처음이니까.


두근두근 결과는?

교과는 우수했고, 사고력은 반타작 조금 넘겼다.

점수에 실망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뜨는데

학원 담당자는 "사고력 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잘 나온 것"이라며 

"지금 4학년 과정을 선행하고 있는 탑반 아이들 사고력 점수와 비슷하다"는 말로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현행(?)은 제대로 하고 있어 다행이다, 하며 학원을 나왔다. 

오늘 내로 원장님이 상담전화를 주신다고 했다. 



아이는 닌텐도 캐릭터 책자를 좋아했다.

학원을 채우고 있는 영재원 합격 아이들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내 아이도 저런 곳에 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의 게으름 덕분에 저기까지 가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수학학원까지야 갈 수 있었지만.


이제 <씨엠에스> 한곳 레테가 남았다. 


그런데, 잠깐

이 더운날...

나는 왜 아이와 레테를 보러 갔을까?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내 아이의 우수함일까, 

내 아이의 부족함일까. 


학원의 훌륭한(?) 커리큘럼을 보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까부터 왔다갔다 하던 아들이,

아들이 옆에 와서 문제를 낸다. 


"엄마, 잔이 울릴 때 나는 소리가 뭐게요?"

"쟈니벨?"

"땡!"

"땡?, 뭔데?"

"잔소리~!"


엄마의 잔소리를 퀴즈화하는 아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매일 용가리가 되어 슬픈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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