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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30. 2023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the end'를 뱉은 자가 감당해야하는 쓰라림

아이는 침대방으로 들어갔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

내 입에서 "또 뒤집어 엎으면 끝이야"라는 말이 튀어 나갔다. 


말 그대로 튀어나갔다.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가득찬 엘레베이터에서 괄약근 조절을 할 새도 없이

나도 모르게 '뽕'하고 발사되는 그것처럼

교감신경인지 부교감신경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뽕' 나가버렸다. 


불시에 가격당한 남편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조금은 하얗게 질린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말 없이 한달이 흘러갔다. 


그리고

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남편이 말했다.


"한번도 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정말 실망했다"고.


남편은 나름대로 직장에서 처자식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고

나는 반백살 남편의 회사생활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애들 딱가리에 지치고 빡쳐 있었기에

조금은.... 그의 빡센 바깥 생활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나도 힘들다. 아들둘 먹이고 입히고 가내수공업으로 가르치는 것만 해도

너무 바쁘고 힘들다, 며.


퇴근 후 한시간반쯤 달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이와 나의 신경전으로 얼어붙은 집안의 공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9시반쯤 퇴근한 남편의 저녁상을 또 차려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몰래 툴툴거릴때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린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도 쉴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이 회사에서 저녁을  좀 해결하고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왕복 3시간 걸리는 회사에 다니면서 

아침 저녁을 집밥을 먹는 남편이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데 정신없이 쓰면서

노후는 커녕 남편 옷한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내것은 뭐 언제 샀냐,를 무기삼아 다 외면했다.

...


그렇다고 아들이가 돈들여 배우는 값을 하느냐?

그럴리가.


근 몇달을 끙끙거리며 이렇게 저렇게 돌려막기하며

큰 아이에게 들이부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부모가 해주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한 아이에게 화가났다.

아니. 정작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나대던 마흔넘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2023년 12월30일. 

올해를 하루 남긴 오늘.

오늘 점심에는 알배기 배추에 소고기를 쌓아 전골을 했다.

남편이 간만에 맛있다며 식사했다.


어른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다.

해줘도 해줘도 더 해주고 싶은 새끼들-특히 자고 있을 때 너무 예쁘다.


그런데 자식을 잘 키우겠다고

남편과 싸우는 건 그만해야겠다.

자식도 소중하지만 남편도 소중하다. 

(나도 소중하다)


얼굴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믿기로 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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