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와 가내수공업으로 공부하고 있다.
말이 '공부하고 있다'일 뿐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글만 익히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몽매함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곧 드러났다.
담임선생님과 상담 전화를 할 때였다.
엊그제까지 기저귀에 똥싸던 아이가 학교를 가다니...
내가 학부형이 된 것도 어색했지만
강보에 꼭 안겨있던 작고 작은 아이가 제발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밥까지 먹고 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사교육의 ㅅ도 모르던 엄마는 초1 4월부터 태권도장에 보냈을 뿐이다.
집에 와서는 그냥 꼼지락거리고 놀았다.
다만 책은 많이 읽히고 싶어 집안 거실 벽면은 모두 책을 꽂아두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열심히 당근으로 검색해
<이를테면 네버랜드 명작동화(?)> 사두는 것만 반복했다.
(천개의 바람 책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지만 당근에 없어서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한권씩
한땀한땀 모아 100여권을 들였다. 내 돈....)
그렇게 평화롭던 어느날,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니, 아이 연산은 좀 시키셔야겠어요." 하셨다.
머리가 멍 했다.
그날로 기탄수학 1+1 부터 사서 풀렸다.(선생님은 구몬을 권하셨지만, 학창시절 내내 눈높이를 버리던 내게는.... 절레절레)
학습지의 세계로 입성하자
끝없이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학습지, 학원으로의 '길'이 펼쳐졌다.
소마셈, 원리셈, 기적의 계산법을 필두로
사고력문제지 팩토, TOP 사고력 수학을 풀었다. (엄마도 같이 풀었다.)
국어는 책 읽으면 되는 줄 알고 독해집 몇권 끄적거리다
지금부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휘문제집과 교과문제집, 그리고 문학 비문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은 도로아미타불일터이니 국어 관련 공부는 푸짐하고 쫀쫀하게 해야겠다. 고 다짐한다.
그런데... 영어가 문제였다.
마음이 급했다.
+1 하다가 열불나서 쓰러지게 생겼는데
영어는 알파벳밖에 모르는 상황.
돈이 없다고, 학원에 꾸준히 보낼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혹은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냅둘수는 없지 않은가.
뭐라도 해야했다.
그래서 기적의 파닉스인지 뭔지를 사서 둘이 탁 앉아서 했는데.
계획으로는 한달이면 끝내고도 남아야 할터인데....
영어 제대로 못하는 엄마의 부족함과 욕심의 끝은.... 아이를 영어와 결별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영어가 너무너무 싫다고 했다.
더불어 엄마도 밉고 싫다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동네에 있는 원어민 어학당에 보냈다.
1학년 2학기, 9월이었다.
"엄마랑 하는 것보다 100만배는 좋아요."
첫 수업을 하고 나온 아이의 소감이었다.
안도했다.
하지만...한달에 7번, 50분씩 수업을 하는 어학당에서도 시험을 봤다.
apple, cat 등의 15개쯤 되는 단어를 외우면서 4시간이 걸렸다 .
아이는 기진맥진.
나도 기진맥진.
한 과정(그러니까 영어학원에서의 레벨)에 6개월씩 소요되는데
파닉스1에서 파닉스2로 못 올라갈 뻔했다.
왜? 시험을 너무 너무너무 잘봐서. ㅠㅠ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아이가 잘 할 거라고 다음 레벨로 진급(?) 시켜주었고
아이는 정말로 잘(?) 해 나갔다.
(다만, 이 '잘'은 영유 나와서 초등1때부터 대형어학원 높은 레벨에 다니거나,
리터니들이 다니는 어지러운 수준의 영어학원에 다니는 영어에 전문가인 아이들과 동급인 '잘'은 아니다.)
그저 한글 떼고 한글로 된 책 읽기를 좋아하는 꼬마가
영어에는 학을 떼고 쳐다보도 못하다가
그래도 영어를 조금씩 해나가는 그 애티튜드를 말함이다.
같은 선생님께 1년 반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그 선생님은 마지막 성적표(?)에 '영어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문법을 해야한다'고
코멘트해주셨고,
덕분에 엄마는 대형 어학원에 다니는 영어 잘하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문법책을 물어 <마이퍼스트그래마>를 사서 공부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브릭스40> <브릭스50> <미국교과서리딩> <리딩퓨처> 등을 공부했다.
구글 텍스트번역 카메라 덕분에 가능했다.
