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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29. 2024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

을 따려고 하는 별볼일 없는 아줌마의 시덥잖은 이야기

2024년 2월, 우연한 기회에 미술심리상담사 2급 과정을 들었다.

이어서 지금 1급 과정을 듣고 있다. 

대문에 '여성'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여러 센터에서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당시 '이러닝 콘텐츠 설계자 양성과정'에 이은

2번째 도전(?)이었다.

주 4회 9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같이 완주한 동료들과는 잠시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더랬다. 


'이러닝 콘텐츠 설계자'라는 말은 확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3천만원이나 대출받아 석사학위를 받아 고이고이 모셔둔 나로서는

(순뻥이다. 이 글을 끄적이면서 석사 학위기가 어디에 있나 찾아보다 포기했다. 

발이 달려 이 집을 탈출한 게 아니라면 아마 집안 구석 어디쯤 구석에 콕 박혀있으리라.)

본전 생각에 가만 있을 수가 없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거대한 삽질의 첫 삽이었다. 



내가 기가 막힌 지점은,

마흔이 넘어서도 이러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님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유명한 양반이 마흔을 불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뻥장군. 

대체 어떤 양반이길래 그 이빨에 수십세기 넘게 인간들에게 알려지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 냥반의 마케팅(?)을 배우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겠다 싶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기저기 흔들린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세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 

21세기 현대인인 나는 여전히 삶이 어렵다. 

다른 누구의 인생도 아니고 벌써 40년 넘게 살아온 내 인생이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스물에는 서른 즈음이면 거의 와꾸는 잡혀있을 줄 알았다. 

서른에는 마흔 즈음이면 시시한 고뇌에서는 벗어나 '으른'으로 살아갈 줄 알았다. 


마흔이 넘으니, 쉰에도 이러고 있을까봐 쫄린다. 


몸은 늙어가고 마음도 조금은 시들어가지만 여전히 쉬운 없다. 

마음관리를 잘못하면 몸이 상한다는 알았다. 


1호의 여름방학이 길어 덩달아 내 일정이 빡세다. 

월수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화목 오전에는 수업을 받는다. 


큰 맘먹고 보낸 영어도서관에서 아이는 주5회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영어책을 읽다 온다. 

1달에 44만원, 2달이면 88만원. 

한달에 2만5천원짜리 구립 어학당에 보내는 나로서는 두눈을 질끈 감고 긁은.... 투자(?)였다.

아이에게 제대로(?)된 그러니까 비싼 영어학원에 보내주지 못한(다행히 아이가 거부해서 못갔지만, 갔다고 해도 한달에 40만원이 넘는 영어학원비를 내가 몇달이나 보낼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미안함과 

불안함이 잘 버무러진 선택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하루 2시간이라도 떨어져 있는 생명수같은 시간이 필요해서였을수도 있다. 


아이는 성장하고 머지 않아 독립할 것이다.

나는 항상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다. 그 순간이 왔을 때 나의 모습이.

미래는 두렵고 현재도 쉽지 않다. 

그래서 뭐라고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거대한 삽을 들고 여기저기 파대는 나. 

운좋게 금광 아니 은광이라도 발견하면 좋겠다.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한 삽질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나는 그런 인간인 것 같다. 


한가지 다짐한 것은 매일 쓰기로 했다. 

블로그인건 브런치인건 뭐든 좋으니 쓰기로 했다. 


정리가 되면,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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