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시작하는 너에게
1호 어린이가 10대가 되었다.
2024년과 함께 시작된 1호의 10대.
내가 먹을건 내가 벌어먹겠다는 양심적인 마음으로
살아오다,
얼굴하나 보고 결혼해
(이건 아닌 것 같드아? 싶던 무렵)
신혼도 없이 한달만에 내 인생에 찾아온 빅 이벤트
VVVVVVVIP 1호.
아이가 5개월 됐을 무렵 '나의 일'을 하러 뛰쳐나갔지만
18개월이 넘어갈 즈음 다시 네 곁으로 돌아왔지.
아침 8시도 되지 않아 놀이터에 나가 하루를 시작하던 그때.
참 길었다. 하루가.
이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아이랑 뭘 하며 보내지?
동네 구석구석을 배회하던 그 시절.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간.
책육아, 장난감육아(?), 별별 육아를 다 한다고 설쳤댔건만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받게 된 선생님의 전화.
"어머니, OO이 연산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놀라서 시작한 기탄수학.
한글만 알면 초등입학 준비 끝이라고 생각했던 왕 초보 엄마.
나도 초보면서
이제 인생살이 80개월도 되지 않은 너에게 +1도 모른다고 윽박지르던 나.
+1 부터 시작한 너의 공부. 아니 우리의 공부.
대부분은 상냥하던 엄마의 '화'에 힘들어하던 아이.
욕심은 많으나, 나는 가지지 못했던 성실한 학습태도를 어린 너에게 요구했지.
작년 이맘때 첫번째 겨울방학은 참 길었는데 말이야.
두번째 겨울방학은 다르구나.
네가 어린이가 되었어.
얼마전 시작한 수학교과수업은 너무너무 가기 싫다며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하던 너.
헬로 카봇을 만들고 싶은데, 그거 만들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묻던 너.
수학수업 친구들에게 서울대 연고대, 의대를 듣고 와서 그건 뭐냐고 묻던 너.
한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고 답하며 (너도 거기 가면 좋겠다고) 상상하던 엄마에게
그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교가 어디냐고 묻던 너.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나도 안가봐서 모르지만 '하바드'가 젤 좋은 학교라는 엄마에게
하바드에 가고 싶다는 어린이.
그러면서 학비 걱정을 하던 어린이. (가기만 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내준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원대한 꿈은 좋지만 꿈을 이루려면 노력이란걸 해야한다고 말하던 나.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도서관 연체로 못 빌리니 좀 사달라던 너에게 사준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9권.
책이 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대는 너를 보며
기특했다.
니(네)가 하고 싶은 걸 해주려면 나는 돈을 벌어야겠구나.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방학때 점심때마다 뭐 해 먹을까 얘기하고,
회전초밥집에서 초밥 접시를 산처럼 쌓으면 먹던 너.
갈치조림에 밥을 두 그릇씩 먹고
백만년에 한번 구워준 소고기를 맛나게 먹는 너(희들)를 보며
밥이랑 간식이랑 옆에서 해먹이며 키우는 것도 참 기쁜 일이구나 싶었다.
항상 옆에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나의 1호 어린이,
10대가 된 것을 축하해.
너는 스무살이 되면 독립하겠다고 했으니
우리 한 집에서 사는 동안
맛있는 거 해먹고
재미있는 것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위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