당연히 계획만큼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아이를 바보(?) 만들 수는 없었기에 그냥 했다.
일주일동안 못할 때도 있고
보름을 못할 때도 있었다.
수학 하다보면 영어 못하고,
영어하면 수학 못하고 그런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가 때려치고 싶었다.
더러워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들었다.
지금도 든다.
그래서 동네학원과 공부방 등을 찾아다녔다.
3학년이 되어서 동네에서 다닐만한 영어학원과 공부방을 찾아다녔다.
모두 레벨테스트를 봐야했다. 그놈의 레테....
(1학년 겨울-그러니까 파닉스 1 공부할 때- 청담 에이프*에서 본 레벨테스트에서 seedbed1 이 나왔다.
1년뒤 레벨테스트에서는 seed2, 랭콘 레테에서는 니나가 나왔다.)
지금 다니는 어학당 선생님께도 상의 드렸다.
한달에 7번 시수는 부족한 것 같아 다른 학원이나 공부방, 영도를 알아보고 있다고.
그랬더니 대번에 토피*에 가서 레테를 받아보라 하심.
전화번호를 찾아 레테 문의하니 링크를 보내줬고, 그곳에서 레테 신청을 했다.(미리 2만원 내야함)
동네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토피*가 토나오고 피나올 정도로 빡세게 시킨다고 했다.
엄마들 만족도는 아주 좋고,
다만 요즘은 예전만큼 관리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무튼, 아이는 레테를 보는 조건으로 단 하나를 약속해달라고 했다.
"엄마, 저 거기 절대로 안다닐거여요."
왜? 대체 왜? 와이?
ㅜ.ㅜ
그럼 아들아, 집에서 공부를 좀 하거라.
엄마 열불나서 쓰러진다.
학원 그러니까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날이 곧 올 것이다.
수학도 영어도....다른 과목들도 줄지어 기다리겠지.
그래도 어떻게 그 전까지는 가내수공업을 해볼까 했는데,
이제는 안되겠다.
간장만 반찬으로 먹더라도
이제는 가서 하는 것이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좋겠다 싶다.
등록할 수 있는 걸로 만족하는 안분지족의 엄마. 가자! 고고! 제발 가라! 너만 믿는다. 티오피!
토피*학원은 중딩들 다니는 곳인줄 알았지
초딩도 가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여차저차 레테를 봤다.
1시간 정도 시험을 치르고 나온 아이는 입술이 하얗게 변해서는
"엄마 너무 어려웠어요." 라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시드베드1의 충격이 다시 올 것인가.
다른 학원과 달리 전화로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아이가 시험 보는 동안 부모들에게 학원의 커리와 특장점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그냥 바로 등록하고 싶었다.
단, 레벨이 안나오면 등록할 수 없다기에 오바하지 않고기다렸다.
시드베드1을 생각하니 캄다운이 절로 되었다.
2시간 쯤 지났을까.
아이와 스피킹을 하고 롸이팅을 채점했다는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1. 관사를 정확하고 쓰고 있고, 단수와 복수를 알고 있다. (이건 나도 아는데.)
2. 말은 하고 싶어하나 잘 안됨. 그러나 매우 적극적으로 행동함. (상당히 당황. 집에서 공부할 때는 1도 적극적이지 않음)
결론은 등록할 수 있고 레벨은 v2라고 했다. 83.3 점.
한반 정원은 12명, 현재 8명이 있고 1명만 2학년이고 모두 3학년이라고 했다.
당장 등록하고 싶었다.
3주 간 적응기간동안은 숙제도 해서 집으로 보낸다고 했다.
와. 이런 신세계가.
제발 가라. 아들아.
이제 우리 좀 독립하자.
공부 독립.
이 녀석을 어떻게 꼬셔서 학원에 보낼수 있을까.
다른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하자면 끝이 없다. 엄마도 괴롭고, 엄마가 괴로워지면 아이에게 지랄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가 슬프다. 좋을게 없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기특하다. 그 따위로(?) 공부하고도 공부를 했다는 것이 기특하다.
영어 모르는 엄마랑 공부하느라 너도 애쓰고 나도 애썼으니
이제 전문가 선생님과 공부해서 쑥쑥 성장하렴므.
엄마는 니 학원비 벌러 나가겠다.
암만, 내가 다 벌어서 영어도 수학도 국어도 다 보내주겠다.
정말로 그러고 싶구나. 아들아.
1년 9개월동안 엄마와 공부한 영어는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